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무디 블루스'의 창립 멤버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키보디스트 마이크 핀더가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음악 매체 라우더(Louder)는 유족과 밴드의 동료로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 사는 존 롯지의 성명을 인용해 26일(현지시간) 부음을 띄웠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마이클 토머스 핀더가 수요일인 4월 24일 북부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헌신적인 가족에 에워싸여 죽음을 맞았다"며 "고인을 신뢰하는 친구들과 돌봐온 팬들에게 그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의 마지막 나날은 음악으로 채워졌으며, 가족의 사랑으로 싸였다. 마이클은 자신의 삶을 아이 같은 놀라움으로 살아냈으며 마음과 가슴을 덥히는 깊은 성찰의 길을 걸었다"고 밝혔다.
밴드 창립 멤버들은 모두 먼저 세상을 등진 터였다. 베이시스트 클린트 워익이 2004년 맨먼저 떠났고, 보컬리스트 겸 플루티스트 레이 토머스가 2018년, 드러머 그레이엄 엣지가 2021년, 기타리스트 데니 레인이 지난해 세상과 작별했다.
유족은 또 "고인은 항상 '머리는 구름 위에, 하지만 발은 바닥에'라고 말하곤 했다"며 "고인의 가사와 철학, 인류애 비전, 그리고 우주에서 우리 위치는 세대를 넘나들며 감동을 안겼다"고 덧붙였다.
밴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저스틴 헤이워드는 "따듯함과 사랑으로 어떤 스타일의 음악도 연주할 수 있는 타고난 음악인이었다"며 "고인이 멜로트론을 (글자 그대로) 재구축하고 이미지를 새롭게 함으로써 우리(밴드)의 초기 사운드가 독특함을 띠게 됐다. 그는 내 음악 여정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다"고 돌아봤다.
무디 블루스와 함께 만든 음악 뿐만아니라 핀더는 기술의 옹호자, 특히 멜로트론을 갖고 작업하는 일을 개척하다시피 한 것으로도 기억될 것이다.
그는 1964년 무디 블루스 결성에 힘을 보태 초기 히트곡 'Go Now' 등을 내놓았지만 1967년 헤이워드와 롯지가 각각 레인과 워익을 대신해 들어오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며 초기 리듬앤블루스에서 프로그레시브와 심포닉 사운드로 바뀌었고 이런 경향은 두 번째 앨범 'Days Of Future Passed'에 도드라졌다.
핀더는 밴드가 지지부진했던 1970년대 중반 캘리포니아 말리부로 이주했다. 1977년 밴드가 재결성돼 앨범 'Octave'를 작업할 때 전면 참가하지 않아 프로그레시브록 그룹 예스의 키보디스트 패트릭 모라즈로 대체됐다. 그 일년 전인 1976년 핀더는 무디 블루스의 레코드 레이블인 드레스홀드(Threshold)를 통해 데뷔 솔로 앨범 'The Promise'를 발표했다. 두 번째 솔로 앨범 'Among The Stars'는 1994년 발매했고, 이듬해 'A Planet With One Mind'를 내놓아다. 음악 활동과 별개로 고인은 최초의 컴퓨터 게임기를 만든 아타리 코퍼레이션의 고문으로 일하기도 했다.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았던 핀더는 2018년 무디 블루스 멤버들이 로큰롤명예의전당에 헌액됐을 때 창립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수락 연설을 하지 않았다. "많은 우리 팬들이 내가 왜 수락 연설을 하지 않았는지 물었는데 그 행사에 주어진 시간이 5시간이었다. 입회된 이들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이들이 가장 나중 순서였다. 그 시점에 수락 연설은 조금 분위기를 해치는 느낌이었다. 당시 공연 투어 중이던 멤버들(엣지, 헤이워드, 롯지)이 먼저 연설했다.나는 우리 팬들 덕에 입회할 수 있어 행복했다. 지난 30년 동안 내가 말해왔듯 '팬들이야말로 내 명예의전당이다'."
Moody Blues - Go Now [HD] (youtube.com)
MOODY BLUES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