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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 선형적 시간의 축적과 꿈속 비선형적 왜곡을 시각화한 신작 선보여 ‘2026년 작가 공모’ 우수 작가 선정 기념 초대 기획전 5월 23일부터 31일까지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에서 열려 |
[미술여행=엄보완 기자]따뜻한 온기 뒤에 숨겨진 존재의 근원과 시간의 흐름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전시가 부산시 금정구 부산대학로 50번길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에서 열린다.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는 ‘2026년 초대작가 공모’에서 우수 작가로 선정된 손주은 작가를 초대했다. 5월 23일(토)부터 31일(일)까지 기획 전시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What is there, where there is nothing?를 묻는 전시다.
손주은 개인전: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시 알림 포스터
‘무한’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된 ‘시간’의 기록
손주은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댁 벽시계 소리에서 느꼈던 비장함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작가가 진정으로 마주한 공포의 실체는 생의 마침표인 ‘죽음’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죽음이라는 문을 넘어선 뒤에 펼쳐질,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시간’의 압도적인 무게에 주목한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영원성, 그 거대한 무한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두려움은 작가에게 시간을 단순한 물리적 흐름이 아닌, 반드시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실존적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간 외면해왔던 시간의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죽음 이후의 무한을 향해가는 존재의 궤적을 기록한 결과물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특히 2021년 어느 봄날, 선물가게 앞 문턱을 넘지 못하고 서성이던 노인의 모습에서 포착한 ‘시간의 거리감’은 작가에게 큰 변곡점이 되었다. 작가는 노년의 여성 이미지를 통해 단순히 나이 듦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한한 생을 지나는 인간이 어떻게 무한한 시간의 층위를 쌓아가는지, 그 누적된 시간 속에 담긴 존재의 깊이와 변화하지 않는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결국 이번 작업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무한’을 삶의 태도 안으로 끌어안으려는 작가만의 성찰적인 답변이다.
사진: Gravity | 40.9 x 53 cm, Acrylic, paper on wood panel, 2026
현실의 직선과 꿈의 왜곡, 그 경계의 시각화
전시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는 ‘시간의 두 얼굴’이 교차하는 지점을 목격하는 것이다. 작가는 물리적 법칙에 따라 한 방향으로 성실하게 쌓여온 현실의 선형적인 시간 축과 더불어, 현실의 논리를 벗어나 나란히 존재하는 또 다른 시간 축인 ‘꿈’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먼저 현실의 시간을 다룬 작업에서는 오랜 세월을 지나온 노년의 존재를 통해 함축된 시간의 부피와 깊이를 드러내며, 이를 작가만의 언어로 번역된 시각적 패턴으로 형상화하여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 실체로 체감하게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꿈의 세계를 담은 시리즈에서는 1초가 평생처럼 늘어나기도 하는 등 시간의 왜곡과 확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선형적 감각을 포착한다. 작가는 꿈을 단순히 현실의 잔상이 아니라 무의식의 파편들이 고유한 물성을 가지고 충돌하는 독자적인 우주로 정의하며, 현실의 직선적 시간과 꿈의 다층적 시간이 공존하는 이미지를 통해 관람객이 각자의 내면에 구축된 주체적인 시간의 구조물을 사유하도록 이끈다.
사진: 손주은_초_72.7_x_60.6_cm_Acrylic,_watercolor,_paper_on_wood_panel_2025
손주은 작가는 이번 우수 작가 선정에 대한 소감과 초대전 개최에 대해 “지난 5년간 '시간'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치열하고 열심히 작업해온 모든 순간의 기록을 인정받은 기분"이라며 벅찬 감동과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단단하게 나아갈 용기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예술가로서 겪었던 내면의 고뇌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작업에 확신이 들지 않는 순간이 많아지던 시기였는데, 이번 MERGE?의 우수 작가 선정이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주었다”며, “이를 계기 삼아 앞으로 더욱 단단하게 저만의 예술적 작업을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덧붙였다. 손주은의 이러한 진정성 어린 다짐은 이번 초대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깊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 그곳에 실재하는 시간의 실체”
전시명인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는 비어 있는 공간 속에서도 엄연히 실재하는 시공간에 대한 수사적 질문이다. 작가는 과학적 개념의 시간을 개인적 사유로 끌어들여, 우리가 수동적으로 소비해온 시간을 주체적인 ‘구조물’로 재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전시 관계자는 “초 단위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시간을 소모품처럼 여기는 현대인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공간에 존재하는 시간의 의미를 진지하게 마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손주은은 2023년 ‘Perspectives 단체전(경기도, CICA Museum), 2026년 ‘OPENING : 차이의 확장’ 단체기획전(서울, 아트로직스페이스), 2026년 ‘불이 붙는 찰나’ (서울, 마루아트센터)단체전에 참여했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 더욱 확장된 예술적 세계관을 선보일 예정이다.
사진: 손주은_Narrator_72.7_x_60.6_cm_Oil_pastel_on_wood_panel_2025
<작가노트>
손주은 작가
할머니댁 안방 벽 가운데에는 커다란 벽시계가 걸려있었다. 어릴 적 문득 시계의 숫자들과 초침 소리에 압도된 날이 있었다. 시계 초가 한 칸 움직이면 1초가 지나간다는 사실이 법문이나 설교처럼 권위 있고 비장했다. 1초가 쌓여 어른이 된다는 설렘이 있었지만 어른이 되면 헤어짐에 가까워진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그렇게 시간이라는 감각은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졌고 죽음 이후에 펼쳐지는 무한한 시간의 공백으로 확장되어 끝없는 직선처럼 보이는 시간의 구조에 거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어른이 된 나는 살아오는 동안 애써 외면해온 두려움의 대상을 마주하기로 하고 여전한 공포감이나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그 이면의 모습들을 탐구하며 작업을 통해 시간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2021년 3월 9일. 작업실 가는 길. 젊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선물가게 앞에서 뒷짐을 진 어르신 한 분이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창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계셨다. 그 표정에 약간의 망설임과 어색함 그리고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시간의 거리감이 담겨있었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한 장면으로 긴 시간을 축적한 존재에 대한 작업이 시작된다. 오랫동안 가져온 시간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일상의 순간과 만나 발화된 것이다.
노년의 여성을 그린 작업은 현실의 축을 따라가는 시간 누적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단순히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누적된 시간 속에 있는 존재의 깊이와 함께, 변화나 불변에 대한 질문이고 시간을 축적해 나갈 태도를 정비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이 든 존재의 이미지는 함축된 시간의 부피를 와닿게 하고 다가올 개인의 역사를 상상하게끔 하는 매개가 된다.
누적의 시간을 쌓아온 대상을 주제로 작업하면서 시간의 축적을 패턴으로 시각화하는 작업도 함께 시도했다. 시간의 패턴을 나만의 언어로 번역하며 그 패턴 위에서 존재의 서사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시간의 본질을 더 가까이 이해하고자 했다.
사진: 손주은_Open_45.5_x_60.6_cm_Acrylic_on_canvas_2021
현실의 세계와 달리 꿈은 날카롭고 긴 직선과 같은 시간을 왜곡시켜 주는 세계이다. 꿈에서 나는 1초를 1시간으로, 1시간을 평생처럼 쓸 수도 있다. 잠은 그 문이 열리는 순간이고, 꿈은 그 너머에서 펼쳐지는 독자적 세계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흐르는 방식도 머무는 감각도 존재의 규칙도 다르다. 꿈은 현실의 연장선이 아니라 현실과 나란히 놓인 또 하나의 시간 축이다. 현실에서 사라진 기억의 조각과 감정이 꿈에서는 자체의 물성을 가지고 있고, 무의식의 잔해들은 충돌하며 희열과 심연이 뒤섞인 고유한 세계를 구축한다. 꿈 시리즈에서는 현실과 독립된, 꿈이라는 우주에서 느낀 시간과 감각의 왜곡을 다양한 층위로 담아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는 시간의 존재를 생각해 보기 위한 수사적 질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빈 공간이 존재하며 시공간이라는 개념의 절대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물리적 이해에서 나온 질문을 개인적 사유의 차원으로 적용한다. 추상적인 것이 아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과학적 개념의 시간을 빌려 익숙하게 생각하는 시간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마주함으로써 누적된 시간과 꿈의 시간이 선형적 축적과 비선형적 왜곡으로 동시에 공존하는 이미지를 보다 선명하게 형상화한다. 초 단위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기록 속에서 시간이 점점 수동적 소모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시대에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 존재하는 시간을 주체적으로 탐구하며 자신만의 시간 구조물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손주은
사진: 수면유도 | 45.5 x 53 cm, Acrylic, watercolor, paper on wood panel, 2024
<손주은 작가 인터뷰>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시간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손주은입니다.
Q.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 간략한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시간에 관한 책을 읽던 중 발견한 책의 소제목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빈 공간이 존재하고 공간, 시간이라는 절대적 실체가 존재한다’는 뉴턴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공기중에 존재하는 입자들처럼 시간 또한 우리가 있는 곳에 존재한다는 물리적 이해에서 나온 질문을 전시 제목으로 제시하며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 오랜 시간 시간에 대한 두려움을 외면해오다 마주하기로 결심한 특별한 삶의 계기나 전환점이 있으셨나요?
A. 2021년의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업실에 가는 길에 선물가게 앞에 서 계신 어르신 한 분을 마주했는데 처음에 봤을 때는 애틋한 마음이었고 그분을 지나쳐 다시 돌아봤을 때는 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호기심이나 취향은 어린 시절과 다를 것 없어 보였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과 분위기의 거리감에 주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기록하는 그림으로 시작했고 그때 느낀 감정의 이미지를 찾아가던 중 시간의 깊이감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간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노년의 존재를 통해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고 하셨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 쌓이고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쉽게 닳거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존재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각자의 내면에 있는 중력 같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끌어당기는 힘이 삶에서 판단과 선택을 결정하고 가치관이나 소신, 취향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취향이나 선택들은 달라질 수 있지만 나에게 끌려 당겨오는 것들의 방향과 결은 그 에너지 자체와 함께 쉽게 닳거나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Q. 시간의 축적을 패턴으로 시각화하는 작업이 인상적입니다. 이 작업은 어떤 생각과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나요?
A. 수많은 반복과 변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반복되는 것들을 하나의 평면 위에 펼쳐 놓으면 자연스럽게 패턴이 됩니다.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든 반복은 미세한 불규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완전히 같은 순간은 존재하지 않고, 시간은 축적됩니다. 결국 패턴들은 각자의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지닌 불규칙한 패턴이 됩니다.
Q. 작가님을 표현하는 중심 키워드를 세 가지 정도 추려본다면, 어떻게 나열할 수 있나요? 그 단어를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A. 기록, 공상, 명암 정도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기록합니다. 글로 남겨둔 기록이 이미지가 되기도 하고 그 이미지가 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미지에는 저의 긴 공상을 거친 비현실적이고 공감각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합니다. 작업의 방식적인 면에서는 빛과 어둠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주로 빛이 있는 어둠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Q. 작가로서 앞으로 추진하거나 시도해 보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A. 꿈은 저에게 무한한 직선처럼 보이는 시간을 왜곡 시켜주던 세계였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에서는 이러한 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꿈이나 무의식의 감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와 매체들을 함께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Q. 이번 전시를 보러 오신 관람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전시를 보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몇 년간 쌓아온 결과물을 한자리에 처음으로 소개하려 하니 긴장도 되고 많이 벅차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시간 속에 제 이야기가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시간의 형태와 감각들을 떠올려보고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것과 변하지 않을 것, 앞으로 축적해나갈 시간을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주은 개인전: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시 안내
전시명: "아무것도 없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시 기간: 2026년 5월 23일(토) ~ 5월 31일(일)
참여 작가: 손주은
전시 장소: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 (부산시 금정구 부산대학로 50번길)
전시 문의: openARTs space MERGE? 공식 SNS 및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openartsme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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