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남과 여 라운지 입구에 들어선 동양인 한 명이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 이 보였다. 중키에 얼굴이 넓고 다부지게 생긴 인상이었다. 그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더니 멈춰졌고, 이쪽에서 바라보고 있던 김영지의 시선과 부딪쳤다. 사내는 성큼성큼 이쪽으로 다가왔다. "미스 리 아니십니까? 전화를 주셨던." 그가 한국어로 물어 왔으므로 김영지는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네, 제가 이정민이에요. 바쁘실텐데 뵙자고 해서 미안합니다. " "천만에요. 이정민씨가 이런 미인인 줄 알았으면 넥타이라도 바뀌 매고 오는건데요." 그가 얼굴을 펴고 활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저는 난데없이 저를 찾으시길래 놀랐습니다. 더구나 서울에서 오셨 다구 해서요." 김영지는 잠자코 웃으며 박정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꾸밈이 없는 밝 은 성격으로 보였다. 웃는 얼굴의 인상도 좋고 말소리도 듣기 좋았다. "LA에는 언제 오셨습니까?" 마실 것을 시키고 난 박정환이 물었다. "이틀 전에 도착했어요. LA는 처음이고, 서울 본사에서는 박정환씨 이름을 알려 주더군요. 그래서." 김영지가 말을 멈추고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저에게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조그만 회사가 하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사업체를 옮기고 싶어요." 김영지의 표정은 진지했으나 박정환은 건성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본사에서 말단 파견사원인 자신을 그녀에게 왜 지명해 주 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상담은 상담이라고 할 것도 없다. 미국의 시장이 어떻다는 둥 신문에 난 이야기나 들려 주고 마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방법이 될 것이다. "어떤 사업에 흥미가 있으십니까? 제가 한번 알아보지요," 박정환이 상체를 숙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가슴에서 무 엇인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것으로 필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밝은 횐자위는 물기에 젖은 듯이 보였고 검은 눈 동자가 자신을 활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속에 움츠려 있는 것이 자 신의 모습이었다. 화장기 없는 피부였으나 윤기가 흘렀고 않은 듯한 입술은 굳게 다물 려져 있었다. "어떤 것이 좋겠어인 저는 그것도." 눈을 깜박이며 김영지는 이맛살을 조금 피푸렸다. 알맞게 자란 속눈 셉이 않은 눈꺼풀 끝에 달려 있었는데,눈이 활짝 열릴 때마다그것은 환호하는 것 같다가 감기면 비가 내리는 느낌이 든다. 박정환은 소리 죽여 한숨을 내쉬었다. 종이에서 철강까지, 과자에서 쥐약까지 수만 가지의 제품이 있고, 그것의 유통과정까지 합한다면 수 십만 개의 사업이 있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런데 아버넘이 하시던 사업은 무엇이었죠?" 박정환이 다시 물었다. 그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 녀가 아무것도 하게 되지 않더라도 함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고 싶 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길수록 좋았다. "아버지는 기계 공장을 하셨어요. 기계에는 모르는 것이 없었어요." "아버넘은 지금 " "돌아가셨어 요." "아아, 미안합니다. 그럼 이정민씨는 그 회사의 상속자이시고‥‥ 그 회사를 지금 운영은 하고 있습니까?" "네, 아버지의 친구분이 맡아 주고 계세요." "그런데 그 회사를 정리하려고 그러세요?" "네, 그래서 LA에 왔다니까요. 다른 사업을 알아보려고." "시간은 얼마나? 얼마 동안 LA에 계실 작정입니까?" "사업이 확실하게 결정될 때까지예요.그 동안 박정환씨가 저를 도 와 주시지 않겠어인 제가 사례는 하겠어요." "사례라니, 천만에 말씀을." 박정환이 머리를 저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 코리아 타운에 있는 누나와 매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이정민을보이면 과연 어떤 얼굴을 할지 궁금했고, 그것을 생각하자 가승이 뛰었다. 주위를 둘러본 고영무는 동전을 넣고 버들을 눌렀다. 혹인 사내 한 명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와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머리를 디밀고는 고 영무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수백 갈래로 랄고 있었는데, 그것을 하는 시간만도 다섯 시간은 걸릴 것이었다. 가발이 아니라 머리를 떼어서 미장원에 두고 다섯 시간후에 찾아붙일 수도 없는 노롯이다. 사내에 게서 야롯한 냄새가 浪으므로 고영무는 눈을 부릅떠 보이고는 박스의 문을 거칠게 닫았다. 밤 10시가 지난 시간이었으나 차이나 타운의 거리에는 사람들이 들 끓고 있었다. "여보세요." 저쪽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페르난도를 바뀌. 난 밀리카를 잡고 있는 사람이야." 던지듯이 말하자 저쪽은 잠시 대답이 없다. 고영무는 다시 박스 바 활쪽을 바라보았다. 혹인이 박스의 앞쪽에 서 있다가시선이 마주치자 히죽 웃었다. "여보세요." 페르난도의 굵은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말하시오." "페르난도, 내일이다. 내일 10시까지 돈을 준비해라. 돈은 추적이 불 가능한 잔돈으로 준비할 것, 물론 이건 너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밀리카의 이야기로는 4억 2천만 달러를 받았다는데 반으로 나눠서 2억 달러다. 잔돈은 네가 가져. 한 시간이라도 늦거나 다른 수작을 피웠다 가는 네 여동생의 시체를 보게 될 것이다, 페르난도." "이봐, 너는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나 알고 있어?" 페르난도가 버럭 소리를 쳤으므로 고영무는 수화기를 귀에서 조금 떼었다. "2억 달러면 대형 트렁크로 다섯 개나 된다. 그 돈을 어떻게 하루 동 안에 ‥‥‥‥ "난 어제부터 이틀을 주었어." "넌 잡히게 돼. 그델 너는 죽는다. " "아마 네 동생이 먼저 죽올게다. 페르난도, 네가 죽을 때까지 잊혀지 지 않는 모습으로 말이다. " "01, 01 flal." 다시 뭐라고 고함을 지르는 수화기를 귀에서 멀찌감치 때었다가 고 영무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혜이, 내가 좋은 것 보여 줄테니, 어때?여자, 마약, 무엇이든 있 어." 문을 열고 나오자 혹인이 바짝 다가붙었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쉴 새 없이 구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이쪽의 마음도 점점 조급해 졌다. "필요없어." 고영무는 사람들을 혜치고 걸음을 빨리 때었다. "이봐, 10달러면 돼. 10달러면 극락에 간단 말이야." 혹인은 바짝 붙어 따라오면서 떨어지지 않았다. "필요없다니까. 꺼져!" 그에게 바학 얼굴을 들이댄 고영무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듯 말 했다. 사내가 주춤 얼굴을 뒤로 젖혔다. "이 개하고 붙어먹을 노랭이가." 사내의 횐자위가 더욱 커지면서 차총 발걸음이 느려지더니 이윽고 옆에서 사라졌다. 고영무는 사람들을 혜치고 사거리를 건너 다시 인도를 따라 내려갔다.
아파트에서 세 블록이나 떨어진 공중전화 박스를 이용한 것은 만 일의 경우를 위해서였다. 요즘은 전화박스를 이용해도 금방 추적이 가 능해진 것이다. 그는 다시 사거리를 건너 사무실 빌팅을 지나면서 힐끗 뒤쪽을 바라 보았다. 그를 미행하는 듯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인도에는 사 람의 통행이 뜸해져 있었다. 고영무는 사무실 빌팅의 옆골목으로 들어졌다. 그곳은 쓰레기더미 로 가득 괌인 곳이어서 악취가 코를 쩔렀고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아침에 쓰레기차가 걷어 가기 좋도록 쓰레기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져 벽 쪽에 쌓여 있었다. 고영무는쓰레기더미 옆쪽의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자신이 들어왔던 골목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20미터쯤 떨어진 입구는 밝았고서너 명의 행인이 바쁜 걸음으로오가 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골목 입구에 선뜻 한 사람이 나타났다. 큰 키에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그가 이쪽을 들여다보았는데, 이쪽이 어두워 보일 리는 없었지만 고영무는 벽에 둥을 바짝 붙였다. 그는 아까 그 흑인이었다. 따라오지 않은 줄 알았으나 어둠에 묻혀 서 어느 틈에 뒤를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입구에서 다른 혹인 한 명의 모습이 보였다. 이마에 붉은 띠를 동여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 다. 그들은 주춤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반대쪽 입구는 50미터가 넘 었고 차도를 달리는 차량들이 보였다. 그들은 고영무가 반대쪽 입구로 빠져 나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차즘 고영무가 기 대 선 쪽으로 다가왔다. 사내 한 명이 바닥에 떨어진 깡통을 발로 걷어찼으므로 장통이 구르 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누군가가 낄낄거리고 웃었고 중얼거리는 소리도 났다. "혜이, 이봐, 노랭이. 너, 여기 숨어 있는 줄 안다. 나와." 아까 그 혹인이 소리쳤다. "가진 것만 몽땅 내놓으면 그냥 보내 줄게. 어서 나와. 잡히면 혼난 그들은 이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2,3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 고영무는 벽에서 둥을 떼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들을 향해 셨다. 그들은 주춤 걸음을 멈추었고 앞장 선 흑인이 입을 벌리고 웃었다. "자, 드디어 나오셨군 그래. 착하지." 그의 손에는 어느덧 번책이는 칼이 들려져 있었다. "자, 있는 것 모두를 내라. 그러면 보내 줄게." 그는 칼을 든 손을 템글빙글 돌리며 다른 손을 고영무 앞으로 내밀 었다. "자, 어서!" "여기 2백 달러 있다. 이거 가지고 가." 고영무는 지갑을 꺼내 안애 있던 지폐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으로 돌아가, 제발." 뒤쪽에 서 있던 사내가 다가서더니 재빠르게 그의 손에 든 돈을 가 로채었다. "너, 정말이야 머리를 랄은 혹인이 눈을 부라리며 고영무를 딘아보았다. 그는 칼끝 을 고영무의 가습에 대고는 한 손으로 그의 온몸을 어지럽게 더듬었다. "없어, 아무것도." 그가 이 사이로 욕설을 내및었다. "노랭 이가 2백 달러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니." 그는 고영무의 벽살을 잡고 벽으로 밀어 세웠다. "이봐, 가자구. 빨리." 딸간 띠를 두른 흑인이 뒤쪽에서 독촉하자 그는 씨근대며 칼 끝을 고영무의 목젖에 대었다. "너, 죽여 줄까? 이 자리에서? 이 자식, 시계도 안 차고 있잖아." "이봐, 보, 가자! 어서." "이 빌어먹을 노랭이 자식." 혹인의 주먹이 아린배를 치자 고영무는 허리를 숙였다. 발길이 날아 와 그의 허리를 참다. 뒤쪽에서 빨간 띠를 두른 흑인이 그를 잡았으므 로 그는 씨근대며 허리를 굽힌 고영무를 노려보았다. "너 이 자식, 운이 좋은 줄 알아. 하마터면 죽을 떤했으니까, 이 노랭 이 야." 그들은 재빨리 몸을 돌리더니 오던 길로 걸어 나갔고 이내 밝은 입 구를 돌아 사라졌다. 고영무는 허리를 펴고 쓰레기 봉지 사이에 끼워 넣은 돈뭉치와 수첩 을 꺼내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시계도 찾아 팔목에 崙고 소음기가 끼 워진 권총도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밀리카는 의자에 묶여 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 서는 고영무를 보자 눈을 치켜 였다. 고영무는 그녀에게 다가가 입에 붙여 놓았던 데이프를 떼었다. 살갖 이 테이프에 단단히 붙여져 있었으므로 그녀는 아픈 모양인지 이맛살 을 찌푸렸다. "시간이 좀 걸렸어, 먼 곳에서 전화를 하느라고. 그리고 오다가 강도 를 만나서 2백 달러를 털렸지." 고영무는 그녀의 팔과 다리를 묶은 끈을 풀었다. "내일 저녁 10시까지 2억 달러를 준비해 놓으라고 했어, 그때까지 돈이 준비되지 않으면 당신을 처치한다고 말이야." 밀리카가 팔목을 주무르며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 자 고영무가 어깨를 한번 들썩여 보이면서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나는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어. 이제 및떳하 게 이름을 내놓고 살지 못하게 되었으니 돈이라도 모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밀리카가 시선을 들어 고영무 머리 위쪽에 걸린 시계를 을려다보았 다. "1 1시 반이야. 앞으로 스물두 시간 반이 남았어." 고영무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너야 날 이용하고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입장이 되면 그 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지. 더욱이 살인자의 누명까지 덮어썼으니 말이 야." "덕분에 나는 정말 살인을 하게 되었어.네가죽인 김강남의 아버지 를 죽이게 되었으니까." 밀리카의 시선이 퍼뜩 고영무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영무가 바닥에 딛고 있던 두 발을 떼자 흔들의자는 앞뒤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었지. 날 죽이려고 권총으로 美아 대더군, 그래서 다리를 걸어 아래쪽으로 떨어뜨렸는데." "또다른 살인이 있었어.우리 어머니가나때문에 병이 나드러누워 계시다가 살해당하셨어." "원인은 나야. 내가 돌아가시게 한거지." 고영무는 흔들리면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맥밀란, 아니, 매린이 너와 한통속인 줄은 몰랐다. 너희 둘이 사이라는 것도 몰랐어." 밀리카가 닫혔던 입을 떼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녀의 이맛살이 다시 찌푸려졌고 시선은 다시 고영무 위쪽으로 흘렸다. "자꾸만 시계를 보는데, 누구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있는거 아니 면 시간 가기를 기다리는거냐 밀리카의 시선이 이쪽으로 옮겨졌다. "난 살아야 돼 " 그녀의 말소리는 낮았으나 고영무에게는 똑똑하게 들렸다. "내 몸 속에는 또 하나의 생명이 자라고 있어. 너는 내 아이까지 죽 일 수는 없어." 고영무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넌 절대로." 갑자기 말을 그친 밀리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고영무를 노려보 았다. 입술의 아랫부분이 이에 물려 금방 하얗게 첫기가 가셨다. "그거 축하할 일이로군, " 고영무가 흔들거리며 말했다. "여러 가지로 축하할 일이다. " 입 안에 들었던 밀리카의 아랫입술이 다시 제자리로돌아왔다. 오래 계속된 긴장 때문인지 밀리카는 머리를 젖히고는 눈을 감았다. 머리칼 한 움큼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 한쪽 눈을 가리고 있었다. "첫번째로 축하할 일은 네가 기술적으로 피임을 해서 그것이 내 아 이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참 다행스럽고 축하해 줄 일이야." 밀리카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고영무가 흔들거리면서 말을 이었 다. "두 번째는 매린 그놈이 죽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도 태어날 아이가 사기꾼 같은 제 아비의 꼴을 안 보게 되어서 축하할 일이다. " 밀리카의 감은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을 뿐 딴응이 없다. "세 번째는," 고영무는 그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내가 이제는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의 인질을 잡고 있다는 것이 지. 페르난도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르겠군." "지금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내 손으로 너를 죽이는 것이야." 눈을 감은 채로 밀리카가 말했다. "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널 죽이고 싶어." "그래, 기회를 찾아화라." 방바닥에 발을 딘고 고영무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긴 밤이 있어.지난번처럼 그렇게 기회를 잡아봐라.내가 잠든 사 이에 김강남을 데려다가 소파에서 죽였지. 이번에는 대상이 나야." 그는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어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나이프는 소리를 내며 탁자 위에 델어져 두어 번 구르다가 멈췄다. 밀리카가 숨 겨 온 나이프였다. 출국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선 대열 속에 신용만과 최매광, 홍성희가 끼여 있었다. 앞쪽에 선 신용만은 차분한 얼굴로 시치미를 떼고 있었으나 가운데 에 선 최대광은 다른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큰 키로 좌우를 자꾸 만 두러번거렸다. 그의 뒤쪽에 서 있는 홍성희도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가릴 목적으로 짙은 선글라스를 끼었으나 눈을 제외한 코와 입술의 윤 곽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신용만의 차례가 되어서 여권과 비행기 표를 든 그가 세관원 앞에 딘다. "LA로 가시는군요." 비행기 표를 바라본 그가 여권을 펼치며 말했다. 그는 한 손으로 재 빨리 컴퓨터의 키를 두드렸다. 신용만은잠자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 다. 힐끗 머리를 든 세관원이 시선이 마주치자 머리를 끄덕이며 여권 과 비행기 표를 돌려주었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신용만이 안쪽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븐 최대광이 침을 끌혀모아 삼 키고는 한 걸음에 세관 창구 앞에 싫다. 서류를 내밀자 세관원이 눈을 끔벅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씨름 선수 아니세요?" "네, 그, 그렇습니다. " 최대광이 커다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어느 팀이시죠?" "저, 신안산업." "아아, 신안산업, 전호웅 선수가 있지요. 지난번에 아람게 결승에서 졌습디다. " 그는 여권에 소리나게 도장을 책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네, 고맙습니다. " 그가 머리를 숙이자 세관원은 활짝 웃었다. 최대광이 비척거리며 다 가오자 기다리고 서 있던 신용만이 템긋 웃었다. "저기, 너 뭐 떨어졌다. " 신용만이 정색을 하며 뒤쪽을 가리켰으므로 최대광은 몸을 돌렸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말이여?" "네 간." 턱을 들어 최대광의 가승을 가리키며 신용만이 시치미를 떼었으므 로 불끈 이맛살을 찌푸리며 다가서던 최대광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홍 성희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안경을 벗어 손에 들고 있었으므로 활짝 웃는 얼굴이 온통 드러나 보였다. "이젠 됐어요, 모두." 다가온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제까지 체면을 차리느라 서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던 말이었다. "얼마나 가습 조였는지 몰라요." 그 말도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정말 개운해요. 이제 새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그 시간에 유장수는 사무실에서 전우석과 마주맞아 있었다. 그는 담 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머리를 들었다. "그년은 계획적으로 사건을 폭로한다든가 흥정을 붙일 만큼 간덩이 가 크지 못하다. 하지만 장규식이 그년하고 붙었을 때는 그럴 가능성 이 있지." "장규식은 그제 아침에 집을 나가서 행방을 감추었습니다. 그놈을 따라다니던 조무래기 7,8명도 함께 종적을 감추었는데요." "그놈이 내 목숨을 노리다니,이호윤의 말대로라면 내 자리를 차지 한다고 했다는데‥‥‥‥ 그는 아랫배를 들씩이며 콧김을 한번 내뿐었다. "도대체 그놈이 갑자기 무슨." "사장넘, 어했든 그농이 돈을 청령해 간 것은 사실 아넘니까?그리 고 그 일은 바로 탄로가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방법밖에 더 있겠습니까?" 전우석의 말이 사리에 맞았으므로 유장수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공항에다 연락해 두었어?" 그가 문득 묻자 전우석이 머리를 끄덕였다. "경찰에서 공항으로 통보가 갔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경찰에 사건을 접 수시 켰으니 까요." "최대광이," 문득 유장수가 흔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놈이 어떻게 해서 안진홍이 기다리는 곳을 알았단 말이냐 "미행했을지도 모릅니다. 집 앞에서부터 말입니다. 그놈이 그 여자 를 좋아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아니떤 그 여자가 어떤 방법을 써서 그놈에게 연락을 했을지도." "그년이건 최대광이건 장규식이건 어떻게든 잡아라. 우선 한 놈만 잡아도." "이사장도 힘껏 도와 주겠다고 했으니까요." 이맛살을 찌푸린 유장수가 머리를 돌렸으므로 전우석은 말을 멈줬 다. 그는 장규식보다 경력이 짧아 유장수의 측근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전주에서는 단단히 기반을 굳혔던 사내였다. 그러나 이춘식이라는 같 은 연배의 사내가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보스에 임명되자 제2인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유장수의 측근이 되었다. 그것은 6개월 전의 일이 었다. 그는 5인 위원 중에서 자신을 지지한 유일한 위원이 유장수인 것을 알고 있었다. "사장넘, 이사장이 마약을 구하러 사람을 다시 보내는 모양인데요." "또? 아니, 엊그제 나한테 가져간 500그램은 어떻게 하고?" 유장수가 눈을 치켜 였다. "그리고 어디에다 뿌리는거야?" "인천이나 수원의 지역 보스에게 나눠 파는 것 같습니다만 원체 비 밀리에 움직이는 것이라‥‥‥‥ "이놈이 단단히 맛을 들였군." "단속이 심할수록 가격이 뛰니까요. 더구나 지역 보스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라 위험 부담도 적습니다. " "요즘은 강일준 같은 거물이 사라지고 나니까 잔챙이들이 들락거려 서요, 가격이 천방지축입니다. " 유장수는 그를 바라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이한기가 절름거리며 다가오자 나무 벤치에 앉아 있던 조한철이 일 어셨다. "형넘, 인천에서 약이 뿌려지고 있는데요. 수동이한테서 연락이 왔 습니다. "
첫댓글 흑인 쫄다구에게 당하는건 뭔경우여 ㅎㅎㅎㅎ큰일을 위해선 작은건 참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