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뮤즈, 대자연 1
소담하고 청명한 린드만 호수 / 김혜진 (해림)
( Lindeman Lake in Chilliwack Lake Provincial Park )
2021년 캐나다 데이, 밴쿠버에서 두 시간여를 달려 칠리왁 레이크 주립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1.5km, 약 한 시간 반 만에 다다른 린드만 호수는 아담하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탐스러운 비취색의 산정호수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에 바위가 많은 돌무더기를 헤치고 가야 해서 쉽지만은 않은 중급의 트레일 코스이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평소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저질 체력의 나. 특히나 하행 길은 육중하게 불어난 몸무게의 하중을 감당하기에 무릎이 무리가 됐다.
그런데도 이번 산행은 나에게 잊히지 않을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산행 중 마주했던 크고 작은 수많은 돌. 그 중 꽤 거대한 기암들이 곳곳에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들이 산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나무들이 쪼개어져 결대로 여린 속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산행의 약 3/1 지점에서 만나는 작은 다리는 왠지 폭신하니 구름다리를 건너는 듯 기분이 좋았다.
힘들 때마다 무리하지 않고 쉬면서 산을 올랐다. 사진 액자에 넣을 만한 좋은 풍광을 만나면 사진도 찍었다. 시원하게 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부서지는 하얀 기포와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힘을 얻었다.
먼저 산의 정상에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은 힘들고 지쳐 보이는 내게 “이제 거의 다 왔어.”라며 격려의 말을 하고 내려간다.
비록 아직 갈 길이 멀지라도 모르는 타인들의 ‘말 한마디’ ‘작은 배려’ 가 얼마나 소중하고, 힘을 북돋워 주는지,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새삼 깨닫는다.
드디어 힘들게 도착한 정상에는 나의 상상을 초월한 진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린드만 산정호수는 산에서 흘러내려 온 석회석으로 인해 에메랄드빛, 청명한 비취색을 띠고 그 탐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늘은 구름이 잔뜩 낀 날이라 호수 빛이 반짝이는 햇살 아래의 호수색보다 덜 예쁘다지만 내겐 족한 행복을 주었다.
벌써 도착한 많은 사람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곳곳의 멋진 풍광을 담아 인생샷을 남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도 욕심을 내어봤지만 역시나 사람이 없는 풍경 사진이 제일이다.
넋을 잃고 호숫빛에 취해 멍 때리는데, 저만치서 젊은 커플이 SUP (Standup Board)를 한가로이 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얼마나 부럽던지. ‘저들은 아마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테지…’
마침 하행 길에 떼 지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올라오는 젊은 청년들과 맞닥뜨렸다. 그들은 한 시간여 떨어진 곳에서 보드를 빌려 산정호수에서 느긋하게 만끽하며 타려고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 이들이었다.
아, 지칠 줄 모르는 나의 열정, 오늘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가 추가되었다. 나도 언젠가는 근력을 키워 저 보드 배낭을 가뿐히 메고 이곳을 다시 오리라. 그리고 산정호수에서 천하를 얻은 여왕처럼 우아하게 보드를 타리라. ‘나의 그런 날은 오리라, 반드시 오고야 말리라’ 속으로 다짐하며 이 악물고 힘든 하행 길을 견뎠다.
산행을 마치고 같이 간 세 가족과 함께 삼겹살과 쌈, 오징어 양념구이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1996년 초에 만난 오랜 지기를 주축으로 결성된 우리 그룹은 매해 여름이면 캠핑이나 여행을 같이 해왔다. 올해는 약간의 사치를 부려 빅토리아섬의 Shirley Air b & b로 7월 말 휴가를 떠난다.
식사 후, 휴가 계획을 짰다. 주로 뭘 먹을 건지, 준비할 메뉴에 대한 얘기. 먹고 사는 게 참 큰일이긴 한가 보다.
나에게 글을 쓰고픈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뮤즈는 언제나 ‘대자연’이다.
푹 절인 배추 같은 고된 일상에서 허우적대다 눈동자에 새기고픈 자연 속에 푹 파묻힌 하루, 연초록빛 살랑대던 나뭇잎처럼 설레어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첫댓글 아름답네요.
Cultus Lake 는 수시로 갔는데
린드만은 첨 들어 봅니다.
1.5km 산행이면 내 체력으로는 불가능 할듯...
ㅡ푹 절인 배추 같은 고된 일상에서 허우적대다 눈동자에 새기고픈 자연 속에 푹 파묻힌 하루......멋진 표현입니다.
섬세한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왕복 3km이지만, 경치구경하며 쉬엄쉬엄 오르시면 하실 만 합니다. ㅎㅎ
한 번 도전해 보시길...
댓글 감사합니다. 🙏 😄
아름답네요
카약에 누워 낮잠 한번 푹 자보는 것도
낭만일듯...
건강하게 행복하세요.
건강하신가요?
SUP 위에서 요가 동작은 못하더라도, 저도 낮잠, 꿀잠 😴 💤 자고 싶네요. ㅋㅋ
더운데 시원하게 보내세요. ^^
산행길에 만나면 모두가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라고 말하니,
용기를 주고 완주하라는 메시지 …
아름다운 계절을 잘 보내고 있네요.
옆지기님에게도 안부를 …
멋진 풍광 잘 감상했고 계속 건투를 빌어요. ^•*
소교님, 이사장님
두 분 강녕하신가요?
꼬맹이 데리고 애기를 교대로 안고 걷는 젊은 부부, 개들도 산행을 즐기더군요.
지금은 덥다하지만 이 여름도 어느 순간 훅~ 지나가겠지요?
열심히 낭만적인 여름을 즐기고 보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혜진씨, 경치 좋은 곳을 소개하셔서 언젠가는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에 저희 교회 그룹은 조프리 레이크에 다녀왔는데
그 아름다운 호수가 구름에 덮혀 청명한 물 색갈을 보지 못했답니다.
제게는 좀 벅찬 산행이었는데...,
언제 또 기회가 있을런지!
선배님, 오랜만이에요. ^^
강녕하시지요?!
조프리 레이크를 다녀오실 정도의 체력이시면 등산화만 신으시면 충분합니다.
하행길에 발목과 무릎 조심하시고, 천천히 내려오시면 돼요. ^^
호수 빛이 너무 예뻐요.
조만간 인증샷 보내 주세요,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