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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세요!
참고말씀: 시16:8-11; 18:4,5; 110:1; 116:15; 요1:1; 5:17,18; 11:25; 21:23; 행1:8,22; 3:15; 5:30; 4:33; 7:59,60; 17:18; 롬6:6-9,23; 8:2; 고전15:3,4,17-19; 빌3:10,11; 히2:14,15; 요일5:20; 계9:3,5; 14:14
읽을말씀: 행2:22-36
주제말씀: 행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3,24)
사도 베드로의 첫 번째 설교의 요지(要旨)는 무엇이었으며, 또한 초대교회의 복음 증거자들의 주된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께서 말씀대로 부활하셨다는 것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 그 예수께서 바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36절)
어째서입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核心)이므로, 이것을 빼놓고서는 복음(福音)을 도무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헛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그리스도 안에서 먼저 잠든 성도들과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8,19)
하지만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믿음은 참되고,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함 받았으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복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믿으십니까? 원컨대 이 확신 속에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초대 교회 성도들이 일관되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갔던 것처럼 말입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행1:22)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32절) /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행4:33) /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행17:18 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께서 성경대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또한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음을 믿고 그리 고백하고 있습니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
둘째, 더 이상 사망에 매이지 않고 그 고통에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2:24)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누가 예수님을 살리셨다고 말합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24절 상) /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32절 상) /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행3:15 중) / “너희가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행5:30)
물론 이외도 무엇으로도 다시 사셨습니까? 예수님 자신의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심과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5:20)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요5:17,18)
어디에서 살리셨습니까? 어디에서 살아나셨습니까? 사망의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24절 상) 사망의 고통이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사망의 권세입니다. 즉 죄의 결과는 사망인데,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상) 마귀는 이 죽음을 통하여 권세를 잡았으며,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2:14 하) 이 권세를 통해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들 위에서 지금까지도 왕 노릇 해오고 있습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5)
그런데 왜 이를 사망의 고통이라고 표현한 것입니까? 사망(死亡)은 모든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이고도 고통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히2:15 상) 그래서 이를 흔히 무엇에 빗대기도 합니까? 전갈의 권세입니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계9:3 하) 어째서입니까? ‘전갈’은 꼬리 끝에 침이 있는데 그 독침에 쏘이면 몹시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계9:5 하)
하지만 예수님은 이 같은 권세를 친히 깨뜨리시고 그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니 사망의 줄(시18:4,5)이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시18:4,5) 더 이상 예수님을 붙잡아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24절 하) /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롬6:9)
예수님만 이 같은 사망의 올무에서 벗어나십니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가운데서 놓이는 게 분명합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5)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그리스도를 사망의 고통에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하)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6:6,7)
물론 이는 무슨 말이 아닙니까? 우리가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요21:23)
허면 무엇입니까? 죽어도 다시 산다는 말이며,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영원히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
이로 보건대 무엇이 변하였습니까? 죽음의 성격입니다. 즉 이전까지는 형벌로서의 죽음이었으나, 이제부터는 성화의 최종 관문으로서의 죽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4 하) /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116:15) /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9,60)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그리스도를 사망의 고통에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을 믿고 그 부활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오늘도 부활의 권능(빌3:10)을 체험을 통해 알아가고 힘입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러 하노니.”(빌3:10,11)
셋째, 다윗이 미리 보고 증언한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서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2:30-32)
베드로는 누구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한다고 강조했습니까? 이스라엘의 왕 다윗입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25절 상) 그러면서 이에 대한 근거 구절로 구약성경의 어느 부분을 인용했습니까? 시편 16편 8절 이하입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내 앞에 계신 주’로 표현되는 예수께서 항상 자신의 우편에 계셔서 자신을 요동하지 않게 해주시므로 기뻐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25,26절)
‘주의 거룩한 자’, 곧 예수님으로 썩음을 당하지 않고 다시 살게 해주시고, 이 예수님을 통해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니 기쁨이 충만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셨으므로.”(27-29절)
특히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한다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무엇과 연관 지어서 말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31절) 다윗 역시 어떤 존재였음을 강조하면서 말입니까? 선지자(先知者)입니다. “그는 선지자라...”(30절 상)
또한 다윗의 어떤 시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주와 그리스도 되심을 증언했습니까? 시편 110편 1절입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은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34-36절) /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은 갑자기 즉흥적으로 진행된 일이 아니요, 오히려 다윗 등의 선지자들을 통해 오래 전부터 예언되어왔고 또한 성취된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4)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성경대로 배우고 믿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도 성경대로 배우고 믿어야 합니다. 즉 성경에 근거한 신앙생활을 하되 성경이 무수히 증언한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부활신앙으로 힘써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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