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푸념하며 수다를 한번 떨어봅니다.
며칠전 한가위를 보내고 가을이 깊어 가는 정취에 젖어 홀로
졸음에 겨워하다가 잠시 호흡을 돌려 조선 중기 石洲 권필 선생과
더불어 쌍벽을 이룬 대시인 東岳 이안눌 선생의 시편에서 선생의
聞歌를 다시 읽었습니다.
선생이 어느날 용산에서 달밤에 한 여인이 선생자신이 흠모하고
그리워하는 松江 정철 선생의 사미인곡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크게 유감하여 작시하였다는 명편 聞歌를 읽고 그만 저의 재주를
돌보지 않고 즉흥시를 지어 靑衫(술과 한시,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게 카톡으로 아래와 같이 보냈더니 충남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다 년전에 정년퇴임한 靑衫의 일원인 존경하는 제 친구
誠軒 李 아무개 박사가 아래와 같은 답글을 보내왔습니다.
하여 제가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주제 넘게 다시
漱玉(수옥:중국 송나라 여류 이청조)의 詞 한편을 보냈습니다.
그 주고 받은 내용이 아래와 같습니다.
동창님들의 심기를 흐리게 하였다면 깊이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
아 래
[訥齋] 보냄
늦가을 냄새가 제법 풍기긴하지만 한낮은 아직
기온이 제법이더군요.
늦은 기상 후 점심 무렵 동악 이안눌 선생을 읽다가 문득 유감하여
몇자 끄적여 봤읍니다. 마음이 헛헛합니다. 부디 허물치 말으시길 바랍니다.
丹心 訥齋
某日晩秋吟李東岳先生聞歌有感率爾口占示靑衫昆季
(늦가을 이동악선생의 문가를 읊고 유감하여 감히 즉흥시를 지어
청삼제형에게 보여주다)
秋晩槐花壑 (추만괴화학) 깊은 가을 괴화산 골짜기에
世事無情老 (세사무정로) 세상 아랑곳하지 않는 늙은이가 있어
問棗栗表裏 (문조율표리) 인생사 표리부동 물었더니
誰有守丹心 (수유수단심) 누가 있어 일생 한결 같으냐 하더라.
* 率爾 : 갑작스럽게,신중하지 못하게
* 口占 : 즉석에서 시를지음
* 槐花壑 : 世宗市 錦南面 盤谷洞 槐花山 (201m)
聞歌(문가) 이안눌(李安訥 1571-1637)
江頭誰唱美人詞(강두수창미인사)
正是孤舟月落時(정시고주월락시)
惆悵戀君無限意(추창연군무한의)
世間惟有女郞知(세간유유여랑지)
강가에서 누가 미인곡을 부르는가
지금은 강물에 배 한척, 달 지는 시간
쓸쓸히 님 그리는 끝없는 내 마음
세상에선 오직 저 처녀만이 알아주리
壬寅 晩秋 槐花盤谷蝸廬 槐花翁 訥齋 識
[誠軒] 답글
槐花翁 徐訥齋大雅 嘗好東岳詩 或言漢詩 或談酒席 屢及東岳詩之浩澣精麗
其言之適切 評之高邁 實淵於平生潛心之餘 誠近來罕見之文士也
大雅雖隱遁而不出 抱久病而自重 然手不釋古典 心不懈耽詩 非凡夫之所及也
今日大雅輒有感於東岳之聞歌 因以效其意境 而隱然微呈襟中片鱗 隔數百年而暗合之情
大雅之不拘於塵世之志 於此可見 不禁擊節而歎也
愚弟雖菲才不文 次東岳之原韻 掇句而呈 但願靑衫弟兄之不笑也
괴화옹 서 눌재 대아께서는 일찍이 동악의 시를 좋아하여 간혹 한시를
말할 때나 술자리에서 이야기할 때 거듭 동악시의 크고 넓으면서도
정밀하고 고운 점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말씀의 적절함과 비평의 고매함이 실로
평생의 공부에서 나왔으니 참으로 요즘에 보기 드문 문사이시다.
대아께서는 비록 은둔하여 세상에 나서지 않고 병이 있어 자중하고 있으나
손에 고전을 놓은 적이 없고 시를 탐닉하는 마음이 게을러진 적이 없으니
보통사람은 미칠 수 없는 바이다. 오늘은 대아께서 동악의 <聞歌>에 느낀 바가
있어 그 의경을 본받아 은연중에 마음속의 한 조각을 살짝 드러내 보였으니
수 백 년 간의 차이를 넘어 가만히 의기투합하는 실정과 대아의 풍진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뜻을 여기서 볼 수 있으니 무릎을 치며 탄식함을 금할 수가 없다.
어리석은 아우가 비록 글재주는 없으나 동악의 원운에 차운하여 한 수 지어 올리니
다만 청삼 제형은 웃지 마시라.
聞歌 次東岳韻 誠軒
搔頭沈吟漱玉詞 (소두심음수옥사)
細雨飄散雲低時 (세우표산운저시)
無菊無酒黃昏情 (무국무정황혼정)
悠然戴秋寶山知 (유연재추보산지)
머리 긁으며 이청조의 사를 웅얼거리노라
가랑비 흩날리고 구름 낮은 때
국화도 없고 술도 없이 황혼 보내는 심정
아스라이 가을 이고 있는 보문산이 알겠지
龜泥窩 南窓下 誠軒 識
[訥齋] 다시보냄
醉花陰 취화음 李淸照 이청조
薄霧濃雲愁永晝 박무농운수영주
瑞腦消金獸 서뇌소금수
佳節又重陽 가절우중양
玉枕紗幮 옥침사주
半夜凉初透 반야량초투
東籬把酒黃昏後 동리파주황혼후
有暗香盈袖 유암향영수
莫道不消魂 막도불소혼
簾捲西風 염권서풍
人比黃花瘦 인비황화수
옅은 안개 짙은 구름 긴긴 하루 시름겨워
용뇌향은 황금짐승 향로 안에서 타고 있어요
아름다운 계절 중양절이 또 돌아오고
옥 베개 깁 방장
간밤에 서늘함이 갓 스며들었어요
황혼이 진 후 울타리 아래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지요
그윽한 꽃향기 옷소매에 가득했지요
그리움에 넋이 나가지 않았다고 말하지 마세요
가을바람에 주렴이 말려 올라가니
국화보다 수척한 나의 모습이어라.
이청조는 18세에 황실 종친인 태학생 조명성(趙明誠)과 결혼합니다.
결혼 후 조명성은 먼곳으로 유학을 떠나고 독수공방 남편을 그리워하게 되어,
마침 중양절(음력 9. 9일)을 맞아 이 詞를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청조는 술을 자주 마신 모양입니다.
'국화 가득한 곳에서 황혼때 까지 술을 마시니, 옷소매에 국화향이
남아 있네'(東籬把酒黄昏后,有暗香盈袖)라고 한 것을 보면 역시
술을 마신 것인데, 역시 풍류를 아는 여류시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莫道不消魂 簾捲西風 人比黃花瘦는 처연함을 이끌어 보호본능을 자극하게
하는 절창 중 절창이지요.
壬寅 晩秋
槐花盤谷蝸廬 槐花山人 訥齋 識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