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수) 이사야 54:1-10 찬송 589장
1. 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2.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3.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라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개역 개정)
-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화평에 대한 약속 -
오늘 말씀은 내용상 보다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해방의 환희를 노래한 52:1-12과 연결된다.
그리고 제 4 여호와의 종의 노래인 52:13-53:12은 일종의 삽입 구문이기 하지만
본문에서 예언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 나아가 신구약 전시대의
택함받은 모든 성도의 궁극적인 회복이 여호와의 종
곧 메시야의 대속과 승리가 가져온 결과라는 점에서 본문과도 자연스럽게 열결된다.
이러한 전후 맥락에 대해 깔뱅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이야기 한 후에
선지자는 교회로 시선을 옮긴다’라고 했으며,
루터 역시 ‘전장에서 선지자는 그 나라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묘사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의 몸인 교회가 묘사되었다.
그는 교회를 위로하고 교회에게 많은 후손을 약속한다’라고 했다.
한편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3절은 홀로된 여인같던 이스라엘의 자손이
다시 크게 번성할 것에 대한 약속을,
4-8절은 이스라엘이 다시는 수치와 버림받음을 당치 않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9-10절은 화평케하는 하나님의 언약의 불변성을 언급하고 있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을 남편으로부터 버림받고 자식이 없는
홀로 된 여인에 비유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여인은 실상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사회적·법적·경제적 모든 지위를 상실한 매우 수치스런 존재였다.
본문은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아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될 이스라엘이
바로 이같은 수치스런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7절)라는 여호와의 말씀은
비록 그 죄에 대해서 징계는 할지언정 한번 자신의 아내로 택하신
그 백성들 자체는 결코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을 잘 보여주고 있다.(애3:22-23)
그리고 노아 홍수 이후에 무지개 언약을 주셨듯이(9절)
영원히 이스라엘과의 화평을 깨뜨리지 않으시겠다는 화평의 언약을 주심으로써
여호와께서 스스로 자신을 언약의 법에 묶으신 사실은
일차적으로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만세대의 택한 성도에 대한 그분의 구원과
회복 약속의 진실성과 확실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딤후4:18)
10절)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의 영원성에 대하여 강조한다.
특별히 하나님은 당신의 화평의 언약의 영원성을
산의 견고함에 비하여 설명하고 계신다.
산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래로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다.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산을 확고함이나 견고함, 불변성
또는 안정성의 상징으로 여기곤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10절에서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한다.
이는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은 영원히 절대 불변하다는 말씀이다.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라는 말에는
그것들은 옮겨질 수 없는 것들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설령 그러한 것들이 옮겨지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그 언약이 얼마나 확고부동한 것이라는 말씀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은 비단 화평의 언약이나 노아의 언약만이 영원한 언약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영원히 변치 아니하는 언약이다.
주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고 말씀하셨다.
심지어 주님은 같은 맥락에서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24:35)고 말씀하셨으며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눅16:1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은 다 영원하다.
하나님이 언약하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변개되는 일이 없다.
그것은 천지가 개벽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며
더욱이 사람이 얼마나 신실하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변개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끼리 맺는 언약이라는 것은 어떠한가?
인간간의 언약은 그 언약의 대상의 상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인간간의 언약은 쌍방이 공히 잘 준수할 때에만 유효하다.
쌍방 중 어느 한편이 언약을 깨면 그 언약은 무효가 된다.
이를테면 부부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어느 한 편이 외도를 한다면 그 부부 관계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그들이 맺은 사랑의 서약도 아무 가치없는 것처럼 깨뜨려지고 만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파경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은 절대 파기 되는 일이 없다.
하나님은 근본 신실하신 분이기에 언약을 파기하는 일이란 없다.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은 근본 신실하지 못한 존재이다.
그래서 늘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다.
이를 감안할 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포기하셔도 사람은 할 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비록 인간이 언약을 파기할지라도 그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신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인하여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신실하심을 인하여 언약을 끝내 이행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언약의 대상인 인간이 당신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다고 해서
그들을 포기하시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언약의 한편 대상인 인간을 다시 당신께로 되돌리시고
무수하며 끝이 없다고 할만큼 계속 기회를 주시고
인내하심으로 그 언약을 유지시켜 나가신다.
우리가 늘 범죄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지만
그래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언약을 당신의 성실하심으로 지키시고
우리를 언약에 합한 자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는 다 구원하실 것이라고 언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우리의 행동, 우리의 처한 상태와 관계없이
영원히 유지하시기에 비록 늘 범죄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지만
그래도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영원성을 믿고
구원의 절대 확신 가운데 거하여야 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듯 우리 역시도 흔들림없는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언약 백성으로 합당한 삶을 견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시89: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