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G6이었다.
한국도 겨우 G20에 겨우 끼여들었다.
1975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프랑스 랑부예에서 처음 열린 선진 6개국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독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였다.
‘G’는 그룹(Group)을 나타낸다는 게 보통의 해석이지만, 그레이트(Great)의 약자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여기에 들지 못한 나라들이 시샘한 건 당연했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높았던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의 불만이 많았다.
이들을 달래기 위해 8차 회의에 벨기에 총리가, 12차 회의에 네덜란드 총리가 ‘일회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회의가 창설된 배경은 크게 세가지다.
첫번째가 1971년 미국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한 이른바 ‘닉슨 쇼크’였다.
두번째는 제3세계의 자원 민족주의로 인한 ‘1차 오일 쇼크’였다.
세번째 배경은 종전 이래 케인스 경제학의 처방으로 황금기를 맞았던 세계 자본주의가 60년대 말부터 쇠퇴하면서 좌파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유럽의 보수세력은 ‘반공’ 분야의 대선배인 미국을 끌어들였다. 이른바 제1세계가 제3세계와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것이 G6이었던 셈이다.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G6이 아니라 G7이었다.
2차 회의부터 캐나다가 추가되면서 출범한 G7은 신자유주의 전도사 마거릿 대처와 반공 투사 로널드 레이건의 활약을 거쳐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목도하면서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는 세계 자본주의의 요새가 된다.
소련과 중국을 배제하려고 유엔 바깥에 딴살림을 차렸던 G7이 러시아의 참여로 G8이 되고, 중국 등 신흥경제국들을 포괄하는 G20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G7로 대표되는 서양 제국주의의 영향력 쇠퇴를 증명한다.
유일 체제가 흔들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진국이라도 된 양 우쭐해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