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한가지
한 어머니가 자녀와 함께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희 아이는 워낙 영재라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입니다.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얼마 후 그 어머니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어떻습니까? 정말 똑똑하죠?”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말씀하신대로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아이이긴 합니다만 문제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
모든 것의 근원이요 근본이 되는
그 한가지는 무엇일까요?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버리자
뉴턴의 제자들이 찾아와 안타깝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평생을 공부하고 연구하신
수많은 이론들과 지식들이
다 선생님의 머리에서 사라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남은 지식은 무엇입니까?”
이에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한 가지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상이 무너져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가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환경과 상황에도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리며 의지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무를 분석하고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을
‘과학’이라고 합니다.
나무를 보고 시를 쓰고 노래하고
작품으로 창조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합니다.
나무를 보고 나무를 보는 '나'는 누구이며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학문을
'인문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를 존재케 하시는 이가 누구이며
이 나무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찬양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과학은 최첨단 기술로
눈에 보이는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시,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은 뛰어난 창의력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주면서
인간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은 본질에 대한
끝없는 의문을 제시하며 지성을 낳습니다.
인문학은 끝없이 사유하고
반성하고 의심하고 본질에 대해 고민을 하며
여러 의문에 대한 답을 주고 공감을 끌어 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결정적인 것을 도울 능력은 없습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
나는 어디에서 왔고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존재의 근원을 제시해줍니다.
꽃과 별과 달은 눈에 보이지만,
꽃을 피게 하고 달과 별을
떠 있도록 만드는 건 볼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본질을 보는 눈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이란 책을 쓴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성인인 고 이어령 교수는
무신론자였던 그가 지성의 세계에서
신앙의 세계로 오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첫째 원초적인 고독때문이었다.
문학과 지성을 비롯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때문이었다.
내가 일평생 바쳐온 문학이 죽어가는 딸 앞에서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부터이다.”
인간은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빈틈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에
하나님만이 그 빈틈을 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성을 뛰어넘는 '영성'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생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인생이고,
또 하나는 영원과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서 그 답을 찾으며 헤매는 인생입니다.
니체는 영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무엇에 의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왜 사는지 모른다면 살아 있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