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목요일
이사야 41,13-20 마태오 11,11-15
2024. 12. 12. 과달루페의 성모님
주제 : 하느님의 선언
오늘은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발현한 성모님의 축일입니다. 1500년대, 원주민의 소년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기적을 요구하는 주교님에게, 소년을 통하여 한겨울에 장미꽃이 드러나는 놀라운 모습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지금의 과달루페 대성당이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드러난 기적을 보고서 놀랍게 여기지만, 거기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읽는다면 어떤 표현을 말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서 사람들은 놀라기 마련입니다. 자기의 삶에서 예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의 삶을 보시고 그 삶의 의미를 해석하는 표현을 들어도 우리가 놀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고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신다면 우리가 그 모습을 보고서 기적이라고 여길까요? 우리가 그 모습을 보고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밝히신다고 여길까요? 생각과는 다르게 아마도 사람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생각대로 세상에서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삶을 높게 보시고 그가 하는 일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에 세례자 요한이 활동한다면 우리는 과연 세례자 요한의 삶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내가 아는 생각대로 세례자 요한이 산다고 칭찬할까요? 아니면 그의 삶에 관한 평가를 낮추겠습니까?
세상의 일은 우리가 아는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일은 우리가 아는 대로만 실현되지도 않습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이라고 우리가 쉽게 말하지만, 그렇게 하는 말과 더불어 나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우리는 미리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현실의 삶을 딛고서 올바른 삶을 말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도록 당신의 뜻을 밝히셨습니다만 우리가 그 놀라운 일을 현실로 만나기 전에 사람은 올바른 삶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신다고 말할까요? 아니면 그 잘못의 책임을 사람의 삶에서 찾겠습니까? 우리가 바른 삶을 드러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