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강릉 객사문은 강릉이 신라시대부터 동해의 큰 고을로
동해안 각 고을을 다스리는 관영으로서 주 건물인 객사로 들어가는 문이다.
따라서 본래는 객사문 안에 수많은 전각들이 있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지만,
지금은 고려말기에 지어진 객사문만 그대로 있고,
객사문 안쪽에 있는 수많은 전각들은 일제시대에 다 헐려나갔다.
이곳도 예전에 학교를 지어 운영하다가 이후 학교를 이전하고
본래 있었던 객사의 주 건물들만 복원해 놓았다.
주건물은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주건물보다 못한 객사문만 살아남은 까닭은
이 건물이 야릇하게도 부속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영역이나 중요한 건물이 안쪽에 위치하지만,
중요한 건물에 다다르기 까지는 과정적인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경계짓는 것은 문이다.
사찰의 경우 중요 법당에서 먼 곳에 사찰의 경계가 되는 일주문이 있고,
일주문을 지나서 한참을 올라가면 천왕문이 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올라가야 금강문과 루문이 있는 등
법당에 이르는 길이 간단치 않는데
이는 그 만큼 신성한 곳에는 쉽게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구조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객사도 본채인 객사에 이르기 전에
맨 먼저 만나는 경계에 있는 문이 객사문인 것이다.
객사는 전국의 수많은 관아에 존재했고 객사문 또한 있었지만
객사는 물론이고 객사문도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강릉에는 객사는 사라졌을 망정
객사문 만은 본래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 모습 또한 아름다운 배흘림 기둥에 단아하면서도 품격이 넘치는
공포(기둥위에 장식되어 품격을 높이면서도 구조적인 역할도 하는 부재)를 설치하고 있다.
강릉 객사문의 공포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귀중한 역사의 자료일 뿐 아니라
고려시대 건축물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건축물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귀한데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그리고 강릉 객사문 정도이다.
모두가 기둥 위에만 공포장식이 있는 주심포식 양식이며
하나같이 절제의 아름다움과 단아하면서도 세밀한 장식성이 뛰어나다.
이제는 국보 51호로 지정되어 강릉에서 뿐 아니라
한국내에서도 유일한 객사의 정문으로 많은 건축연구가들이 찾고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