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름은 저장하지 않아서 죄송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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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1시경 단관 뒷풀이자리에서 먼저 나와 2차를 가는 곰대 식구들을 뒤로하고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 아저씨가 대뜸 물으셨다.
"야구장 갔다가 뒷풀이 했나봐요. 어느 팀 응원했어요?"
"당연히 두산이죠."
"에휴... 두산이..... 졌지요?"
"그래두 괜찮아요. 너무 열심히 했잖아요."
"그래두 그게... 그래두 우승을 했어야 했는데.... 우승해서 재박이 코를 납작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원년부터 OB 팬이셨다는 기사 아저씨의 말에는 짙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래두 우승을 했어야 한다는 아저씨의 말에 나 또한 깊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였나.... 재박이가 그렇게 기를 쓰고 이기려고 했던 것이...
아무리 우리가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감동 받고, 진정한 승자는 우리들이라고
말해도 한구석 아쉬움이 남는 것이....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나.....
나 또한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만일 두산이 우승했다면 그 기쁨에 넘쳐 1차 뒷풀이에서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간사한 내 마음에 살짝 욕을 해 주고 찬찬히 7차전을 돌이켜 보았다.
1시 경. 학교 수업을 하나 제끼고 사당으로 향했다. 출석을 안 부르는 수업이라
맘이 편하긴 했다. 6차 전 날씨가 꽤 쌀쌀해서 단단히 입고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찬바람이 불어댔다. 이런 날씨에 선수들이 제 컨디션으로 경기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다들 몸이 말이 아니라는데.... 선수들에 대한 걱정과 7차 전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뒤섞인 채 곰대 식구들을 만나 수원으로 향했다.
예매를 하지 않아 걱정이었다. 4시가 못되어 도착한 수원구장 3루 쪽 매표소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겨우 표를 구해 들어간 구장엔 벌써부터 사람들이 3루 쪽 내야를 절반이상 채워놓고 있었고, 외야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썰렁한 현대 관중석을 보며 내심 즐거웠다.
'짜식들..... 경기 전부터 쫄아봐라....'
해가 금방 떨어졌다. 바람은 더욱더 쌀쌀해졌다. 차곡차곡 메워지는 두산 응원석. 워밍업을 하는 선수들에게 화이팅을 외쳐주고 우리는 들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떠 있던 만큼 선수들도 상기된 듯 했다.
팬들을 보려고 괜히 한번씩 나와보는 선수들의 모습....
(특히 홍씨 선수 두 명... 연습하는 척 했지만 이미 눈치 깠다니까용~~~^^)
그만큼 우리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졌다.
핑클이 와서 애국가를 불렀다. 반 정도는 국기를 안보고 핑클을 보았다고 관이 옵빠가 그랬다.
그나마 나한테는 보이지도 않았지만....
암튼 드디어 경기 시작.
아...바람..... 경기 전에도, 경기 중에도, 경기 끝난 후에도 가장 섭섭했던 게 있다면 이 거센 바람이었다.
울 선수들...얼마나 추울까....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도 덜덜 떨리는데..
경기는 6차 전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먼저 2점을 내 주고 2점을 따라 붙었다.
그리고 3점 홈런을 맞았다..... 김수경도 참 잘 던졌지만(욕하지 마세요. 잘한 건 잘한 거잖아요.)우리 선수들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찬스는 오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 날.... 긴 수비, 짧은 공격..... 얼어붙은 몸을 녹일 새도 없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와야 했던 울 선수들..... 하지만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의 응원은 점점 더 열광적이 되었다. 얼마나 짜릿한 역전승을 맛보았던 우리들인가. 하지만 매회 추가 실점의 위기를 막아내고 8회에 5타점을 날린 그 녀석에게 6타점째 홈런을 주었다. 이미 기울어진 경기라고 생각했는지 우리측에선 준비해온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리들도 서로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우승을 바란 건 아니었잖아. 울 선수들은 너무나 잘했어.
최고야. 우리에겐 승패가 이미 중요한 게 아니야. 그치?'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안 그냐 연지야? 지혜야?)
나는 잠시 응원을 멈추고 우리 선수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하지만 내 자리에서는 장원진 선수만 제대로 보였다.
그래두 난 새우눈을 해가며 보고 또 보았다.
단관을 첨 했던 3차전. 이젠 끝이라고 생각했던 4차전.
그때에는 정말 이기는 경기는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단지 울 선수들에게 올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에, 그 자리에
있고 싶었고, 있어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지 몰라도 화이팅을 외쳐 주고 싶었다. 너무나 자랑스런 그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내 주고 싶었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야구장 한 자리 채워주는 것밖엔 할 수 없었지만 그거라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5차전 6차전.... 나는 매 경기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질 꺼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만큼 간절히, 열심히 그들에게 화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나는 그들 하나 하나의 모습을 내 눈에 내 가슴에 아프도록 새기고 싶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장원진 선수가 보인다. 손이 많이 시린가 보다.
원진님 수비하러 이 쪽으로 나올때 마다 "장원진 화이팅"을 외쳤던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멀리 쌕쌕이 정수근 선수도 보인다. 잊을 수 없이 황홀했던 5차전의 삼루타.
감격해 하던 그 모습. 그 환희의 순간이 스쳐 갔다.
그리고 더 멀리 개인적으로 젤루 좋아하는 심정수 선수가 보인다.....
어제는 두통이 심했다던데 오늘은 괜찮았던 걸까?
종훈이 왔다는데 홈런 못쳐서 속상해하고 있을까?
경기 시작 전 이불만한 플랭카드를 들고 뛰어가 화이팅을 했을 때 그때 손을 흔들어 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홍원기 선수..... 5차전때 대타 싫다고 버팅기던 모습이 생생하다.
팬들의 응원에 감격했다던 기사가 스쳐가면서 뭉클해진다.
그리고 연지가 홀랑 반한 김민호 선수.....의 팔뚝.....^^
나두 담에 자세히 봐야겠다.... 얼마나 멋있는지....^^
그리고 이종민 선수와 강혁 선수의 모습이 차례로 보인다.
마운드에선 박명환 선수.... 홈에 앉아 있는 홍성흔 선수...
젠장.... 안 그래두 쪼끄맣게 보이는데 타자땜에 잘 안 보인다....밉다..
그리고....덕아웃에 계실 계현 오라버니의 모습도 그려보고,
감독님의 모습....내가 아는 모든 두산 선수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아....이들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그저 색이 바랜 잔디가 그들로 인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인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눈 깜빡일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당신들 하나하나를 새기고 있는 나를...
우리 모두를.... 느끼고 있을까?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들이 알고 있다는... 그들도 느끼고 있다는 느낌.....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그들이...... 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 순간.... 그 느낌.... 내겐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이 곳,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마지막 공격이 되었다. 홍성흔 선수 안타를 치고 나간다.
1루에서 힘차게 두 주먹을 불끈 쥔다....아...어쩌면....포기하지 않았구나...
바보 같은 나.....그들이 누군데.... 포기할 리가 없지....
마음은 다시 가득 차 오르고 눈물이 고였다....
이미 승패를 떠나있었던 내 자신이 너무나 미웠고 너무나 미안했다.
그들은 승리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그랬던가.....
그래 ..... 바로 이런 거잖아.... 이런 모습에 두산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거잖아.... 내 자신을 마구 마구 원망하며 목 터져라 두산을 외쳤다.
그리고 얼마 뒤 경기는 끝났다.
홍성흔 선수가 헬멧을 던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지만 또한 깊은 감동이었다. 더 응원했어야 했는데.... 더 열심히....
우리는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더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허탈해 있을.... 눈물을 흘리고 있을 우리의 선수들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더 응원을 해야했다.
우리는 "잘했어."를 외쳤다....그래....너무나 너무나 잘해주었다...
잘했어라는 말로도, 목터지게 외치는 것으로도, 수원구장을 가득 채운 것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해도 부족할 정도로 너무나 잘해주었다.
그라운드에서 현대 선수들이 우승 세레모니를 한창 하고 있다.
이젠 밉지도 않다. 관심도 없다. 우리의 영웅은 당신들이 아니니까.
이렇게 우리를 열광하게 하는 것.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
우리를 멈추지 않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 두산 베어스니까.
정수근 선수와 김민호 선수가 올라왔다.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다 안다.... 알고도 남는다.... 우리끼리는 통하니까...
우리 선수들이 나온다..... 젠장...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거야....
보란 말야.... 당신들이 오늘의 주인공이란 말야....
눈물나도록 자랑스러운 우리의 영웅이란 말야.
그렇게 짙은 감동과 아쉬움의 한국시리즈는 막을 내렸다.
다음날 학교에 갔다. 모두들 날 놀리고 있다.
져서 어떻게 하냐, 그럴 줄 알았다, 역시 현대다....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난 씩 웃으며 그저 한마디했다. "괜찮아. 잘 했잖아."
내가 어떤 표정으로 그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후에 다들 날 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까웠다고 했다.
난 후유증인듯 실험도 잘 안 되고, 알바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목은 완전히 맛이 가서 말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두산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가슴깊이 차 올랐고, 곰대에 들어올 때마다 순간순간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엔 어떤 아저씨가 스포츠 신문을 보고 있었다. 예상대로 1면엔 대문짝만한 현대 우승 기사가 실려 있었다. 아직 나의 한국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는지 그들의 우승을 축하해줄 여유는 없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니...지금은 그 보다는 내 마음은 두산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라도 축하를 할 수 있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할 생각이다.
우리가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보다 더 멋지고, 성숙한 두산 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두산베어스의 모든 선수들... 아십니까?
그대들이 그 곳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감동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대들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환희와 기쁨을 주었다는 것을...
아니 그것은 황홀함이었다는 것을.....
내가 열광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의 원천은 바로 그대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대들의 승리를 보았습니다.
어떤 위기가 닥쳐와도 우린 그대들을 믿습니다.
다시 우리의 힘을 솟게 해 주십시오.....
열배...백배....천배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최!강!두!산!화!이!팅!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 곰대 가족 및 두산 팬 여러분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