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거리에서
친절의 국경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9호(2019. 10.15)
안현모 (언어02-07, 36세), 동시통역사 겸 방송인
올 여름 비행기를 탈 일이 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의 일주일과 미국에서의 일주일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제가 머물렀던 장소가 대도시와 동떨어진 조용한 시골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런던 근교의 작은 마을 코츠월드와 뉴욕주 북쪽 끝에 위치한 소도시 피츠포드는 너무나도 한적하고 평화로워서, 한국에서의 바쁜 일들은 잠시 잊어버리고 모처럼 흠뻑 휴식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미세 먼지 없는 파란 하늘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고 싶어 괜히 바깥으로 나가 기지개를 활짝 켰고, 얼굴에 화장품을 찍어 바르면 녹음이 우거진 푸르른 배경에 괜스레 누가 되는 것 같아 가볍게 맨 얼굴로 집을 나섰습니다. 급할 것 없는 뻥 뚫린 도로에서는 빨리 가기 위한 운전보다도 풍경에 딱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 들으려고 손가락을 움직였고, 어딜 가도 남아도는 널찍한 주차 공간에서는 다른 차들이 먼저 들어갈 수 있게 웃으며 손짓도 해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닥에 누웠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뻥 뚫린 높은 천장이 좋아서 한국에서는 하지도 않던 체육관 운동도 매일 했고, 평소에는 그렇게 낯가림이 심하면서도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마주치는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들의 인사에는 친한 친구마냥 능청맞게 농담으로 대꾸해주기도 했습니다.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관광여행이 아니었기에, 기념품을 쇼핑하는 대신 그들 특유의 친절과 미소를 지역 특산품 마냥 마음에 담으며, 그들에게는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을 저는 마냥 특별하고 신기한 경험으로 만끽했던 겁니다.
그렇게 꿈만 같이 느리고 평온한 호흡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지냈건만, 어느덧 약속된 날이 왔습니다.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싣고, 언제나 그러하듯 얼굴에 안대를 푹 내려쓰고 서둘러 잠부터 청했지요. 이제 저의 원래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습니다. 그 동안 중단됐던 산더미같이 밀린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앞으로 예정된 중요한 일들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그것들을 처리하려면 지금 당장 잠을 한 숨이라도 더 자둬야 했고,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가열차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의 모드를 비장하게 재설정해야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도착하면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하는 일정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까지 해가며 잠이 들었습니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 09-13) 동문
다시 말해 꿈까지 꾸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가 눈을 뜬 건, 승무원들이 부산하게 식사를 나눠주는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안대를 위로 걷어 올리고 손가락을 까딱해 간이 테이블을 내리자, 눈 앞에 쟁반이 놓여졌습니다. 잠시 멍하게 쟁반을 노려보며 숙면이 끊긴 것을 원망하긴 했으나, 이내 무의식적으로 밥그릇의 뚜껑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손의 감각이 덜 깨서인지, 몇 번을 시도해도 압착된 비닐이 뜯기지가 않았습니다. 어차피 아직 허기도 못 느끼는 반 수면 상태였던 지라, 생각 없이 재차 힘을 줘 비닐을 잡아 당기는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뜯어 드릴까요?” 저는 너무 화들짝 놀라 눈도 맞추지 못하고 황급히 “괜찮아요”라고 답했습니다. 옆자리 승객은 대수롭지 않게 다시금 시선을 모니터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무얼 하고 있는지도, 거의 존재 자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남자 승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그 “뜯어 드릴까요” 한 마디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담요를 꽁꽁 덮고 잠이 들 때까지 제 귀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후로도, 수하물 벨트에 시한 폭탄이라도 설치돼 있는 듯 빨리 빨리 경쟁적으로 짐을 재촉하는 여행객들의 소음 속에서도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그것은 나는 먼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아니 묻긴커녕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친절’의 한마디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국 땅에서 부러움을 섞어 감탄하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친절이었습니다. 다만, 나란 사람이 한국에 도착도 하기 전, 국경을 벗어나는 순간 상공에서부터 여유의 숨통을 닫아버리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애초에 그곳에서 무슨 이색 문화인 것마냥 잠시 즐겼던 친절 자체가, 내가 이곳에서 늘 숨쉬고 마주하던 친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내 주변에 더 정겹고 익숙한 형태로 눈 앞에 널려있을 크고 작은 친절을 감지조차 하지 못했던 건, 순전히 긴장감에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내 시야 때문이었던 겁니다.
며칠 뒤, 아파트 1층 현관에서 뒤에 오는 아주머니를 위해 무심코 유리문을 잡아 주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입에서는 쑥스런 웃음과 함께 “고맙습니다” 대신 “어이코!” 세 글자가 튀어 나오더군요. 분명, “땡큐” 처럼 세련된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멋없는 “어이코” 소리에 뒤돌아서 피식 웃음이 나더군요. 아마도, 이제와 그 속뜻을 알아들은 제 넓어진 이해력에 스스로 기특했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