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지(週報紙)를 받아들고
장을 넘기다 보면 유독 마음이 끌리는 내용이 있다.
성경말씀에서도
"나그네를 대접한 것은 예수님을 대접한거와 같다"고 했다
남들에게 내가 친절한 사람이라는걸 보이기 위해서가 아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베푸는 친절과 사랑이 필요할때라고 했다
필자께서 日本 어학연수중에 겪었던
작은동네 작은 채소가게 주인의 양심적이고, 친절하고 자상한 모습에 감동을 받고
그 당시 일본에서 받은 친절이 계기가 되어 이주노동사목에 근무하면서 동남아등 이주노동자들의 편의를 돕는 모습이 너무 감동으로 와 닿는다
본문 내용을 좀 요약하자면,
<그 옛날 일본 채소가게 주인의 얼굴을 본다
되돌려 받을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낮선사람에게 베푼 친절과 환대 야말로 참다운 것이다>
나도 일본에서 몇년간
유학생활을 해본 경험이있기에, 일본인들의 친절과 정직은 감동을 불러오기 충분했으리라고 본다
유학당시,
알바로, 두 달간 대형 활인마트에서 생선을 포장지에 담아 감싸는 일을 한적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서민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는 값비산 참치(まぐろ) 를 먹기란 쉽지 않았다
또, 쉽게 먹을수 없는 고급 음식이였다
生物 에 있어서 신선도는 生命과도 같은것이다
주인의 잘못된 욕심이 들아가면, 얼마든지 날짜를 변경시켜 이익을 취할수도 있을 터이다
생선부(せんぎょふ)에서 일하면서 ,
鮮漁 은 날짜가 하루 지나면, 2/3값이 되고, 하루 더 지나면 반값, 사흘이 지나면 폐기해 버린다
나도 시골, 바닷가 태생이라 시일이 조금 지난 생선을 판매는 하기에는 좀 글치만..
삶거나 구워 먹어면, 아무렇지도 않다
먹을 만한 음식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다
못먹고 굶주린 귀숙사 동료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가져오고 싶지만, 처음에는 체면상,,
젊은 청춘에게 그져 얻는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몆번을 망설이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店 長 (てんちょう)으로부터 허락을 얻을수 있었다
규정상 반출 할수 없지만,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외국인,유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내려주신 사려깊은 배려였다
자전차에 여기 한 봉다리 ,저기 한 봉다리 메달고 올때의 그 기쁨!!
기숙사생(りょう)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고단백질,, 에너지원이 되기도 했었다
金海에는 이주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을 보는게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동상동 어느지역에는
외국인 거리도 생겨나고, 다채로운 외국 문화가 유입되어, 문화의 거리로서의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그 분들이 자국에 돌아가면,
한국을 흥보하고 또.김해를 알리는 파수꾼, 민간 외교관들로서 역활을 할실 분들이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이상한 눈으로 홀대하지 말고,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듯 ,정성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어야 될것 같다
작년 이맘 때쯤일까,
한번은 작업차,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외국인 근로자 한분이 길을 물어왔다
창백한 혈색,구부장한 모습, 한눈으로 봐도 몸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석달 전에 베트남에서 왔다며,
말이 어눌해서 무슨말인지, 도통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손짓.발짓.몸짓 다 보태어도 뜻이 전달되지 않아 ,우연찮게 던진 일본어 한마디가, 답이되어 돌아왔다
다행히 베트남에 있을때
일본인 저택 정원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 어느정도 일본어가 통할수있었다
건강이 좋지않아, 병원에 가고 싶은데, 진료 잘하는 종합병원을 안내해 줄수 없냐는 거였다
삼계에있는 종합 병원이 생각났다
바쁜 종합병원 의사들이, 알아 들을수 없는 말에 ,얼마나 귀담아 들어 줄수있을까?
내심 걱정스러웠다
안되겠다 싶어 ,,
근처 벤치에 앉아, 증세를 일일이 적어, 꼼꼼히 확인시킨후 , 종이 한장 분량정도로 정리해서,내 나름대로의 소견을 넣은 종이를 의사에게 단디 보여주라며, 내 전화번호와 함께 적어주었다
그것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
택시를 잡아 기사에게
요금을 후하게 지불하고, 삼계동 병원까지 잘 부탁 한다며, 청년을 태워보냈다
청년의 크고 깊은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고맙습니다" 연발하며 떠나는 발걸음 잊을수없다
그 후, 병원에서 특별히 연락이 없는걸보니, 진료가 잘되어 건강을 되찾았나 보다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생활한다는건 만만찮은 곳이다
그 옛날에 내가 첫 일본에서 그랬던것 처럼...
25세의 그 청년은
잠시나마, 한국에서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
필자가 말했듯이
그 옛날 일본 채소가게 주인의 얼굴을 본다 라듯
나 역시 일본 유학생활때 받은
그 호의에, 보답 하는 일이기에, 처음보는 사람일지라도 낮선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성경말씀처럼
" 나그네를 대접하는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거와 같다"
9 월 15 일
지난 주보지를 회상하면서
* 나를 드러내기위한 목적으로 쓴 글은 아니올시다*
첫댓글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가합니다.^^
형제님~너무멎집니다 ^^짱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