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철물점 / 이경주
버스 정류장 바로 앞
시장 입구에 있는 철물점
반쯤 열린 유리문 사이로
뭔가를 다듬고 있는 늙은 주인이 보인다
굵게 패인 주름
깊은 비밀이 담겨 있는 듯한 눈빛
분주히 오가는 발길과 자동차 소음 속에서
바위처럼 앉아 있는 그는
좁은 반도의 반쪽 땅
이 도시 귀퉁이로 흘러온 고독한 유민일까
지금 그가 닦고 있는
기다란 쇠붙이 같은 것은
머나먼 왕국에서 들고 온 유물일까
어쩌면 그 옛적 초원을 달리던 용사들에게
칼과 창, 철촉과 등자를 만들어 주던
강인한 팔뚝의 대장장이는
그의 오래된 선조
불타는 이백 년 수도를 뒤로한 채
식솔들과 먼 남쪽으로 발을 옮기면서도
품 안에 깊이 숨긴, 가문의 명검
한 자루쯤 있었으리라
풀무와 망치질 대신
전깃줄과 고무호스, 빗자루를 팔며 연명하지만
대륙 회복의 꿈은 천년을 이어 온
누대의 유언이리라
북쪽 하늘 보이는 발해철물점
낡은 의자 위에서
긴 세월 날 벼리며
무변광야로 달려갈 영웅 기다렸을 이
오오, 저 손에 들어 올려질
눈부신 서슬
상경용천부를 뒤흔들 천리준마들이여
노인의 무릎을 향해 뻗는 내 손끝에
와 닿는 쇠붙이의 향기
가슴속에는 뭉클한 불꽃이 돋는다
서서히 버스가 출발하고
철물점은 멀어지고
오래도록 잊혔던 왕조의 후손이
아스팔트 먼지 속에 다시 묻혀 간다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숙명의 무게와
기나긴 기다림을 말없이 버텨 왔을 간판도
울컥 솟아오른 망국의 슬픔이 펼쳐 놓은
붉은 하늘 아래
아득하게 사라져 간다
- 이경주 시집 <발해철물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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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발해철물점 / 이경주
섬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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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01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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