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연금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주지의 사실과 같이 우리나라의 은퇴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인데 그 돌파구의 하나로 정부에서 내놓은 대안이 바로 주택연금인데요, 주택연금은 말 그대로 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 금융상품으로서 전에는 역모기지론(역(逆) mortgage loan)이라 불렀는데 용어가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지적이 있어 지금은 주택연금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주택연금을 낱낱이 분석하고 과연 은퇴수단으로서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택연금 개요
주택연금은 지난 2007년 7월 12일에 도입되어 2010년 7월 18일 현재 3,197건이 가입되었고, 가입자들은 평균 104만원 정도를 매월 연금으로 수령하고 있습니다. 가입자 중 최고령자는 98세이고,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매월 436만원, 가장 적게 받는 사람은 매월 7만 9천원으로 그 격차가 큰데, 이는 가입자의 연령과 주택의 가격을 기준으로 연금액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즉, 주택가격이 높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매월 수령하는 연금액이 많아지는데요, 주택가격이 높으면 담보가치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연금액이 많아지는 것이고, 같은 주택가격이라도 나이가 많을수록 기대하는 생존기간이 짧기 때문에 연금액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주택연금은 민간보험사처럼 경험생명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생명표(완전생명표)를 사용하기 때문에 남녀 모두 100세까지 생존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3억원짜리 주택이라도 가입자의 나이가 60세인 사람은 40년간 연금을 지급하는 걸로 예상해서 연금액을 정하고, 70세인 사람은 30년간 연금을 지급하는 걸로 예상하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수록 연금액이 커지는 것입니다.
주택연금은 금융공기업인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종신토록 연금지급을 보증하고, 살던 집에서 죽을 때까지(배우자 포함) 연금을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에 심리적인 안정감이 높고, 저당권 설정 시 등록세, 교육세, 농특세 면제, 국민주택채권 매입의무 면제, 재산세 25% 감면(5억원까지), 주택연금 대출이자비용 소득공제(연 200만원까지) 등 다양한 세제혜택이 있어서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가입조건 및 절차
주택연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만 60세 이상(부부인 경우, 부부 모두 60세 이상)이어야 하고 부부합산 1세대 1주택이어야 합니다. '주택법' 상 주택이어야 하므로 오피스텔, 상가주택 등은 해당되지 않고, 한국감정원 인터넷시세로 9억원 이하의 주택이어야 하고, 실제로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습니다. 시행 초기에는 만 65세 이상, 6억원 이하의 주택이어야 했는데 가입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여론이 있어서 완화된 것입니다.
배우자가 없는 경우 단독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부부는 법적 부부만 인정하고 사실혼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부부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을 기준으로 대출한도금액과 연금액이 결정되고 부부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지급되는데 가입자의 선택에 따라 매월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도 있고, 매년 3%씩 증가 또는 감소하도록 받을 수도 있고, 사용목적에 따라 대출한도의 50%까지를 일시금으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가입절차는 간단합니다. 필요서류를 구비해서 심사를 받은 후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서를 발급 받게 되는데 이것을 가지고 시중 9개 금융기관에 방문해서 주택연금을 신청하면 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88-8114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주택연금의 이해
주택연금은 '연금'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실제로는 주택을 담보로 하는 대출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택구입시의 대출과는 확연히 다른 구조이므로 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택구입시는, 예를 들어 3억원짜리 집을 사기 위해 1억원을 대출 받는다면 이 1억원은 일시에 대출을 받는 것이고 이것을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대출이자율로 상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택연금의 경우 3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매월 100만원씩 연금을 받는다면 이 100만원과 여기에 대한 이자가 첫째 달의 대출잔액이 됩니다. 둘째 달에는 100만원+2달치 이자와 100만원+1달치 이자를 합친 금액이 대출잔액이 되지요. 즉, 매월 100만원씩 대출원금이 증가하는 형태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이 적고, 기간이 경과할수록 이자부담이 증가하기는 하지만 대출이율이 낮아서 큰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주택연금에 대한 대출이자율은 '91일물 CD금리+1.1%'이고 2010년 8월 현재 CD금리는 2.63%이므로 대출이자율은 3.73%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택연금의 결정적인 장점은 대출원금과 이자의 합계, 즉 대출잔액이 아무리 증가해도, 설령 담보주택의 가치를 초과하더라도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연금지급을 보증하기 때문에 가입자 사망 시까지 연금이 중단될 걱정이 없습니다. 나중에 가입자가 사망한 후 주택을 처분해서 금융기관에 대출잔액을 갚게 되는데, 이를 갚고 남으면 상속인이 수령하고, 모자라도 상속인에게 부족분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이 부족분은 주택금융공사가 금융기관에 대신 지급하도록 되어 있고, 이를 대비해서 주택금융공사는 주택연금 가입자로부터 일종의 보험료 성격으로 '보증료'라는 것을 받습니다. 보증료는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초기보증료는 주택가격의 2%를 1회만 받고, 연보증료는 대출잔액의 0.5%를 12로 나눈 금액을 매월 받습니다. 하지만 가입자가 실제로 보증료를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기관이 주택금융공사에 대신 납부하고 이를 대출잔액에 포함시키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가입자의 비용부담은 주택에 대한 근저당 설정비용 외에는 없습니다.
앞서 주택연금은 같은 가격의 주택이라도 가입자의 나이에 따라서 연금액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주택연금은 주택담보대출처럼 담보인정비율(LTV)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생명표에 의거하여 가입자가 100세까지 생존할 거라고 가정하고 사망 시까지 매달 수령하는 연금액을 정해진 할인율(연 7.12% 월 복리)로 할인하여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을 모두 더한 값을 대출한도로 설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설명이 좀 길고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나이에 따라서 대출한도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를 근거로 대출한도비율을 필자가 계산해 보니 60세는 약 38%, 70세는 약 53%, 80세는 약 74%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3억원짜리 주택의 경우 60세, 70세, 80세의 대출한도는 각각 1억 1,400만원, 1억 5,900만원, 2억 2,200만원으로 계산됩니다. 그래서 같은 가격의 주택이라도 나이가 많을수록 대출한도가 크고 그에 따라 연금액도 커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위에서 언급한 할인율입니다. 주택연금의 할인율은 이자율의 개념과 동일하고, 따라서 할인율이 높을수록 연금액이 많아지기 때문에 7.12%라는 할인율은 시중의 일시납연금상품보다 주택연금이 비교우위에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실제로 60세 남자가 주택연금의 대출한도액이 2억원인 경우 매월 122만원 가량을 수령할 수 있는데 비해, 2억원을 보험사의 일시납연금에 가입한 경우에는 현재의 공시이율 기준으로 매월 96만원 정도 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순전히 7.12%라는 할인율의 힘이라고 보면 됩니다.
총평
은퇴 후 별다른 소득이 없고, 집 한 채와 국민연금만 있는 경우라면 주택연금은 대단히 유용한 은퇴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집을 처분한 금액으로 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형 연금상품(예컨대 변액일시납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낫다고 하기도 하는데, 재무설계의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일단 집을 처분하고 나면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게 되고, 60세 이상의 연령층이 투자형상품에 목돈을 예치하는 것은 과도한 위험을 떠안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시중의 이자율보다 높은 금리를 적용 받을 수 있고, 살던 집에서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주택연금이 금전적인 면에서나 심리적인 면에서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가입조건을 충족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요.
한 가지 걸림돌이 있다면 죽을 때 자식들에게 집 한 채는 남겨주고자 하는 한국인의 정서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요즘에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자료가 나오고 있습니다. TV에서 아버지가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하자 자식들이 볼멘 소리로 '그런 말씀 마세요~'를 합창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세태가 많이 변한 것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지 못할 자식이라면 최소한 부모가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해서는 안되지 않을까요?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깨닫고 효도를 하려고 해도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소용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 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부모를 잘 챙겨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부모의 여생에 관심이 있다면, 부모가 주택연금에 가입할 조건이 된다면, 깊이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필자의 판단에는 주택연금의 현재의 지급조건이 앞으로 더 좋아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주택연금은 주택가격이 매년 3.5%씩 상승한다는 것을 전제로 할인율과 연금액 등을 결정하고 있는데요, 단언할 수는 없지만 향후 주택가격이 중장기적으로 안정세 또는 하락세를 보인다면 주택금융공사의 보증부담증가 등의 이유로 연금액 감소, 보증료 증가라는 방향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큽니다. 이 예상이 맞는다면 하루라도 빨리 가입하는 것이 더 유리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부모에게 주택연금을 추천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 동안 못다한 효도에 대한 짐을 한방에 덜어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마 부모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식들 칭찬하면서 다니시지 않을까요? 물론 주택연금에 가입시켜 드리는 게 효도의 결정판은 아닙니다. 부모에게 주택이 없을 수도 있고, 있어도 가입조건이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다만,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을 떠올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나중에 여러분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 여러분이 부모를 대하는 방식에 기인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 '대접 받고 싶은 만큼 대접하라.' 같은 맥락의 말들이고, 선택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