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화) 이사야 53:1-12 찬송 588장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나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개역 개정)
- 제 4 여호와의 종의 노래(종의 수난과 승리) -
여호와의 종, 곧 고난받는 메시야의 확실한 승리에 대해 예언한
앞단락의 서곡에 이어 오늘 말씀은 메시야의 수난과 대속에 대해
본격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3절에서는 고난받는 종
곧 메시야의 초라한 모습과 사람들의 멸시에 대해
4-6절에서는 메시야의 수난의 목적이 우리 죄인들의 대속을 위한 것임을
7-9절에서는 메시야가 대속 사역의 완성을 위해
무죄하시면서도 묵묵히 모든 고난을 다 받으심을,
10-1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 메시야를
존귀케 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는 전반적으로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때문에 이 노래를 대할 때 우리는 자칫 메시야 수난의 참상만을 생각하면서
감상적인 눈물을 흘리는데 머물기 쉽다.
그러나 이 노래에는 그같은 값싼 감상주의의 차원을 넘어
우리의 신앙에 충격적인 도전을 주는 우렁찬 음성이 서려있다.
한편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1절)라는 서두의 글은
단지 부정적인 의미에서 메시야 예언을 믿지 않는데 대한
독자들의 불신앙을 책망하거나 탄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과 오묘한 구속의 손길을
우렁찬 음성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장차 전 인류의 구속주로 오실 메시야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연약하고 볼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나,
그것이 바로 도무지 치유 불가능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화평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구속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 기적 중의 기적인 메시야의 대속 방법을 생각할 때
그분만이 우리 구주라는 사실을 다른 어떤 논리적인 설득이나
웅변을 통해서보다 더 강하게 확신케 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여호와의 뜻을 이루며
승리를 얻는 비결은 창과 칼로 하는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메시야께서 그의 수난의 삶을 통하여 보여 주셨듯이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순종뿐임을 교훈하고 있다.(요16:33; 롬12:21; 벧전2:20-21)
11절)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상반절(그가~여길 것이라)은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바치는 대속 사역을 통하여 얻은 결과를 보고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여호와의 종의 희생이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여호와의 종의 희생은 그 자신도 보고 만족하게 여길 만큼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가치 있는 희생이다.
여호와의 종은 자신 하나의 희생으로 수많은 생명을 열매로 얻으실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듯이
여호와 종의 희생도 많은 생명을 열매로 맺을 것이다.
실제로 여호와의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 희생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영혼으로 생명을 얻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대속 사역을 수행하신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이 구원의 열매로 맺어졌는가!
이러한 일은 그가 다시 오셔서 추수하시는 그 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바다의 모래보다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
계시록7:9-10을 보면 이 세상 마지막 때에
온 세계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라고 찬양한다.
이를 보는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만족하시겠는가?
자신의 수고에 대하여 얼마나 흐뭇해 하시겠는가?
그리스도는 이 만족을 바라며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수고를 마다하시지 않았다.
그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셨다.
그렇다면 이러한 보상은 비단 그리스도께만 주어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보상은 모든 영적 수고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본이 되신다.
그의 죽음도, 그의 다시 사심도 다 장차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수고에 만족할만한 보상이 주어진 것처럼
우리의 모든 의로운 수고에도 하나님은 만족할만한 보상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의 의로운 수고는 단 하나도
그대로 땅에 떨어져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법이 없다.
우리의 모든 의로운 수고에는 다 그에 합당한 열매가 있고 보상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에 충분한 보상으로 갚으신다.
비록 지금은 그 수고가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고
아무런 열매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된다.
성경은 이와 관련하여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고 증거하고 있고
주님께서도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기쁘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을 위해 의로운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들이 인내로 그 모든 수고를 다 감당하고 마치게 되는 그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의 축복으로 만족할만한 보상을 베푸실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