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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봉사자
본 문 : 고후 2 : 12 - 17 2008/01/13주일 낮
저는 가끔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얘기하듯이 많은 성도들이 모여들고, 크고 아름다운 교회당을 가지면 좋은 교회일까요? 또는 많은 선교비를 지출하고 다양한 구제와 봉사를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일까요?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교회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의 14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는 말이 나옵니다. 좋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교회입니다. 좋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피우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자는 사역을 통해 자신의 냄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멋진 봉사자의 모습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말씀 속에서 멋진 봉사자의 몇 가지 특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12-13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한 곳에 복음전파의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통해 복음 전파에 힘썼습니다.
멋진 봉사자는 전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위해 항상 충일한 생명의식으로 사는 성도입니다. 그러한 삶을 위해서는 우선 복음전파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가 나를 이끌어줍니다. 인생을 살면서 좋은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선박과 같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에 이끌려 열심히 살다보면 아름다운 삶을 이루게 되는 것이죠.
세상에는 아름다운 목적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난 7년 여 동안 자신은 전셋집에 살면서 약 40 억 원을 기부해 온 가수 김장훈씨는 ‘돈을 모아서 기부하겠다고 생각하면 결코 기부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기부할 곳과 기부할 액수를 미리 정해놓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불가능해 보이던 목적들이 하나 둘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가수 박상민씨도 남 몰래 많은 기부를 한 것이 전해지기도 했죠. 참 멋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봉사는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구원의 백성이 된 저와 여러분의 심장은 언제나 구령의 열정으로 피가 끓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전도가 삶의 목적이 되어야 돼요.
어느 날, 광주에 사시는 한 장로님이 비몽사몽간에 천국에 갔습니다. 찬란한 광채가 나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너는 누구냐?”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는 광주에 사는 아무개 장로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천사에게 생명책에서 이름을 확인해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천사가 확인해 보더니 이름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다급하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광주의 모 교회 장로로 40년 동안 봉사하며 열심히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예수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다급해진 장로님이 천사에게 다시 한 번만 자기 이름을 확인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무개 장로라고 했소! 이 생명책은 전도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요. 당신이 전도한 사람이 없어서 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소.”
그 말을 듣고 한탄과 후회로 한 맺혀 울다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가족들이 누워있는 자신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임종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임종 직전에 다시 살아난 것이죠. 그 후 장로님은 연장된 삶을 사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전도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으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진다는 주님의 말씀은 전도는 최고의 천국 상급을 예비하는 행위라는 말입니다. 전도를 외면하면 하나님도 그를 외면하고, 전도에 관심을 두면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관심을 두실 것입니다. 새해는 우리 살림교회 교우 모두가 최소한 한 명이상 전도하는 목표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14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무엇을 이겨야 합니까? 성도는 3가지 에스(S), 즉 죄(sin)와 자기(self)와 마귀(Satan)를 잘 이겨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아니라 ‘형제를 이기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 안에 있는 한 형제들이 교회에서 싸우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국세청 선교회를 인도하고 식사를 나누면서 어떤 분에게 들은 얘깁니다. 광주의 모 교회에서는 교회가 두 개로 분열되어 원로 목사님은 본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현 담임목사님은 지하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교회가 분열하고 나누입니까? 서열과 기득권을 따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서열을 따지는 군대가 아닙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다는 말씀은 성도의 축복에 관한 원리이지만, 사실 성도의 태도에 관한 원리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오래된 교인은 스스로 왕따가 되기를 자처하고 나중에 온 교인을 왕자와 공주처럼 앞세워 주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멋진 봉사의 의미를 아는 사람입니다. 봉사자의 멋진 모습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처럼 훌륭한 분도 스스로를 ‘죄인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바른 신앙경력은 겸손과 온유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자기를 잘 깨뜨리고 이겨야 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기 위해 자신의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향유를 붓기만 해도 되는데 왜 굳이 옥합까지 깨뜨립니까? 마리아의 옥합은 자기를 상징합니다. 즉 욕심, 이기심, 자존심, 교만을 깨야 한다는 말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14절 하반부를 보십시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성도답게 사는 모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고백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떻게 그처럼 차원 높은 감사가 고백될 수 있을까요?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고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은혜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는 결코 물질이나 성공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과거에 부흥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억지로 물질적 봉사와 연결시키려 했던 적이 간혹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축을 앞두고는 어김없이 일류 부흥사라는 분을 초청해서 부흥회를 하고, 건축헌금을 작정하게 했습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물질과 억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도는 순수하게 말씀에 순종해서 은혜를 많이 받고, 은혜 받은 후에는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합니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할 줄 아는 것이 참된 영성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가 나는 일입니다. 은혜 받고 감사할 줄 아는 성도는 어떤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너희도 환난을 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환난을 면제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환난은 그대로 두시고, 그 환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하셔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하며 환경을 극복하는 자기 변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기독교와 미신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미신은 팔자를 고치고 환경의 변화를 추구하지만 기독교는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 자기 변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잘 믿을수록 자기가 변해서 환경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성격은 절대 안 변한다고 말하지만 정말 잘 믿으면 성격도 변하고 사람도 변합니다. 물론 잘 믿는다고 처음부터 주님처럼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분명히 변합니다.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훈련은 범사에 감사하는 훈련입니다.
4. 말을 성도답게 해야 합니다.
17절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성도는 혀를 잘 통제해서 말을 지혜롭게 하고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고 난 다음에도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다만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또한 성도는 말을 긍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삶의 위기가 찾아오지만 정말 큰 위기는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긍정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합성된 말입니다. 위기가 곧 찬스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도 성도는 “이제는 끝났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길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안 된다!”고 말하면, “기도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여러분,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신의 언어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말이 바뀌면 세상도 바뀝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지난날의 언어 습관도 바뀌는 것을 포함합니다. 회개하면 세상적이고 부정적인 말이 영적이고 긍정적인 말로 바뀝니다. 하나님은 언어습관이 좋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물질이 많아지고 병이 낫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언어 습관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약할 때는 기도할 때도 “나는 원합니다(I want).”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한 신앙이 생기게 되면 사명과 책임감을 느끼고 “나는 해야 합니다(I must).”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다가 믿음이 더 성장하면 “나는 할 수 있습니다(I can).”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할 수 있다!”는 담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습니다. 이제 긍정적인 믿음의 말을 많이 하십시오. 남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결정적인 도구가 말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말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말하는 입만큼 듣는 귀도 중요합니다. 기도도 쌍방기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소원을 말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도 기도입니다. 잘 들을 줄 알아야 바람직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죠.
여러분, 좋은 교회 봉사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결코 그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신앙이 성장하려면 직분도 맡고, 한 가지 이상 꾸준히 봉사하는 봉사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를 가장 힘들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내년에는 저 교사 안할게요. 목사님, 당분간 찬양대를 좀 쉬어야겠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그날은 정말 맥이 빠집니다. 일을 하다가 안 하면 신앙도 후퇴하고 교회에서 마음도 멀어집니다. 반면에 목회자에게 가장 기쁜 일이 있습니다. 사역을 받을 때, 혹은 목회자의 부탁을 듣고 기꺼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때입니다.
이제는 자율적인 신앙을 가지고 멋진 봉사자의 꿈을 꾸십시오. 남을 따라가는 위치에만 머물지 말고 남을 이끄는 위치에 서십시오. 물론 성도는 낮아져야 합니다. 그러나 자세는 낮추되 실력은 높이고, 마음은 낮추되 영향력은 높여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어떤 학생이 40명 중에 40등을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성적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나태한 것도 죄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성도는 공부가 되었든 기술이 되었든 열심히 해서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야 합니다. 앞선 사람이 되면 안 보이는 것도 보일만큼 안목도 커지고, 동시에 축복의 지경도 넓혀집니다. 본문 15-16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열심히 준비하여 좋은 직분자가 되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왕 주님을 믿을 바엔 열심히 믿으십시오. 이번에 새로 직분자가 되는 분과 지금까지 직분을 맡은 분들 모두 최선을 다해서 교회를 잘 섬김으로 놀라운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