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려원유도 (騎驢遠遊圖)
이 그림은 육유 (陸游)의 시와 단원의 그림과
표암 강세황의 화제로 그려진 것이어서 더욱 그 의미가 있다.
육우의 시는 『검문도중우미우 (劍門道中遇微雨)』에서 그려진
생각속의 그림을 그렸는데 시를 짓게 된 이유는
육우가 검문산을 지나는데 도중에 가랑비를 만나 한 수 읊었다는 뜻이다.
그림에 단원이 쓴 시의 내용은 이렇다
劍門道中遇微雨
(검문도중우미우)
검문 가는 길에 가랑비를 만나...
- 陸游(육유)
衣上征塵雜酒痕(의상정진잡주흔)
옷에는 뒤집어 쓴 먼지와 술 얼룩 뒤섞였고
遠游無處不銷魂(원유무처불소혼)
두루 돌아다니며 넋이 나가지 않은 곳 없었네.
此身合是詩人未(차신합시시인미)
이 몸이 정녕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細雨騎驢入劍門(세우기려입검문)
가랑비 맞으며 나귀 타고 검문에 들어서네.
이 그림에서 왼쪽의 글이 김홍도가 쓴 화제로 남송을 대표하는 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검문도중우미우(劍門道中遇微雨)」라는 시다.
그리고 반대편 오른쪽은 강세황의 글이다.
강세황은 30대 이후 안산에서 지냈는데
이때 어린 김홍도가 그의 문하를 드나들며 그림을 배웠다고 한다.
그런 다음 김홍도가 화원이 되고 또 뒤늦게
표암 강세황이 관직이 나가면서
어느 때에는 같은 부서에도 근무하기도 하는 등
나중까지 두 사람 사이의 교류는 계속됐다.
이 그림이 그려진 때인 경술년 1790년은 단원 46살이고 표암은 78살이었다.
늙은 스승이 병후 다시 붓을 잡은 장년의 제자를 위해
한줄 글을 적으며 흡족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衣上征塵雜酒痕 (의상정진잡주흔)
옷은 전선의 먼지와 술자국 투성이고
遠游無處不消魂 (원유무처불소혼)
몸은 멀리까지 왔지만 어느 곳에도 혼을 잃지 않았네
此身合是詩人未 (차신합시시인미)
이 몸 정녕 시인이 아니었던가
細雨騎驢入劍門 (세우기려입검문)
가랑비를 맞으며 나귀에 올라 검문관에 들어서네
그림을 보면 버드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그렸고
시에 나오는 가랑비는 형체가 없어 형상화 하기가
쉽지않아 커다란 버드나무 두 그루를 중앙에 배치하고
짙은 먹을 써서 나뭇잎이 물기가 젖었음을 나타냈다.
또 그 뒤로 펼쳐진 물가 풍경을 옅은 먹에 물을 많이 묻혀
그림자로 그려 아스라한 비 안개에 젖어 있는것을
표현했다.
그래서 물가에 있는 물오리 역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윤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먹의 농도를 극도로 세련되게 구사해
언덕 위 버드나무 길가의 나그네가 가랑비 속을 가고 있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이 그림이 그려질 때인 경술년 1790년은 단원은 46세이고
표암 강세황은 78살이었다. 늙은 스승이 병후 다시
붓을 잡은 제자를 위해 한줄 글을 적으며
흡족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 글을 보면
士能重病新起 (사능중병신기) 사능이 중병에서 새로 일어나서
乃能作此 (이능작차) 이를 거뜬히 그리고
精細工夫可知 (정세공부가지) 정교함을 꾀하려는 것을 가히 알도다.
其宿疴快復 (기숙아쾌복) 그의 오랜 병이 쾌차되니
喜慰若接顔面 (희위약접안면) 기쁨마음에 마치 얼굴을 대하는 듯하다
況呼筆勢工妙 (황호필세공묘) 하물며 필치가 탁월하고 교묘해
直與古人相甲乙 (직여고인상갑을) 옛사람과 서로 경중을 따질만하니
尤不可易得 (우불가이득) 더욱 쉽게 얻을수 있는것이 아니다
宜深藏篋笥也 (의심장협사야) 마당히 상자 속 깊이 간지개야 할 것이다
庚戌 淸和 豹翁 題 (경술청화표옹제) 경술년 청화일 표옹이 쓰다
단원이 병중에 있다가 회복되면서 이 그림을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劍門道中遇微雨
(검문도중우미우)
검문 가는 길에 가랑비를 만나...
- 陸游(육유)
衣上征塵雜酒痕(의상정진잡주흔)
옷에는 뒤집어 쓴 먼지와 술 얼룩 뒤섞였고
遠游無處不銷魂(원유무처불소혼)
두루 돌아다니며 넋이 나가지 않은 곳 없었네.
此身合是詩人未(차신합시시인미)
이 몸이 정녕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細雨騎驢入劍門(세우기려입검문)
가랑비 맞으며 나귀 타고 검문에 들어서네.
<작가 소개>
남송(南宋)의 대표적 시인.
자 무관(務觀). 호 방옹(放翁)이다.
그가 태어났을 때 북송(北宋)이 금(金, 여진족이 세운 나라)에게
멸망하여 정강(靖康)의 변을 겪고 있었고 그의 가족은 남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그는 침략자 금(金)나라에 대하여 철저한 항전주의자로 일관하는
격렬한 기질의 소유자였으며, 주화파(主和派)를 경멸했다.
당시 남송 고종은 재상 진회(秦檜)와 함께 금과 화친을 목적으로 하였고
명장 악비(岳飛)까지 독살했다.
육유는 악비의 죽음을 한탄하며 애국충정에 찬 시(詩)를 남겼다.
65세 때에 향리에 은퇴하여 농촌에 묻혀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32세부터 85세까지의 약 50년간에 1만 수(首)에 달하는 시를 남겨
중국 시사상(詩史上) 최다작의 시인으로 꼽히고 있으며,
당시풍(唐詩風)의 강렬한 서정을 부흥시킨 점이 최대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국토회복의 절규를 담은 비통한
우국의 시를 짓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평화스러운 전원생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한적한 시를 짓는 등, 매우 폭넓은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두산백과>
<註>
征塵(정진) : 먼 길을 여행하면서 뒤집어 쓴 먼지, 여행
雜(잡) : 잡되다, 순수하지 않다, 각양각색이다, 정식이 아닌,
여러 색깔이 섞여 있다, 뒤섞이다.
酒痕(주흔) : 술이 묻은 얼룩, 술이 취한 티
遠游(원유) : 멀리 유람하다, 유학하다, 두루 돌아다니다,
멀리 여행하다, 멀리 소풍을 가다.
銷魂(소혼) : 혼을 뺏기다, 넋이 나가다, 넋을 잃다, 정신이 빠지다.
是(시) : (명사 앞에서) 적합함을 나타냄.
未(미) : 아직 ~하지 않다,~이 아니다, (문장 끝에 쓰여) 의문을 나타냄.
細雨(세우) : 가랑비, 이슬비, 안개비
騎驢(기려) : 나귀를 타다.
※검문관
위치: 사천성 검각현(劍閣縣) 30km 지점의 대검산(大劍山).
그냥 검문(劍門)이라고도 한다. 대검산은 동서로 100km나 끝없이 뻗어
72봉우리가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이어져 오다 이곳에서 끊어진다.
두 산이 칼 형상으로 한 짝의 문처럼 양쪽에 버티고 있다.
제갈량이 촉을 다스릴 때, 옛 잔도(棧道)를 수리하고 정비해 이곳에다
검문관을 설치했다. 아울러 장교들을 파견해 관문을 지키도록 했다.
일찍이 강유가 이곳에서 종회와 대적하던 유적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고대에는 검각도(劍閣道)의 중요한 관문이었고,
지금은 사천성과 섬서성을 연결하는 국도가 이곳을 지난다
. 일찍이 관루(關樓)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검문관’이라 쓰인 비석만 관문 입구를 지키고 있다.
[출처] 劍門道中遇微雨(검문도중우미우)|작성자 far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