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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5-31 13:30 기사원문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건설 지연·원전이용률 저하…한전 적자 키워"
한전 실적은 국제유가에 연동…"원전과 통계학적 상관관계 찾기 어려워"
안전 우려로 '원전 수용성' 갈수록 저하…준공 지연·안전비용 증가 추세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한국전력의 전례 없는 대규모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을 계기로 해묵은 탈원전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5일 전기요금 인상 발표하면서 "지난 정부의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으로 한국전력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누적됐고, 결과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다음날 윤석열 대통령도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탈원전과 방만한 지출이 초래한 한전 부실화"를 언급했다.
지난해 32조7천억원, 올해 1분기 6조2천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한전의 경영악화 원인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연료비 급등을 거론하긴 했지만, 주된 원인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에서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지난 22일 문재인 정부 5년간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비용을 2017~2030년 총 47조4천억원으로 추산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한전의 막대한 적자를 탈원전 정책의 결과로 봐도 무방할까? 이를 판단하려면 원자력발전 산업과 정책 전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 발전소
[연합뉴스TV 제공]
원자력은 연료인 우라늄 1g으로 300만배인 석탄 3t과 맞먹는 에너지를 발생시킬 만큼 열효율이 뛰어나 '제3의 불'로 각광받았다. 1950년대 후반 영국을 필두로 도입된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는 올 1월 현재 32개국에서 총 422기가 운영되고 있으며 전 세계 전력 생산량의 1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원전 산업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와 1986년 우크라이나(구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원전 안전신화'가 무너진 뒤 정체되기 시작했으며,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는 세계 각국이 원전을 대신할 대체에너지 개발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원전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세계 원전 산업이 막 태동하던 1954년 미국과 '원자력의 비군사적 이용에 관한 협정'을 맺고 기술 지원을 받아 연구개발을 시작했으며, 1978년 고리1호기의 상업운전으로 아시아에서 3번째, 전 세계에서 21번째 원자력 발전국이 됐다. 현재 부산, 경주, 울진, 영광 4곳에 총 25기의 원전을 운영하며 독자적인 원전 기술을 수출하는 세계 5위의 원전 강국으로 성장했다.
세계 원전 설비용량 현황
[세계원자력협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게시된 전력시장의 '원료원별 정산단가'(2001~2022년)를 보면 원전의 평균 정산단가는 47.3원/kWh로 석탄(66.5원/kWh)의 71%, 액화천연가스(LNG·122.2원/kWh)의 39% 수준인 걸 알 수 있다. 저렴한 원전의 발전원가(직접비용)는 에너지자원 부족으로 과거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렸던 우리나라가 석탄, 석유를 대신할 대체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선택했던 이유이자, 지금도 원전을 포기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원전을 발전원가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유발하는 원전 사고의 위험과 방사성폐기물 처분 문제,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안전규제·정책 비용, 미래세대 비용 등 발전원가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외부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없던 원전 안전에 대한 인식과 요구가 커지고 국민과 지역 주민의 원전 수용성이 낮아지면서 원전 산업을 유지하는 데 실제로 소요되는 사회적 비용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우리나라 원전 산업과 정책의 궤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장 그해 10월 '원자력안전법'이 제정되고 독립적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원전 안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으며, 국내 모든 원전에 대해 안전점검과 50개 개선 대책이 수립됐다. 아울러 2012년 일어난 고리 1호기 정전사고 은폐 사건과 2013년 드러난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은 원전 산업과 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키웠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에 반대하는 주민
[연합뉴스 사진자료]
'원자력 정책 변동에 관한 연구: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후를 중심으로'(2019년 박수경 장동현), '원자력 안전규제정책의 변동에 관한 연구'(2015년 김길수) 등 다수의 학계 논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원전의 수용성을 낮춤으로써 국내 원전 정책 변동에 중대한 전환점이 됐음을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원전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장 불량 부품을 쓴 원전들의 가동이 중단되고 정비 기간이 늘어나면서 원전 이용률과 발전 비중이 떨어졌으며, 예정됐던 신규 원전 건설 일정도 지연됐다. 경주 신월성 2호기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설비를 보강해 2013년 준공할 예정이었으나 2015년에서야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울산 신고리 3호기는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파문에 질소가스 누출 사고 등이 겹치면서 2013년 예정됐던 준공이 2016년 말로 늦춰졌다. 신고리 4호기와 신한울 1호기는 2014년과 2016년 예정됐던 준공이 박근혜 정부 임기 이후로 미뤄졌다.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30년 설계수명을 다하고 1차 연장수명 종료를 앞뒀던 부산 고리 1호기는 2차 수명연장(2017~2027년)을 추진하다 지역주민의 반발과 부정적인 여론에 막혀 2015년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졌다. 월성 1호기는 주민들의 반대로 설계수명이 종료되고 2년이 지나서야 수명연장 결정을 내렸으나 논란은 지속됐다.
2016년 경주 지진 발생 당시 국내 원전 상황
[연합뉴스 그래픽뉴스]
2016년 9월 경주(규모 5.8)와 2017년 11월 포항(규모 5.4)에서 잇달아 발생한 대형 지진은 원전 사고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공포를 확산시켰다. 이런 가운데 2016년 6월 영광 한빛 2호기를 시작으로 다수의 원전에서 부실시공에 의한 결함이 잇달아 확인되면서 파문이 수년간 지속됐다. 원자로의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한 원형 돔 형태의 격납건물 벽체와 내부철판(CLP)에서 구멍들이 발견된 것이다. 경주 지진 이듬해 치러진 19대 대통령선거에선 원전 안전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출마 후보 5명 중 4명이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연장 금지에 동의 의사를 밝혔다.
탈원전을 목표로 한 에너지전환 정책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와 원전 정책의 방향은 달랐으나, 출범 초기의 상황은 유사했다. 지진과 원전 부실로 인해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요구가 컸으며, 이는 원전 수용성 저하와 안전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 월성 1호기는 결국 2017년 서울행정법원의 수명연장 허가 취소 1심 판결이 내려진 이듬해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신고리 4호기는 운영허가 심의 중에 발생한 경주·포항지진으로 인한 부지 안전성 평가와 격납건물 철판 부식 문제로 심의가 지연돼 2019년 9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울진 신한울 1·2호기도 준공이 지연됐으며, 신고리 5·6호기는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 근무제 영향까지 겹치면서 공사가 늦춰졌다.
국내 원자력발전소 설계수명 현황
[연합뉴스 그래픽뉴스]
원전 산업을 둘러싼 갈등은 이해관계에 정치색까지 더해지면서 갈수록 격화되는 모습이다. 탈원전 논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내내 이어졌다. 탈원전을 지지하는 쪽은 탈원전 정책이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고 설계수명을 다한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60년에 걸친 중장기 계획이어서 당장 전력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원전 수는 2017년 24기에서 2024년 26기로 정점을 찍은 뒤 2034년 17기로 줄어든다는 시나리오였다.
반면 탈원전을 반대하는 쪽에선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와 건설 중인 원전의 준공 지연, 원전 이용률 저하를 탈원전 정책의 결과로 본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가 지난 21일 공개한 '탈원전 정책의 비용 평가' 보고서도 동일한 관점에 서 있다. 보고서는 박근혜 정부가 2015년 7월 수립한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상의 계획 발전량보다 줄어든 원전 발전량이 모두 LNG 발전량으로 대체된 것으로 가정해 2017~2022년 6년간 22조9천억원의 가외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또한 2023~2030년 24조5천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계산 방식을 따져보면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상의 원전 건설 계획대로 원전을 건설하고 6년 내내 원전 이용률을 85%로 유지했을 경우를 비교 기준으로 삼고, 계획과 현실의 모든 차이를 탈원전 비용으로 환산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원전 완공이 계획보다 조금이라도 지연되거나 원전 이용률이 85% 아래로 떨어진 건 모두 탈원전 정책 때문인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지난 3월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에 의뢰해 2018~2022년 5년간의 탈원전 비용을 13조4천억~25조8천억원으로 추산했는데, 기본적인 계산법은 대동소이하다.
[표] 국내 원전 설비용량 변동 추이
<자료 = 정부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한국수력원자력 원전운영정보 데이터 취합>
그러나 과거를 돌아보면 지진, 납품 비리, 부실시공, 노동정책 변화 등 원전 건설을 당초 계획보다 지체시키고 원전 이용률을 높일 수 없게 만드는 여러 제약 요인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2014년 보고서 '원자력 발전비용의 쟁점과 과제'(허가형)에선 점점 커지는 원전 안전에 대한 요구와 낮아지는 원전 수용성, 그에 따른 안전 규제 강화를 원전 건설과 정비 기간을 늘리고 건설 비용을 증가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일례로 박근혜 정부 때의 원전 건설 및 운용 실적을 앞선 이명박 정부가 2010년 12월 수립한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비교해 봐도, 계획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원전 산업과 정책의 대전환을 초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원전 비리 같은 변수를 계획 단계에서 예측할 순 없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공사의 난이도 상승과 지역 사회의 수용성 문제로 인해 2011년 이후 준공된 원전들은 준공일이 당초 계획 대비 30개월 이상 오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2009년 수주해 건설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도 준공이 당초 계약상 준공일보다 3~4년가량 지연됐다.
[표] 국내 원전 계획예방정비 일수 및 원전 이용률 현황
<자료 = 한국수력원자력 데이터 취합>
한국수력원자력이 공개한 '연도별 계획예방정비 일수' 자료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전 이명박 정부 때까지는 원전 1기당 연간 평균정비일수가 50여일 안팎이었으나, 박근혜 정부 때는 70~120일로 늘고, 문재인 정부 들어선 120~200일로 증가했다. 세부 정비 상황을 보면 최근의 정비일수 급증이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진 원자로 격납건물 결함으로 인한 하자 보수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원전 정비일수가 장기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반대로 원전 이용률이 낮아진 이유를 짐작케 한다. 이명박 정부(2008~2012년) 시절 원전 이용률은 평균 89.9%를 기록했으나, 박근혜 정부(2013~2016년) 때는 81.4%로 떨어졌고 문재인 정부에선 71.5%로 낮아졌다. 이와 함께 원전 발전 비중도 이명박 정부 때 평균 32.4%에서 박근혜 정부 29.5%, 문재인 정부 26.5%로 하향 곡선을 그렸다.
원자력발전소 이용률 및 가동률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 열린원전운영정보 캡처]
한전 적자의 원인으로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앞세우는 이창양 장관과 산업부는 원전 준공 지연과 원전 이용률 저하의 모든 원인을 탈원전 정책으로 치환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원전 비중과 한전 실적은 0.46 정도의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한전 적자의 우선적인 원인이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원전 이용률 저하와 원전 발전 비중 감소에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됐다. 국제 연료 가격이 올라 전력공급 비용이 늘어날 경우 발전원가가 싼 원전의 발전 비중이 높으면 비용 증가를 억제해 한전의 적자를 줄일 수 있는데 탈원전 정책 탓에 그러지 못해 적자를 키웠다는 의미다.
반면 최근 자리에서 물러난 정승일 전 한전 사장은 지난해 국감에서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의 원인이 '국제 연료 가격 급등과 전기요금 조정 지연'에 있다고 답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유가와 LNG, 유연탄 등 발전 연료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물가 상승 등을 우려해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하지 못한 것이 한전 적자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표] 한국전력 영업실적와 원전 이용률, 국제유가
<자료 =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데이터 취합>
실제로 한전의 과거 영업실적 추이를 보면 무엇보다 국제유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원전 이용률과 원전 발전 비중은 역대 최고였지만 한전의 실적은 내내 저조했다.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90~110달러로 고공행진을 한 탓이다. 2008년 원전 이용률 93.4%를 기록하면서 원전 발전 비중은 35.7%로 상승했지만 한전은 2조8천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 때는 원전 이용률과 원전 발전 비중이 전 정부에 비해 눈에 띄게 낮아졌지만 유가 하락으로 전례 없는 호실적을 거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한전의 실적은 유가에 밀접하게 연동되는 모습을 보였다.
원전 이용률, 원전 발전 비중과 한전 실적 간의 상관관계는 통계학적으로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말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전 영업실적과 원전 이용률, 원전 발전 비중의 간의 상관계수는 각각 0.296과 0.472였으나 통계적 유의성(p값)이 37.7%와 14.2%로 통상적인 유의수준(10%)에 못 미쳤다. 반면 유가와 한전 영업이익은 통계학적으로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전력 영업실적과 원전이용률·원전발전비중 현황
[국회예산정책처 '발전원별 한전 실적과의 상관관계' 보고서 발췌]
[표] 발전원별 전력 정산단가(2001~2022년)
<자료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원료원별 정산단가'>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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