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문 열고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빛고을 광주. 그중에서도 청춘발산마을이다. 이곳으로 가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잊고 살았지만 잊을 수 없는 기억 한편의 아스라한 추억을 만나고 싶어서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 남은 풍경, 시간의 추억을 불러다 줄 정겨웠던 골목이 그리워서다.
발산마을은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였다. 비탈진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 슬레이트 지붕과 초가지붕, 좁디좁은 골목, 띄엄띄엄 눈에 띄는 밭. 손에 돈 몇 푼이라도 쥐고 있다면 절대로 찾아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이 땅에는 가진 것 없고,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이들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6·25전쟁 후 피란민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형성됐고, 1970년대에는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청춘들로 인해 전성기를 누렸다.
언덕 비탈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왜 수많은 청춘이 발산마을로 모여들었을까. 마을 앞에 전남방직(현 전방) 등 방직공장이 있어서였다. 방직산업은 당시 유망 직종이었다. 가진 것 없으니 싼값에 셋방을 얻어야 했고, 그러자니 자연스레 언덕 위로 올라갔다. 힘들고 배고파도 크게 창피하지 않았다. 다들 그랬으니까. 그래도 따뜻함은 있었다. 그들은 인정을 베푸는 게 사람 사는 재미라는 걸 알았기에.
좁고 경사진 골목길
여공들로 북적이던 발산마을은 서서히 쇠락해 갔다. 방직산업이 쇠퇴하면서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 탓이다. 사람들은 하나둘 정든 동네를 떠났다. 청춘이 떠나간 마을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빈집은 늘어가고 동네는 황폐화되었다.
삶의 흔적이 모여 있는 기억저장소
광주의 도시화·산업화 과정을 오롯이 품고 있는 공간은 그렇게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야박하지 않았다. 발산마을은 2014년 마을미술프로젝트 사업을 시작으로 2015~2018년 도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새뜰마을사업)으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얻었다. 현대차 그룹의 민관 협력 도시재생사업에 선정된 것도 행운이었다. 청년과 예술가들이 들어와 변화하기 시작한 발산마을은 광주시와 광주 서구청, 사회적기업 '공공프리즘'이 협업해 청춘발산마을로 다시 태어나 활기를 찾아가는 중이다.
입구에 있는 샘몰경로당
발산마을 청춘과 만나 진화하다
청춘발산마을 입구에 섰다. 길게 늘어선 골목은 의외로 예쁘게 단장한 모습이다. 이제 1970년대 청춘들의 삶이 묻어난 공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걸까. 천천히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옴서 감서 풀 뽑고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지중지 할매의 텃밭'. 벽에 적힌 글귀에서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짐작을 한다. 짐작이 확신으로 변한 건 샘몰경로당 벽에 꾸며진 기억저장소를 보고 나서다. 발산마을에 살았던,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의 삶과 장소에 대한 기억이 손때 묻은 물건과 한 문장의 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중에서 발산마을의 정체성을 가장 잘 알려주는 글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방직공장 여공들과 타향살이 청춘들이 꿈을 꾸던 곳. 하루하루 서로를 의지하며 부대꼈던 공중의 둥지였던 발산마을에 새로운 둥지를 틀 청춘들이 마을에 모여들고 있습니다." 곳곳에 적혀 있는 글은 낙서로 치부할 존재가 아니다. 그것을 읽고 마음에 담는 일은 청춘발산마을을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다. 짧은 문장 속에는 일상에서 전하는 소중한 감성이 담겨 있다.
108계단은 가장 핫한 장소다. 달동네로 진입하는 출입문 같던 곳이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형형색색의 페인트와 벽화로 치장했다. 과거에는 방직공장 여공과 청춘들이 별을 보며 출근하고 별을 보며 퇴근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지금은 예술과 젊음이 더해져 예쁘게 변모했다. 덕분에 108계단은 현대의 청춘들에게 '사진촬영 명소 1호'로 불린다. 도시의 발전이 그렇게 만들었다.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겠지. 그래도 변하지 않을 하나는 '나에게 솔직했고, 내 감정에 충실했으니 모든 걸 시도했던 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치던 청춘들의 모습일 것이다.
'사진촬영 명소 1호' 108계단
108계단을 올라서서 전망대로 가는 길.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공간이 펼쳐진다. 리어카 한 대 지나기도 벅찬 좁은 골목이 거미줄처럼 펼쳐지고, 손바닥만 한 텃밭도 펼쳐진다.
108계단 위에 발산상회가 있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담벼락도 보인다. 여기에 눈에 띄는 건 희망을 상징하는 파란색으로 분칠한 건물들이다.
일 나간 부모, 형, 누나를 기다리는 동생들
다소 정돈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풍경이다. 옛 모습에 새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니, 청춘발산마을로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골목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좁디좁은 골목을 걸어간다. 어린 시절, 서울에도 이런 골목이 참으로 많았다. 그래서일까, 답답함보다는 정겨움이 앞선다. 골목 사이로 쏟아지는 한 줄기 햇살이 어찌나 반갑던지….
담벼락에 적힌 감성적인 글
하나하나 채집해 집 안에 꼭꼭 숨겨두고 보고 싶을 때마다 살그머니 꺼내어 보고 싶다. 마치 지친 영혼을 희망의 길로 인도해 주는 착각이 든다.
발산마을 변화의 중심에는 '청춘'이 있다
언덕 꼭대기 전망대. 몇 가지 조형물이 서 있긴 하지만 눈길이 가는 건 청춘발산마을 풍경이다.
전망대에 설치된 조형물
마을 뒤로 세련된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한데 어우러지니 새삼 이곳이 낙후된 동네라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유년시절 추억 속에 자리한 골목과 동네를 찾은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은 기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발산마을 풍경
화창한 햇살 아래서 청량한 바람을 맞는다.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 대고, 나뭇잎은 그에 따라 춤추며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30년, 아니 그 이전에도 사람들은 햇볕과 바람 속에서 사랑하며 살았겠지.
발산마을의 역사와 청춘들의 예술이 만나는 공간
보잘것없을 것만 같던 발산마을이 꼭꼭 감춰 두었던 은밀한 속살을 하나하나 내보이며 하고 싶은 말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나의 오늘이 내일의 청춘이기를!" 이런 꿈마저 없었다면 일자리를 찾아 발산마을에 들어온 청춘들의 삶이 얼마나 적막했을 것인가.
청춘발산마을의 변화는 현재진행형
과거의 모습 위에 현재의 것을 더해 발전하는 청춘발산마을에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더 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현재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가 있듯, 과거의 삶도 살아내야 했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청춘과 현재의 청춘이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를 가슴에 담는다. 과거의 발산마을은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다. 삶의 형태는 달라도 각각의 청춘이 서로 손을 잡고, 마음을 기대어 청춘발산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기에. 청춘이 더불어 여는 세상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빛나는 아침의 햇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