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꽃
갓을 닮은 패랭이…카네이션의 원조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여름 장마비가 내리고 있다. 삿갓이 있어야겠다. 삿갓을 사용해온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정된다. 삿갓은 대오리나 갈대를 엮어 만든다. 그리고 변형해서 방갓方笠이 만들어졌다. 삿갓보다는 조금 작고 네 귀에 모가 지고 전체는 둥글게 엮었는데 상제 喪制들이 바깥나들이 하며 쓰던 갓이다. 개선 발전되어 창태가 있는 둥근형, 즉 댓개비로 지금의 밀짚모자 형태로 엮어 만들어 먹물을 먹이고 옻으로 덧칠을 해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모 갓흑립黑笠이 되었다. 후일 이 갓의 재료는 말총으로 바뀌어 고급화된다. 그리고 성년이 되어 관례를 치른 젊은 사내아이가 쓰는 풀로 엮어 만든 갓이 있었는데 초립草笠이라 했다. 그래서 초립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그 시대 천민계급이나 천업인 봇짐․등짐장수, 보부상褓負商들은 같은 재질과 형태로 갓을 만들어 썼으나 흑칠은 할 수 없고 갓의 이름도 패랭이라 했다.
괴나리 봇짐에 죽장망혜竹杖芒鞋 삿갓 쓰고 길 떠나는 나그네가 조선시대 서인庶人의 모습이다. 삿갓은 방립, 흑립, 초립, 패랭이 갓의 원조격이다.
삿갓이라면 이 땅의 사람들은 방랑시인 김삿갓을 연상하게 된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대중가요 김삿갓」
김삿갓 한문으로 쓰면 김립金笠이 된다. 본명은 김병연金병淵 조선말기 당대 명문대가로 이름난 안동김씨 가문에서 1807. 3. 13출생하였다. 그가 6세 되던 해 1811년 평안도 정주․곽산 등지에서 그 유명한 홍경래 농민난이 일어났는데 당시 김삿갓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그 이웃고을 선천宣川 방어사防禦使로 있으면서 홍경래 반란군에 투항한 것이 역적의 죄가 되어 참형을 당하고 그 일족은 폐족이 되었다. 그때 한 사람 충직한 노비가 어린 김립을 등에 업고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친자식으로 가장하고 양육하면서 서당에 보내어 글까지 가르쳤다. 김립이 약관 20세에 향시鄕試 백일장에 응시하여 홍경래 반란군에 항복한 죄로 참수 당한 김익순을 통열히 비난 경멸하는 글을 써서 장원급제를 하게된다. 그러나 김립이 가문 몰락의 내력을 듣고 김익순이 바로 자기의 친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출제된 시제試題가 그렇다고는 하나 변명의 여지없이 친손이 조상을 욕되게 한 후회는 너무 늦고 말았다.
그래서 스스로 천지간에 하늘보기 부끄러운 죄인이 되어 삿갓을 쓰고 일생을 방황하게 된다. 1864. 3. 29 호남 적벽강赤壁江기슭에서 객사하니 56세로 통한의 세월을 마감하였다.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거늘
돌아보니 나홀로 평생을 슬피 살았네
짚신에 대지팡이 끌고 천리길 떠돌며
물같이 바람같이 가는 곳이 내 집이었지
사람도 하늘도 탓하고 원망하지 않으나
해마다 해가 저물면 슬픈 회포만 가슴에 쌓인다.
- 중략 -
이제 돌아가기 어렵고 머물기도 난처하니
얼마나 더 긴 세월을 길가에서 헤매일고
이 시는 「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라는 제목의 시 첫 번과 끝 부분이다. 김삿갓이 죽음을 앞두고 자기의 일생을 정리하며 자서전 형식으로 읊은 시로 추정된다. 시문 곳곳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피가 배인 듯 애절하다. 한시 원문은 생략하고「난고」는 김삿갓의 본호本號이다.
▶카네이션의 원조 패랭이꽃
패랭이 갓을 닮아서 패랭이꽃. 산기슭 돌밭 바위 틈새에서도 잘 자라며 마디마디 가지와 잎까지 축소된 대나무 같아 석죽화石竹花라 했고 꽃빛이 석양에 지는 노을처럼 고와서 낙양화落陽花가 되었다. 그리고 늘 하늘을 보고 피어나서 천국화天菊花 이 꽃풀로 차를 만들어서 석죽차石竹茶라 하기도 한다. 「성경통지」와 「선만식물지」의 기록.
카네이션꽃을 알면서 패랭이꽃은 모르는 이가 많을테지만 원예품종으로 개량된 카네이션의 원조가 패랭이 꽃이다. 그래서 두 꽃은 크기가 다를 뿐 모습은 똑같다.
패랭이꽃은 석죽과에 속해 있는 다년생 초본식물. 키 30cm 높이로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가 돋아나 곧게 자라며 위쪽에 몇 개의 가지를 친다. 잎은 마디마다 대잎을 닮은 2매가 잎자루 없이 마주 난다. 한여름 7~8월에 줄기가지 끝에서 한 송이 분홍빛고운 통꽃을 피운다. 수술 10개, 암술대 2개, 꽃잎은 5장, 꽃잎 끝마다 앝게 갈라지며 물결무늬를 이룬다. 가을에 열매가 삭과 꼬투리 4조각으로 갈라져 익으며 씨앗은 아주 작아 바람에 날려가서 돌바위 틈에서도 터를 잡고 번식한다. 풀 전체는 하얀 분을 바른 듯 분록색粉綠色이며 아주 연약하다. 이 땅에 자생하는 석죽과에 속한 패랭이꽃 야생화는 술패랭이, 흰패랭이, 갯패랭이, 장백패랭이, 섬패랭이, 각시패랭이, 구름패랭이들이 수 천년에 걸쳐 살아왔고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심한 공해 탓인지 그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대나무를 닮은 연약한 약초
패랭이꽃의 한문이름은 구맥瞿麥 거구맥巨句麥 죽절초竹節草라 하고 한방과 민간에서 꽃피고 열매 맺을 때 풀 전체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두고 약으로 쓴다.
약성에서 맛은 맵고 쓰며 성질은 차다. 방광과 심경에 작용한다. 열을 내리고 피를 잘 돌아가게 하며 여성의 경을 통하게 하고 소변을 소통시킨다. 동물실험에서 뚜렷한 이뇨효과가 인정되고 혈압을 낮추는 작용이 밝혀졌다. 약효는 해열, 이뇨, 통경, 소염, 항암의 효능이 있다.
한방에서는 신장염․방광염․요도염․급성신우염․소변불통에 주치약으로 쓴다. 그리고 임질․석림石淋-임질의 한 종류로 신장이나 방광에 돌이 생기는 병에도 응용한다. 그 외 적용질환은 위염․대장염․십이지장염․자궁염․생리불순 증상들에 쓰인다. 결막염을 비롯 갖가지 눈병에는 패랭이꽃 열매와 씨를 달인 물로 씻고 넣는다. 상처나 종기에는 생즙을 내어 바르거나 약초 달인 물로 씻어내며 이 약물로 얼굴을 씻으면 주근깨나 기미가 없어지면서 살결이 고와진다고 했다.
피멍을 풀어주고 악성종기 항암효과도 있다. 항암 목적으로 패랭이꽃 약초를 쓸 때는 일반증상에 말린 약재 하루 쓰는 양 6~12g보다는 많은 양 하루 15~30g를 달여 6번 나누어 마신다고 했다.
민간에서는 몸이 붓고 몸에 물이 차며 소변불통에 즉효한 약으로 쓰였고 강심․강장․두통․산통․신경성․간질병에도 좋은 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패랭이꽃 약재는 꽃 이삭이 잎줄기보다 약효가 더 세다. 임산부에게는 금기하는 약으로 유산의 위험이 높다.
빈터를 일구어 패랭이꽃 야생초를 심고 키우면서 나물 찬거리도 하고 이 약초는 풀 전체가 연약해서 녹차로 만들기가 쉬우니 차로 늘 마시면 약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패랭이꽃 별칭이 석죽차石竹茶가 되었다.
<艸開山房/oldm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