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가복음 강해-15*권오진 목사
마가복음 2:23-3:6 /
무엇이 중요한가?
여든두 살의 아버지와 쉰두 살 된 아들이 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묻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다정하게 말합니다. “참새예요, 아버지.” 조금 뒤 아버지는 다시 묻습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말합니다. "참새라니까요?" 조금 뒤 아버지는 또 묻습니다. 세 번째입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짜증을 냅니다. “글쎄, 참새라니까요!” 한참 있다가 아버지는 또 묻습니다. 네 번째입니다. “저게 뭐냐?” 아들은 그만 화를 냅니다. “참새라고요! 왜, 자꾸 같은 질문을 반복하세요.” 한참 뒤였습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들고나옵니다. 그리곤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합니다. <아들은 읽습니다.> 거기엔 자기가 세 살짜리 아기였을 때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참새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참새라고 답해 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스무 번을 똑같이 물었다. 그때마다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답을 해주었다. “참새”라고 같은 답을 스무 번 해도 즐거웠다.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아들이 사랑스러웠다.”
참새를 보고 ‘제게 뭐냐?’는 같은 질문이었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차이>에 따라 반응이 다름을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에는 같은 안식일을 보내며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일명 <안식일 논쟁>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두 번에 걸친 안식일 논쟁을 통해, 안식일의 의미를 살펴본 후에, 주일성수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우리에게 적용해보려고 합니다.
1. 첫 번째 안식일 논쟁 이야기(2:23-28)
논쟁 결론 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②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사진 1. 이스라엘 밀밭> 첫 번째 안식일 논쟁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신 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밀밭은 이스라엘 어느 밀밭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런 밀밭을 지나가셨고, 손에 닿는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밀을 먹었습니다. 사실 밀밭 사이를 지나갔다.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다. 하는 것이 평일에 있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도 그것은 허용합니다. 문제는 <안식일에> 지나가셨고, 잘라먹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안식일은 할례와 더불어> 유대인의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마치 기독교인이 <세례와 주일성수>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안식일 준수는 십계명 중 4계명에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출애굽기 20:8-11 을 읽어봅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창조주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4계명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세부적으로 - 안식일에는 가족도 종도 손님도 가축도 일해서는 안 된다. -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되게 하신 날이다. 안식일은 – 히브리어로 샤바트(שבת) 라고 하는데, <그치다, 중지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다는 개념으로 정의한 것입니다. 문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이 <일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성경에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 <39개> 를 구전으로 남겼습니다.
<안식일에 금지된 39개 항목 – 미쉬나> “씨 뿌리기, 밭 갈기, 수확, 곡식단 묶기, 타작, 키질, 곡식 분류, 곡식 갈기, 체질, 반죽, 빵 굽기, 양털 깎기, 양털 빨기, 양털 다듬이질, 양털 염색, 실 잣기, 실 엮기, 두 개의 고리 만들기, 두 개의 실을 엮기, 두 개의 실을 풀기, 묶기, 풀기, 두 개의 조각을 꿰매기, 두 개의 조각을 찢기, 사슴 사냥, 사슴 도살, 사슴 가죽 벗기기, 사슴 가죽에 소금치기, 사슴 가죽 염장, 가죽 문지르기, 가죽 자르기, 두 글자 쓰기, 두 글자 쓰기 위해 두 글자 지우기, 건물 짓기, 건물 부수기, 불 끄기, 불 켜기, 망치질, 물건 옮기기.” 읽어보면 짜증이 나려고 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싶지요>
그런데 우리가 어린 시절 <주일성수에 대해서 배울 때> 이런 비슷한 조항이 있지 않았나요. “주일에 과자 사 먹는 것 금지, 오락 금지, 돈 쓰는 것 금지, 학생은 공부 금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버스 타는 것 금지, 헌금은 가장 새 돈으로, 옷은 가장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해… 등” 물론 믿음의 선배들이 가르친 것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조항들을 만들고, 지키지 않는 자를 정죄하게 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미쉬나에서 안식일 금지규정 39개를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로 가시면서 밀을 잘라 먹은 행위는 최소한 몇 가지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밭 갈기(밭 중앙으로 길을 만들고 갔으니),수확, 타작, 키질이 해당하였습니다. 사실 22절에 말씀하는 “길을 열고”라는 말은 왕만 가지는 고유한 특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만왕의 왕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하여간 이런 것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시비를 겁니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24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한 예를 들며 설명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놉 땅으로 갔다. 그날이 안식일이었다. 다윗과 일행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는데 당시 제사장(아히멜렉(본문에는 아들 아비아달))이 하나님께 새로 진설병을 드리고 난 후, 한 주일 동안 진설하고 물려 낸 진설병을 다윗과 일행에게 주었다. 진설병은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지만, 배고픈 <다윗과 일행에게 준 것을> 성경 어디에도 죄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대한 명쾌한 정의를 내립니다. 27-28절 함께 읽어봅시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① 사람이 먼저다. (규정은 나중이다) ②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 마가복음에는 5가지 논쟁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중풍 병자를 치유하심(2:1-12)으로 -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마태를 제자로 부르심(2:13-17)으로 - 죄인을 부르러 오셨음을 금식 문제로(2:18-22) - 예수님은 참 기쁨을 주시려고 오셨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 위 해서 오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 논쟁에서는 –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요. 안식일은 형식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것을 알려줍니다.
2. 두 번째 안식일 논쟁 이야기 (3:1-6)
논쟁 결론 : 안식일에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두 번째 논쟁을 살펴보기 전에 <안식일 법의 기원을 살펴봅시다.> 안식일 법의 기원은 두 가지입니다. ① 하나는 창조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사람들도 안식일에 노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창조 행위>입니다. 일주일에서 최소한 하루만은 일체의 노동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조는 바로 <생명 사건>입니다. 이 창조와 생명 사건을 넘어서는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걸 반복해서 회상하라는 요청이 바로 안식일 법의 요체입니다. ② 출애굽 사건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하나님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던 히브리인을 바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 시킨 사건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바로 <해방과 자유>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해방과 자유를 넘어서는 가치는 없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의 역사적 뿌리에는 천지창조 사건과 출애굽 사건이 있고, 핵심 개념은 <창조, 생명 / 해방, 자유>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2:28) 는 말씀에는 예수님이 천지창조 사역을 하실 때 함께 하셨고, 예수님이 출애굽의 구원 사역도 함께 하셨고, 앞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실 것이기에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당당히 밝힌 것입니다. 안식일을 <창조 행위(창조와 생명) 구원 행위(해방과 자유)>의 관점으로 두 번째 논쟁을 보시면 쉽게 이해할 것입니다. 논쟁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님이 다른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회당에는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히브리 사람에 의한 복음서>에는 이 사람은 석공이었고 오른손이 말랐다고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루 일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질병은 생계 문제와 직결됩니다.> <한쪽 손이 말랐다>는 것은 그저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 문제가 아니라 –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며 그의 내면적인 고통까지 들여다보셨습니다. 물론, 그곳에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트집 잡아 고발하려고 하는 바리새인들도 매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보란 듯 <손 마른 사람에게> 회당 한가운데에 일어서라고 하셨습니다. 회당의 구조는 지금 우리가 예배실과 다릅니다. 좌우로는 계단을 만들어 회중이 앉도록 했고, 중앙에 공간을 둬서 거기에서 말씀을 강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당 중앙에 손 마른 사람을 세워놓고는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합니다.> 4절을 보세요.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선 vs 악 생명 살림 vs 생명
죽임 안식일에 어느 것을 행하는 것이 옳은가? 대답해 보라는 것입니다. 당시 안식일에 의학적인 배려는 생명의 위험했을 때만 주어졌습니다. 출산하는 부인은 안식일에 도움을 받았다. 인후(음식물과 숨이 통하는 길)의 병은 치료를 받았다. 만일 벽이 사람 위에 무너졌다면,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볼 정도 만큼 벽을 치워버릴 수가 있었다. 만일 사람이 살아 있었다면 구원함을 받았으나, 만일에 죽었다면 그의 시체는 다음날까지 그곳에 그대로 두었다. 골절은 치료받지 못했다. 쉽게 말해 죽을병이면 안식일이라도 고쳐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병은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한쪽 손 마른 사람>은 그냥 두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뜬금없이 그 사람을 <회당 한가운데 세워놓고> 안식일에 선을 행해야 하는가? 악을 행해야 하는가? 안식일에 생명을 살려야 하는가?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가? 질문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안식일의 의미를 분명히 아시는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향하여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자 – 그들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정답이 있었기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지 못하는 바리새인을 향해 <비판적 표정, 나아가 심판의 표정>을 지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에 완악함’에 대해서 근심합니다.
마치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집트 왕 파라오 같은 마음을 바리새인이 가졌음을 보신 것입니다. <선한 마음, 생명 사랑에 대한 마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껍데기와 형식만 남은 바리새인들을 분노에 찬 눈으로 둘러봅니다.> 그런 후에 손 마른 사람에게 “손을 내 밀라”(5절)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손을 내밀자> 그 순간 예전과 같은 건강한 손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선을 행함으로, 환자도 고쳤고, 그의 가족도 살려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바리새인들이 취한 행동이 6절에 나옵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선과 생명의 사건을 경험하고도 그들은 헤롯 당과 작당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했다는 말씀으로 본문을 마무리합니다.
안식일 논쟁을 통해 예수님은 최소한 3가지를 알려주셨습니다.
①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②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 ③ 안식일에는 선과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럼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봅시다. 구약의 안식일은 초대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주일로 옮겨옵니다. 유대교에서 나온 기독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일을 한 주일 중에 특별한 날로 지켰습니다. <주일에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일이 주인임을 알고,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는 것입니다.>
보통 <주일성수(主日聖守)-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한다고 합니다.
주일성수를 잘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내 영이 참 쉼을 얻고, 참 회복을 얻는 것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시를 일컬어 <마음의 빨래>라고 하셨는데 주일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영혼의 빨래, 영혼의 청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더러워진 부분을 청소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더욱 가까워짐으로 우리의 영이 회복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께 집중하셔서 영혼의 쉼과 회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② 노동을 멈춤으로 육신의 건강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루의 회복은 밤에 자면서 회복되듯 일주일의 회복은 주일의 쉼을 통해서 회복됩니다. 그러니 쉬는 것이 내 육신과 정신건강에 아주 중요한지 아시고 일주일에 하루는 온전히 쉬어야 합니다.
③ 선과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주일을 보내야 합니다. 구체적인 적용은 여러분이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형식과 본질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 묻을 때 우리는 <본질>이 중요하다고 대답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형식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예수님은 본질(정신)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아니면 본질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시고, 본질에 충실한 믿음 생활을 하셔서, 주님께서 주신 신비한 복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

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