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가해 10월16일 월요일 [(녹)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수도회]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로마 1,1-7
† 복음 루카 11,29-32
◈ 오늘의 묵상
표징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보고 확신할 수 있도록 드러내
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랑이나 평화, 정의 등과 같이 우리의 삶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치 그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하지만, 표징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차릴 뿐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눈빛이나 말투, 몸짓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그 바탕에 신뢰의 마음이 있어야 볼 수 있습니다. 평화는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서로 간에
진정한 사랑과 양보의 마음이 있어야 진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정의도 단순히 나의 것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 줄 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세대에 대해
한탄하십니다. 표징은 이미 그들에게 주어졌지만, 그들이 그 표징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우리
인류에게 가장 완벽하게 드러내신 표징이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볼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니 그것을 알아볼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표징도 의미가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고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신뢰하는 오늘날,
신앙인에게는 표징의 깊은 뜻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우리 역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2017년 가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제1독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시작입니다. 1,1-7
복음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제가 신학생 때, 외국인들이 단체로 신학교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오랫동안 신학교에 기부를 하셨던 독일 가톨릭
신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가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7~80년대만 해도 개발도상국가로 그렇게 잘 사는 나라가 아니었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유럽과 미국 교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잘 사는 몇몇 사람의 기부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시골의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 은퇴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신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정성껏 모아 당시
가난했던 한국 교회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기부를 오랫동안 했던 한국 교회를 방문해서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직접 보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발전된 한국 교회의
모습, 그리고 사제가 되겠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많은 신학생들의
모습, 또한 열심한 평신도들의 모습을 보고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요?
그때 한분이 ‘기적’이라는 표현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70년대에 너무나 가난한 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워서 기부를 해야만
했는데 지금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면서, 이 모두가 주님의 놀라운
은총에서 나온 기적이라는 것이지요.
도저히 고치지 못한다는 병을 고치게 되면 우리들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이들이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고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유럽과 미국의 신자들
역시 가난한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적이라고 표현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기적이란 멀리에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의
따뜻한 사랑이 모여진다면 과연 불가능한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사랑보다는 욕심과 이기심을 내세우는데 더 큰
노력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말씀이 바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을 향한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시지요.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표징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변해야
합니다. 요나 예언자의 말 한 마디로 이방 민족이 회개해서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진정으로
회개해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주님의 표징은 우리 한 가운데에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우리 역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향한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얻는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은 버릴 줄 아는 것이다(그라시안).
16명씩 쓰던 신학과 1학년 때 기숙사방. 이 침대에서 참 많이
떨어졌는데...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인터넷에서 보게 된 글입니다. 이 글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
맞춰보세요.
나는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또한 당신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이자 가장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고 실패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기도 합니다. 나는 전적으로
당신이 하는 대로 그저 따라갑니다. 그렇지만 당신 행동의 90%가
나에 의해 좌우됩니다.
나는 당신의 행동을 빠르고 정확하게 좌지우지합니다. 나에겐 그것이
매우 쉬운 일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몇 번 보고나면, 나는
자동적으로 그 일을 해냅니다. 나는 위대한 사람들의 하인일 뿐
아니라 실패한 모든 이들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인공지능 기계처럼 정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는
아닙니다. 나를 당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도 있고, 당신의 실패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되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착취하십시오. 나를 훈련시키십시오. 나를 확실하게 당신 것으로
만든다면 나는 당신의 발 앞에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가볍게 여긴다면 난 당신을 파멸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
.
.
.
.
.
난 당신의 습관입니다.
어떻습니까? 습관을 착취하고 훈련시켜서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나요?
어제 참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습니다. 초봉헌대에 빈틈이 없어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가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카 11,29-32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1,29) 왜 군중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악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예수께서는 그들의
태도를 보시며 왜 탄식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메시아의 기적을 갈망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많은 표징을 보여주시며 병자를
고쳐주셨지만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바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이라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결정적 표징인데 그들은 눈에 보이는 표징을 요구한 것이지요.
그들은 자신에 몰두하고 탐욕과 집착에 사로잡혀 허망한 이익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영혼이 흐려져 갈 길을 잃고
엉뚱한 것을 찾으며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외국 사람에 지나지 않는 요나 예언자의 설교를 듣고도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눈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하느님보다는 감각적인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많지요. 날마다 밥벌이를 위해서,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는
우리입니다. 하느님을 잊어버린 채 다른 데 쏠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다른 것을 열렬히 추구하는 것이 바로 ‘영혼의 암덩어리’
입니다.
우리는 자주 자주 눈이 멀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
기적을 일으키려 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나 자극적인 변화,
시선을 끄는 움직임들에 정신이 팔려버리곤 합니다. 현대인은 너무
바삐 움직이고 자신만을 찾으며, 집착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져
사소한 일상의 삶 가운데 이미 살아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이제부터라도 세상적인 탐욕과 이기심, 집착을 버리고 일상사 가운데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야겠습니다. 표징 자체인 예수님을 만나고
차지하기만 하면 나의 몸짓, 말 한마디, 생각 모두가 표징이 되어
모든 이들에게 선물이 되겠지요. 다른 이들을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표정, 관대한 수용, 겸손한 태도, 사랑의 인내, 용서 이
모든 것들이 바로 하늘나라의 표징들입니다.
우리 모두 나의 눈길을 주님께 돌리고, 세상의 헛된 것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어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행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불의와
탐욕과 미움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서서 예수님을 따라가야겠습니다.
그 순간 삶 전체가 하느님을 드러내는 경이로운 표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디에 매여 있으며 무엇을 찾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봤으면 합니다. 나는 어떤 표징을 원하며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야겠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의 기억을 되살려, 예수님이
바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생명과 기쁨과 정의를 전해주시는 결정적
표징임을 알아차려 우리 자신이 표징으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였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교회 쇠락의 원인, 매력의 상실!
2017년 가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 11,29-32
교회 쇠락의 원인, 매력의 상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쇠락하고 있는 우리 교회의 현실
앞에서 이런저런 걱정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쉬는 교우들의 급증,
가속화되고 있는 초고령화, 사라져가는 청년·청소년들, 사제.
수도성소의 급감, 저멀리 앞서가는 사회, 까마득히 뒤쳐진 교회,
세상의 현실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교회 모습...
이러한 추락에는 다양한 원인을 제시할 수 있겠지만,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 교회가 매력을 상실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오늘 부산에서는 2017년 한국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최종전이
벌어졌습니다. 넓은 사직 구장이 그름과도 같은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꽉 들어찬 관중석에서 더 없이 행복한 얼굴로 웃고, 탄식하고, 즐기고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왜 우리 교회로
오지는 않는가?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는 왜 저런 기쁨을 주지
못하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정작 커지셔야 할 예수 그리스도는 점점 위축되어
버리시고, 교회 건물과 교계제도와 성직자들의 권위만 커져버렸기에,
그래서 스스로 고립을 초래하였기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도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의 일을 곧 교회의
일로 여기고,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눈물을 곧 교회의 눈물로 여겨야
하는데, 그런 연대를 위한 노력의 부재를 가슴쳐야 할 때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각자 취하고 있는 신앙인의 자세도 심각히
성찰해볼 일입니다. 신앙이라고 다 같은 신앙이 아닌 것 같습니다.
천박하고 값싼 신앙, 유아기적 미성숙한 신앙이 있는가 하면, 진정한
신앙, 깊이있는 성숙한 신앙이 있습니다.
과거 625이후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신자가 되긴 했지만, 신자가 된 목적이 성당에서 주는
밀가루나 구호품을 타기 위한 것이었기데 진정한 의미에서 신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밀가루 신자였다가 지속적인 신자 재교육을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들도 참 많았습니다. 관건은
우리 신앙의 성장이요, 성숙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도 참으로 미성숙한 신자들이 있습니다.
나와 내 식구만의 하느님, 우리 가족만의 구원을 추구할 때
그렇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겪을 수 밖에 없는
고통과 시련, 십자가와 죽음을 거부한채, 그저 끝도 없는 부귀영화와
영광만을 추구할 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의 특징이자 표시인
희생과 헌신, 사랑과 봉사는 간곳없고 권위주의와 교만, 군림과
자기애만 추구할 때 그렇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끝도 없이 표징과 기적을 요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던지, 한숨까지 내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복음 11장 29절)
세상 사람들은 뭔가 대단한 기적, 특별한 자연현상을 ‘표징’으로 여기고
끝도 없이 예수님께 요구했지만, 그분께서는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있는 ‘악한 세대’, 그리고 비참한 현실이 곧
하나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처해있는 그
비참한 현실(타락과 우상숭배) 재빨리 인정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표징이라고 강조하십니다.
- 살레시오회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2017년 가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 11,29-32
첫 번째 본당은 중곡동이었습니다.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는 중곡동에
있었습니다. 모임이 있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중곡역에서
내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군자역에서 내리는 것이 훨씬
편하고 가까웠습니다. 다행히 모임 시간에 늦지는 않았지만 순간
당황했습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때로는 실수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홈페이지만 꼼꼼하게 읽어 보았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한번쯤
더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때로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안경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명동으로 돌아올 때는 시간 약속 때문에 택시를 탔습니다. 기사
분께서 청량리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하시라고
하였습니다. 택시 기사이기에 당연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였습니다. 명동은 이름의 뜻대로 밝은 동네이기에 당연히 찾기
쉬울 거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사 분은 을지로에서 종로
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순간 저도 당황했고, 기사 분은 방향을 잘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길도 막히고, 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종로에서 내려서 걸어왔습니다. 택시 기사는
당연히 길을 잘 알 것이라는 저의 생각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명동
근처에서는 제가 길을 안내 해 드리는 것이 더 좋을 뻔했습니다.
전문가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전문가라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국정감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리당략이라는 안경을 쓰고 있으면
제대로 된 국정감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흠집을 내기 위한
국정감사가 되면 안 될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무조건 두둔하는
국정감사가 되면 안 될 것입니다. 정치, 경제, 국방, 외교, 사회의
모든 현안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무엇이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국정감사가 되면 좋겠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의
외침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보다 더
지혜로운 분이 오셨어도, 요나 보다 더 큰 표징을 보여주신 분이
오셨어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였고,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고정관념이라는 ‘틀’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알은 스스로 안에서 껍질을 열어야 새가 될 수
있습니다. 겉에서 껍질을 열 수는 있지만 그런 새는 하늘을 날지
못할 것입니다.
2017년의 교회는 어떤 문제들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 시대는 교회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을까요?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교회의 제도가 영적인 충만함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교회는 건물만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 소외된 이, 아픈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가 대형화 되고 있으며, 교회도 성장과
발전의 패러다임에 갇혀있습니다. 교회라는 하드웨어는 있지만
공동체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줄 소프트웨어는 부족한 현실입니다.
이혼 했지만 재혼한 사람들, 성 정체성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
피임을 하는 사람들, 낙태를 해야 했던 사람들, 배아 줄기 세포를
이용한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 여성 사제와 사제 독신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 제도 교회의 틀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교회의
주변부에 있습니다. 질병, 전쟁, 전염병, 기아, 기후변화, 이념의
갈등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언제나 성령의 이끄심으로 지혜롭게 새로운 길을 찾아 왔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청하며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걷는다면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우리가 원해야 할 기적!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가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 11,29-32: 이 세대가 왜 이렇게도 악할까!
유대인들은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참 메시아’임을
입증할 수 있는 표징을 요구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표징을
보여주지 않으신다. 그것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고,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져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요나라는
표징 밖에는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요나의 표징이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다.
요나의 표징은 니네베 사람들에게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었다.
만일 그들이 요나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요나처럼 산 채로 저승으로
갔겠지만, 요나의 예언을 믿고 회개했기 때문에 요나처럼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그분의 죽으심을 통해 살거나 그분의 죽음을 통해 멸망하기도 한다.
이 표징을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31절) 남방 여왕은 교회의 모습이다. 남방
여왕이 솔로몬에게 왔듯이, 교회도 주님께 왔고, 남방 여왕이 이
세대를 단죄하듯 교회도 그럴 것이다. 지나가고 마는 지혜와 죽을
수밖에 없는 임금을 보고자 왔던 남방 여왕이 그 세대를 단죄한다면,
지혜자체이신 임금을 사모하는 교회는 어떻겠는가?
바로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지혜, 요나보다도 더 큰 하느님의 표징을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베푸셨는데도, 즉 다른 어느 세대, 어느
백성에게도 베풀지 않은 특전을 베풀었는데도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자기 고집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지 20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혜와 삶을 통해서 체험하고
소화시켜 전해준 신앙과 교회의 가르침, 성서 등 우리는 하고자만
한다면 더더욱 하느님을 가까이 모시고 더욱 의욕적인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때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더 큰 특전이 내린 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잘 안된다면 우리도 성경 말씀대로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나태하기 쉬운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만을 위해 기적을 요구하듯이 우리 자신이 하느님을 부르면서도
세상의 이익만을 찾음으로써 하느님의 뜻과는 먼 생활을 하고 있지나
않는지 경계하고 깨어있어야 하겠다.
가장 큰 기적이란 바로 나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큰 기적도 나의 눈에는 기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눈이 변화될 때에 참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생명을 얻을 수 있다.
- 수원 교구 상하 성모세 성당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청주] 속마음이 중요하다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가해 10월16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가 11,29-32)
속마음이 소중하다.
저는 빨래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뜻한 바가 있어서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고 짤순이를 이용 했습니다. 빨래하고 다림질 하고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양말 한 짝도 빨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탁하던 시간만큼 시간이
남아야 할 텐데 그렇지를 않습니다. 더러움을 씻겨내면서 내 마음의
더러움도 깨끗이 정화되기를 소망했습니다. 다림질을 하면서 내
마음이 반듯해지기를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우미께서
다해주니까 그런 생각을 할 기회도 많이 놓쳤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이 나를 정화시켜 주지는 못합니다. 겉은 깨끗하게
해줄 수 있을지언정 속을 거룩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보다도 내 마음이 더 빨리 더러워지는데도 세탁하는 것에는
민감하면서도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에는 소홀합니다. 구두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하면서도 내 마음을 빛나게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간직합니다. 외적인 매무새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가꾸는 일에 다시금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요구하는 군중을 보시고 “요나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가 11,30).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음의 쇄신을 갖지 않은 이상 어떤 것을
보여줘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을 열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려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신 표징을 알아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예수님께서 구원의 표징이 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단죄의 표징이
됩니다.
요나 예언자가 회개의 삶을 가르쳤을 때 삶을 바꾼 사람은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은 살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거부하는 사람은 생명을 누리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체가 벌이됩니다.
그분께서 주시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벌입니다.
일상을 하느님의 손길이 주어지는 자리로 인정할 때 매 순간 접하게
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인
마음의 변화 없이는 주님의 손길이 매 순간 주어져도 결코 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꾸십시오. 주어진 모든 것이 주님이
주신 일이라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지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쁘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도구삼아
일하십니다. 그러니 감사하십시오.
성녀 줄리아르는 말합니다. “정력적으로 온 힘을 다해서 일하되
법석을 피우지 마십시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은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가?”
조용한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표징을
요구하지 말고 삶의 자리를 표징의 자리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겉모양에 힘쓰는 허영은 영혼을 병들게 한다고 했습니다. 겉모양도
중요하지만 속이 더 소중함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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