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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헌신하라
본문: 요12 :1-8
리빙스턴은 아프리카의 등불이었습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헌신하고 있었을 때 영국에 있던 동료들이 도울 것을 의논하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자네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몇 명을 현지에 보내려고 한다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어떤 길이 좋은가?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게"
리빙스턴은 이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이 있어야만 오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의미 없네. 나는 길이 없어도 오겠다는 사람을 원한다네"
1. 우리는 무엇으로 헌신할까요?
첫째, 몸으로 헌신해야 합니다.(롬12:1)
어느 세대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자기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희생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탄자니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 친구가 나를 킬리만자로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산 중턱쯤에 있는 어느 한 교회 마당 아래 조그마한 빈터로 나를 데려갔습니다. 몇 개의 바위들로 둘러싸인 공간에 여러 의자와 기념비가 놓여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150년 전 유럽의 선교사들이 케냐의 몸바사 항구에 도착하여, 걸어서 이곳까지 온 뒤 여기 이 바위에 걸터 앉아 아프리카의 선교를 위해 기도했던 장소임을 기념하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잠시 동안 묵상을 했습니다. 죽음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정글을 헤치고 이 먼 데까지 걸어 온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걸어 올 수 있었을까?’ 즐거이 헌신하는 삶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이러한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지금도 날마다 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신 것임을 알아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도록 온전히 드릴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인디언 추장하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그의 구세주로 모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하여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신발을 선교사에게 드리며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하나님은 추장의 신발을 원치 않으신다."라고 했습니다. 추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훌륭한 말 한 필을 끌고 와서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역시 선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하나님께서는 말을 원치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당황한 추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천막으로 들어가더니 추장의 지위를 상징하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들고 나왔습니다. 선교사는 여전히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더욱 당황한 추장은 "선교사님, 제가 가장 아끼던 것은 다 내놓았습니다.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제 몸뿐입니다."라고 하자 선교사는 "네,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 순간 추장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자신의 생명을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서약했습니다.
둘째, 시간을 다 바쳐 헌신해야 합니다.(엡5:16, 골4:5)
인천에 사는 김정식(39)님이 찍은 달사진이 수많은 네티즌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김정식님이 달 사진을 찍을 때 한 몇 마디가 우리를 감동케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옥상이나 산에 올라가 달 사진을 찍는데, 600~700여장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 20여장을 추리고 또 그 사진을 한 장으로 합치는 작업을 거쳐 생생한 달 사진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매일 맑은 날이나 구름이 있는 날도 무조건 올라가 사진 찍을 환경을 둘러보며 심지어 영하 10도의 추위도 견뎌내며 찍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바쳐 각고의 자기 헌신이 있어야 하며, 그래야만 명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간은 영원을 심는 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할 소중한 시간들을 얼마나 많이 사탄과 죄를 위해 허비하고 강도 당하며 살았던가!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거리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도 많고, 밤을 세워 춤과 도박 그리고 TV앞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지배하시도록,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계획을 조성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공부시간, 일하는 시간, 휴식시간까지도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보내져야 합니다. 순간 순간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지배하시므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내가 지닌 재능으로 헌신해야 합니다.(고전12:4-31, 벧전4:10)
슈바이처가 운영하는 아프리카의 랑바레네 병원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미모의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리아 프레밍거. 헝가리 귀족의 딸로 그녀는 한때 재색을 겸비한 최고의 미인으로 추앙받았습니다. 모든 악기 연주에 능했으며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배우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녀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남편은 의사였고 두 번째 남편은 헐리우드의 영화감독 오토 프레밍거였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슈바이쳐의 찬송가 연주를 듣고 결심했습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허상일 뿐이었다. 남을 위한 삶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 프레밍거는 그 자리에서 아프리카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슈바이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흑인 병자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프레밍거가 남긴 마지막 말. "남을 위한 삶이 이렇게 행복한 것을....
내가 받은 달란트가 몇 달란트 이든 간에 하나님께 모두 사용되도록 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사이자, 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켈리 박사는 대학을 졸업하는 날 밤 다음과 같은 일기를 썼습니다. "저는 저 자신과 시간과 재능과 야망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복되신 주님, 주께서 쓰시도록 저를 성결케 하소서 주님께로 저를 가까이 이끌지 못할 것이라면 세상적인 어떤 성공도 제게 허락하지 마옵소서" 이런 일기를 쓴 켈리 박사는 그의 생애를 예수님의 참제자 답게 살았다고 합니다.
넷째, 내가 가진 모든 소유로 헌신해야 합니다.(고후9:6-7)
사람들은 보통 자기가 노력하여 얻게 된 재물, 건강, 자녀들 모두가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전부가 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지혜, 건강, 재물, 내 자녀, 내 가정 전부가 주님의 것입니다. 만약 이것을 내 것으로 생각하며 살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성경은 부자에 대해 말하기를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가 힘든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기가 더 힘들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그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것입니다. 저는 다만 관리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쓰며 살기를 원합니다”고 하는 사람이 영적으로 강한 자입니다.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꼭 사고 싶은 젖소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늙은 젖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이 젖소의 혈통은 어떻게 됩니까?' 그러자 젖소주인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또 물었습니다. '이 젖소한테서 일년동안에 얻을 수 있는 우유의 양은 얼마나 됩니까?' 그러자 젖소 주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소는 정직한 소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유를 모두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젖소와 같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여러분께 드리겠습니다." 아이젠하워가 국민에게 했던 이 약속을 우리는 하나님께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바치는 삶은 진정 풍요로운 삶일 것입니다.
다섯째, 마음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고후8:5)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16:9)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 같이 전심의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덥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자는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하셨습니다.(계3:16) 우리 마음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야 하겠습니다.
여섯째. 무조건 순종으로 헌신해야 합니다.(빌2:5-13, 삼상15:22, 잠16:3)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봉사를 요청하게 됩니다. 봉사의 방법은 31절에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라는 말씀처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녀 전부를 요구한 것입니다. 전부 바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간섭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38절에 보면 마리아는 천사의 요청 앞에 헌신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고 실천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다시 말하면 “이 몸을 드립니다, 이 몸을 쓰시옵소서”라는 결단의 내용입니다. 마리아 당시에 만일 몸을 드려 아이를 가졌다면 언제든지 이혼 당할 수 있고 돌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나도 비참하게 죽지만 내 가정도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래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몸을 쓰시옵소서.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을 이루어 주소서”라고 말씀한 내용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온전히 바쳐지는 바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 몸 이대로 쓰시기를 원합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 몸 그대로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 영광을 받아주십니다.
한 대학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예수님께 헌신한다는 뜻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목사님은 생각 끝에 백지 한 장을 가져오게 해서 그 대학생에게 내밀면서 "예수님 전. 백지위임장"이라고 쓴 후 주소와 성명과 날짜를 쓰고 지장을 누르게 했습니다. 주님은 그 위임장에 무슨 말이나 쓸 수 있도록 위임하는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사람이 어떤 일을 행할 때나 어떤 경기에 임할 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최고로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신명기를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비례해 예수님께서도 "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고 말씀 하셨습니다.
온전한 헌신이란 신, 구약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헌신하고자 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가 전적으로 헌신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에 우리가 행하여야 할 마땅한 의무입니다.
2. 온전한 헌신을 하려는 성도들은 무엇을 준비하여야 할까요 ?
첫째, 사랑의 마음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유월절 6일전에 예수님께서 베다니라는 동네를 찾으셨는데 그 동네를 찾으시면 꼭 들리시는 곳은 나사로와 그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반갑게 맞이하여 방으로 인도한 오누이들은 각자 자신의 일하기에 분주했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과 환담을 나누고 큰 동생 마르다는 부엌에서 식사 준비하고 있을 때 막내 마리아는 아주 비싼 순전한 나드 향유가 담긴 옥합을 자신의 방에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음의 공통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접대하려는 사랑의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 아니면 주님을 생각지도 않고 계십니까 ? 잘 모르시겠다는 분은 주님이 지금 오시면 내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리려 준비하고 있는가를 지금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하신 후 아무런 준비가 없다고 생각이 들면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헌신은 주님께 보일 사랑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둘째, 온전한 헌신을 하려는 성도들은 자신의 가장 좋은 것을 찾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베다니 세 오누이중 주님께 드리려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한 사람은 마리아라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아낌없이 쏟은 옥합의 한 나드는 지금까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고 한푼 두 푼 모아서 적립한 것입니다. 아마 이 옥합을 모을 때 이것 모아 조그마한 가게하나 장만해 떳떳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안 쓰고 안 입고 절약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귀한 물질을 예수님께 드리며 헌신하려고 준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머리털을 풀어 주님의 발을 씻으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최상의 것을 드리며 주님께 헌신하려한 온전한 헌신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사랑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리며 헌신하려고 준비하셨습니까 ? 마리아처럼 자신을 위하여 깊이 숨겨둔 물질과 자신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눈물과 자신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머리를 준비하실 수 있습니까 ? 여러분도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함으로 최고 아름다운 헌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온전한 헌신을 하는 성도는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하여 드릴 정신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 C. T. 스터드라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수석을 달리는 우수한 학생이었을 뿐 아니라 아주 탁월한 크리켓 선수였습니다. 그는 크리켓으로 영국 전체 시합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보장된 출세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캠퍼스 집회에 참여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선교사가 되어 중국으로 가겠노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열정 때문에 그는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중국 땅으로 갔습니다. 중국에서 10여 년을 섬긴 후에 그의 육신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와 투병 생활을 하던 중 그는 다시 아프리카에 가기로 결심합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결정이라며 그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 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정신인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헌신은 그 이하로 만족해서도 안 되고 만족할 수도 없습니다.
온전한 헌신이란 자신이 드리고자 하는 것을 마지못해 드린다든지 많이 소유하고 있으니 대충 떼어 드린다는 생각이 아니라 소유한 것 중 가장 귀하고 보배로운 것을 힘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것은 아벨의 제사가 맛있어 보여서가 아니 "첫 새끼" 즉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온 힘을 다해 준비한 마음의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오는데 이 부부는 주에 종의 말을 듣고 아름다운 헌신을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마음이 변해 힘을 다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빼돌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 부부는 죽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 14장 8절 보면 '마리아는 힘을 다하여' 준비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헌신이란 자신의 힘을 다하여 바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도 예배를 드릴 때 주님께 힘을 다하여 헌신하려고 준비하십니까 ? 아니면 있을 때는 다른 곳에 투자하자가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 되었을 때 내가 생기기만하면 힘을 다해 주님께 드려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 헌신은 마음먹었을 때, 조금이라도 능력 있어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힘으로 헌신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이 건강할 때 빗자루 한 번 더 들고 제단 쓸고 수건한번 더 들고 강단 닦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온전한 헌신자는 자신이 준비할 수 있을 때 힘껏 준비한 후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끝날까지 준비할 수 있도록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 지난 후 후회하여도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건강하여 마음대로 활동 할 때, 지금 시간 낼 수 있을 때, 지금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 될 때 헌신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3. 온전한 헌신을 준비한 성도는 무엇으로 헌신을 하여야 할까요 ?
첫째, 오병이어로 헌신을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각 기관에서 필요한 비품을 장만하기 위해 회원들에게 협조를 구하면 "하고는 싶은데 지금은 가진 것이 적어서 다음에 많이 가지고 있을 때 더 많이 할 께요"라 말하는데 이것은 온전한 헌신이 아닙니다. 진정 온전한 헌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병이어를 그 즉시 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배고픈 한끼를 해결하기 위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2 마리를 아낌없이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주린 배를 움켜지고서라도 드리는 마음의 행동이 바로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우리 주님은 비록 작은 것을 드릴지라도 물질을 보시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을 귀히 보시고 아름답게 받아 주십니다. 과부의 옆전 두 푼을 더 아름다운 헌물로 보신 예수님이십니다. 또 사르밧 과부는 한 움큼의 가루를 헌신하니 3년 가뭄을 이겨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대 부호로 알려진 '록펠러'는 어느 날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세계 대 부호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 기자의 질문에 록펠러씨는 "나는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는데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본시 록펠러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빈곤하게 자랐습니다. 그가 여섯 살 되던 해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20센트를 용돈으로 받았습니다. 처음 용돈 주신 어머니는 록펠러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 20센트 중 2센트는 하나님의 몫인 것 알지? 교회에 가거든 제일 먼저 2센트를 떼어 십일조로 드려야 한다."
록펠러는 그때부터 하나님이 부르는 92세까지 십일조를 철저히 구분해 드렸다고 합니다. 자기 혼자 다 써도 부족한 20센트의 돈을 어머니 말씀대로 십일조를 떼어 하나님께 드렸더니 하나님은 그를 대 부호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한달 쓰기도 힘든 월급이라 생각이 들어도 오병이어의 십일조를 드리면 5000명이 먹고도 남는 이적을 우리 주님께서 이루워 주실 것입니다.
둘째, 온전한 헌신을 하려는 성도는 자신의 몸에 흔적이 남도록 몸을 드려 헌신하여야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에 많은 사람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이 세상에 남기고 죽으려고 애를 씁니다.
성도 여러분 ! 전 여러분에게 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헌신하고져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흔적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죄인을 위해 무릎꿇고 기도하심으로 무릎에 박힌 굳은살의 흔적이며, 피 같은 땀을 흘리면서도 기도하심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의 흔적이며, 가룟 유다에게 팔리신 후 채찍에 맞아 등, 허리에 찢겨진 흔적이며, 머리에 쓰인 가시관으로 인한 핏자국의 흔적이며, 십자가에 달리시며 손과 발에 박힌 못 자국의 흔적입니다.
진정한 성도는 세상에 이름을 남기려 애쓰는 자가 아니고 예수님처럼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주님을 위하여 매를 맞고 자신의 몸에 흔적을 남겼으며, 베드로 사도는 죽을 때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흔적을 남겼습니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의 몸에는 지금 어떤 흔적이 남아 있습니까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 한 부분에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일군은 굳은살이 배겨있는 손바닥이 흔적이며, 공을 열심히 찬 축구선수의 흔적은 발의 근육입니다. 공을 손으로 잡고 연습하는 농구선수나 배구선수의 흔적은 손에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느 부위에 흔적을 남길까요, 이 시간 주님이 어느 부위에 흔적이 있느냐 물으신다면 무엇을 보여 드릴 수 있겠습니까 ? 만약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보일 수 있는 흔적이 없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입으로만 헌신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예로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보니 부위별로 천국에 와있는데 손과 발은 안보이고 입만 와 있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손발은 놀고 입으로만 모든 일을 하였기 때문이랍니다.
성도 여러분 ! 오늘부터 우리는 자신의 흔적을 주님께 보여 드릴 수 있도록 자신의 몸에 흔적이 남도록 충성을 다해 헌신하시는 성도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셋째, 온전한 헌신을 하려는 성도는 자신의 눈물을 쏟아 제단에 뿌려야합니다.
온전한 헌신은 오병이어인 자신의 적은 물질을 바치는 것이며, 자기의 몸을 드리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헌신을 하고는 싶은데 몸이 늙어 힘도 없고 물질의 능력이 없어 애태우는 분이 계십니까 ? 이것도 저것도 없는 분은 눈물로 주님께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없으신 연세드신 분들이 새벽같이 제단에 나와 눈물로 기도할 때 사랑의 예수님은 더욱 더 축복을 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응답도 속히 해주십니다. 분명 울면서 심은 눈물의 헌신의 기도는 웃으며 얻을 날이 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눈물 흘리며 헌신할 때 주님은 살며시 웃으며 다가와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며 당신에게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기도의 응답으로 섬기는 제단에 부흥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지금 이 시간 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손놓고 계시지 말고 누구에게나 있는 귀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로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넷째, 온전한 헌신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디(D L Moody)는 자기의 전도 강연을 들은 사람으로부터 이런 충고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강연은 문법적으로 틀리는 게 많습니다. 대중연설은 좀 삼가시는 것이 좋겠는데요.” 그는 학자였습니다. 그러자 전도자 무디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미안합니다. 저는 그렇게 부족하지요. 그래서 말하는 것도 서투르고 많이 틀립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주님을 위해 쓰이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당신의 그 좋은 지식과 통찰력과 판단력이 참 부럽습니다. 당신은 그것들을 주님을 위해 어떻게 사용하시는지요?” 아름다운 헌신의 기준은 지식이나 재물이나 능력의 많고 적음, 그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데 참된 헌신, 아름다운 헌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주님을 위해 어떤 헌신을 하고 있을까요.
다섯째, 온전한 헌신은 자기 목숨과 생명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신30:6)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6: 13)
찬송가 213장(구 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를 부르겠습니다.
1,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주셔서
세상 살아갈 동안 찬송하게 합소서
2. 손과 발을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일을 위하여 민첩하게 합소서
3. 나의 음성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주의 진리 말씀만 전파하게 합소서
4. 나의 보화 드리니 주여 받아 주셔서
하늘나라 위하여 주 뜻대로 쓰소서
5. 나의 시간 드리니 주여 받아주셔서
평생토록 주위해 봉사하게 합소서 아-멘
4. 온전한 헌신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
첫째, 영육간에 복을 내리십니다.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9)
둘째, 영원토록 하늘나라에 이름이 남고,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제가 아는 중국의 어느 선교사님은 우리나라 최고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큰 병원의 원장님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자신의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중국의 의료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중국의 한센병 환자를 위해 병원을 세우는 등 열심히 의료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교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선교사님,한국의 안정된 직업과 명예를 포기하시고 중국의 선교사로 가셨는데 힘들지 않으십니까?” 선교사님의 대답. “저는 천국의 영광을 위해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편안하게 원장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우리도 이 선교사님처럼 천국의 영원한 삶을 위해 우리가 가진 힘과 열정과 물질과 생명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내놓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서 이 땅에서 심는 것만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순간에 큰 상급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 사랑의 옥합을 받친 마리아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에 이름이 빛날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 온전한 헌신을 하는 자는 그 이름이 하늘나라까지 남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하십니다.(요14:2-4)
셋째, 귀히 여기시고,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시고, 쓰고도 남는 오병이어의 축복이 임합니다. 사람이 주를 섬기면 하나님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고(요12:26),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시고(눅19:16,17), 오병이어를 드림으로 당시에 모인 5천명을 만족하도록 먹게 만들고 12광주리가 남았듯이 우리들도 적은 물질을 정성을 다해 드리며 헌신할 때 필요한 물질 뿐 아니라 훗날에 쓸 물질까지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이밖에 온전한 헌신자에게 주시는 축복으로는 참 평안을 주시고(대하 15:15), 칭찬하시고(롬14:18),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고(계2:17),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고(계2:10),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고(계2:17),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하시고(계3:12), 그리스도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십니다.(계3:21)
아무쪼록 여기 계신 성도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 온전한 헌신을 함으로써 이 같은 축복을 모두 다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