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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관절염 주사제(注射劑) 투여(投與)
최 순 태
나의 셋째 형님은 초등학교 시절 관절염을 심하게 앓았다. 관절염은 보통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에게 주로 생기는 병이나, 초등학교 5학년이던 형님이 덜컥 탈이 나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 당시 김천 시내에는 유명한 김외과 의원이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하다 보니 치료비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고, 병세가 차도를 보여 일단 퇴원하여 병원에서 처방받은 관절염 치료 주사제를 약국에서 구입하여 아버지가 손수 주사를 놓는 정성을 보인 끝에 완치되었다.
병을 치료하느라 6개월간 휴학을 하고, 회복이 되어 복학하려고 하였으나, 교장선생님이 1년을 푹 쉬고 다음해에 공부하면 어떻겠냐고 하였으나, 본인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픈 욕망이 강하여 가을학기부터 수업에 들어가 친구들과 어울렸다.
우리 집 5남매 중 큰형님과 셋째형님은 허약하여 어릴 때부터 병원에 들락날락 하였으나, 나머지 3형제는 비교적 건강하여 별다른 치료를 받으러 간 기억이 없다. 우리 마을은 변두리에 위치하여 가족들이 병이 나면 인근 마을의 한의원에 찾아가서 진맥을 하여 한약 처방을 받아 복용하였다.
결혼하여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자질구레한 병으로 병원을 자주 찾게 된다. 나는 상당히 많은 이사를 하였다. 어느 해 단칸방에 살던 여름철이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와 추위를 싫어하는 아내의 성향 때문에 여름에 선풍기 사용 문제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때 우리 부부의 가운데서 자던 큰애가 선풍기 바람을 직접 맞아 폐렴이 발생하였다. 고열이 발생하여 인근병원에 데려가니 즉시 입원하란다. 조그마한 어린애에게 주사를 놓으려고 머리에 주사바늘을 꽂을 때 아파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애처로웠다.
둘째를 출산하고 난 뒤 어느 날 직장에서 퇴근하여 급히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한숨을 쉬며 울상이 되었다. 연유를 물어보니 큰애가 둘째의 배에 뜨거운 물을 끼얹어 화상을 입었단다.
즉시 아이를 병원으로 옮기어 응급처치를 하였다. 다행히 큰 화상이 아니어서 집에 돌아와 연고를 발라주고 며칠 지나니 상처가 나았다. 지금도 작은 아들의 배에는 그 때 화상의 흔적이 있다.
사람이 아프지 않고 일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평생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던 아버지가 이웃 마을 상가에 문상을 다녀오다가 쓰러진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건강 이 심상찮음을 느낀 가족들은 대구의 영남대학병원으로 가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라고 권유하였다. 내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는데 검진이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결과를 내게 말씀해 주셨다. 간이 상당히 안 좋으니 당장 치료가 필요하며, 당장 입원 하라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아버지께 치료할 것을 강권하였으나 “나는 이미 많이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고 하시며 한사코 거절하였다. 이렇게 건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는 몇 년 뒤 다시 건강이 악화되었다.
급히 병원에 갔을 때 이미 회복불능 상태가 되어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하면 맨 처음 아팠을 때 적극적인 대처를 못한 점이 한이 된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아프면 지역병원에 가지 않고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는다. 내가 알기로는 대구의 의료수준도 상당한데 무턱대고 서울로 가는 것이다.
물론 일부 진료과목의 경우 서울의 대형병원의 수준이 높을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일반적인 병에도 서울로만 간다면 의료비의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내가 사는 대구에도 의과대학의 부속병원을 비롯하여 종합병원이 많아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요즈음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 보호자와 병원비가 없으면 치료를 거절하는 일이 허다하다. 병원에서는 돈보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까! 진정 이 땅에는 슈바이처나 장기려 박사와 같은 인술(仁術)을 펼치는 의사는 없는 것인가?
얼마 전 북한에서 판문점을 통해 자유를 찾아 귀순한 병사가 있었다. 도망치는 그를 향해 북한군들은 수발의 총격을 가하여 그 장병의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일이 일어났다.
이 때 아주대학교 외과 권역센터의 이국종 교수가 즉시 헬기로 이송하여 그의 목숨을 구한 일이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국종 교수는 아덴만에서 해적들에게 큰 상처를 입은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구한 위대한 의사이다.
이교수가 의사에 입문하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상이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한국동란 때 공을 많이 세운 국가유공자였다. 가사 사정이 어려워 생활이 매우 궁핍하였다. 그 때 어린 이교수가 축농증에 걸려 병원을 찾아갔다.
병을 치료하려고 병원을 찾아갔으나, 돈이 없어서 수많은 병원에서 거절을 당했는데 한 병원의 의사 선생님이 아버지가 유공자란 말을 듣고 “너의 아버지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네” 라고 하시며 치료비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축농증 치료를 해 주었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이교수는 내가 의사가 되어 나처럼 불우한 사람들에게 인술(仁術)을 베풀어 정성스런 치료를 해야겠다고 다짐하여 훌륭한 의사가 되었고, 모든 의사들이 꺼려하는 중증외상센터의 의사로서 사비를 털어 급한 환자를 후송하느라 빚을 지기도 했다.
이러한 의사선생에 대해서 소위 서울의 메이저병원에서 온갖 험담을 하는 현상을 보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신속하게 치료를 하여 목숨을 살리는 사람에 대해서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둘째 형님의 아들인 조카는 지역대학의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는데 외과의사인 질부와 결혼하여 부부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조카는 마취통증과, 질부는 외과의사인지라 내가 그들에게 당부하였다.
전공분야가 사람과 목숨과 직결 되니만큼 수술할 때 집중하여 단 하나의 실수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디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인술을 베풀어 달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부탁한다.
무릇 의사가 되려는 자는 의과대학의 의예과에 입학하여 공부할 때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할 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의사 생활을 하는 내내 초심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일생을 살면서 가장 건강한 상태로 지내다가 고통 받지 않고 죽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되려면 심신을 단련하고 항상 밝고 유쾌하게 살아가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일평생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은 경찰서, 교도소, 병원이라 한다. 그 중에서도 병원을 자주 가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꾸준히 운동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고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좋게 하면 아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일생을 살면서 병원을 한번도 가지 않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요? 정말 병원이라는 곳은 가고 싶지 않지만 필요에 따라 가지 않을 수 없는, 꼭 필요한 곳이기도 하지요. 어떤 병이든 병이 오면 고통이 따르는데 그 고통을 멈추게 하고, 건강한 상태로 돌려 놓는 의술을 펴시는 의사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병원이 필요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은 병원을 꺼리지만 병원으로선 환자가
많을수록 좋다. 좋은 의술보다 참다운 인술을 베푸는 의사들이 생각나게 하는글 잘읽었읍니다.감사드립니다.
아버님의 관절염 의술도 훌륭하셨고, 숙부로서 의사 조카 내외에게 인술을 베풀도록 하라는 당부도 참으로 훌륭한 말씀입니다. 인술보다 환자들을 돌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의사가 많은 세상인 것 같습니다. 솔직담백한 글 잘 읽었습니다.
아버지의 자식 사랑이 대단한것 같습니다. 아픈 아들에게 주사를 직접 놓는것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아버지의 간도 수술하셨으면 호전될수도 있었지만 돈이 많이들고 가계를 염려하여 거절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조카 내외에게 돈보다 인술을 베풀라고 하신 말씀이 감동적입니다. 경험하신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살아 오면서 겪은 병원과 의사에 대한 이야기들 잘 읽었습니다. 모든 의사가 슈바이처나 장기려 박사와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리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기대해 봐야 겠지요.
옛날엔 상상도 못했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어 장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점차 더 큰 혜택이 주어지리라 기대를 합니다..감사합니다..최상순드림
병원문턱이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병원과 의료진의 수고로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서로 감사하며 살아야겠죠.
건강을 너무 염려하다 생긴병이 건강염려증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만큼 요즈음은 각자의 건강을 염려합니다. 그 덕분으로 우리나라 평균수명도 늘어났지요. 아버지께서 간이 안좋으신데도 수술을 거부하셨다는 말씀 우리들 아버지들 세대 자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싫다는 표현을 많이 살았으니 여한이 없다. 저 가슴이 아프네요. 소생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고 집에 가자는 우리아버지 말씀이 선생님 글을 통해 다시 가슴이 아픔니다.
병원과 의사 그리고 환자와의 관계 정말 소중한 관계입니다. 어느 의사인들 생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마는 현실(병원 운영) 때문에 어쩔 수 없겠지요. 의료보험은 정말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경찰서 교도소 병원 세곳이 기피의 대상이긴 하지만 없어서는 안될곳입니다. 병원에 안가고도 살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지만 피 할 수 없는 일. 모든 것이 조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친께서야 말로 훌륭한 의료인의 기질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자신은 돌보지 않고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한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의사였다면 하포크라테스의 덕행을 실천할 분이라 생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