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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풍광을 만끽하면서 가는 곳마다 종횡무진, 생생한 현장 강의가 펼쳐집니다
2026년 1월 최고의 전문가 유성환 교수가 이끄는 이집트 문명답사
이집트 역사유적 답사의 최고 권위자인 유성환 교수(서울대 교수, 이집트학)의 2026년 답사 계획이 나왔습니다. 2026년 1월 6(화)-16(금)일, 1월 16(금)-26(월)일, 11일씩 두 차례 진행됩니다.
유성환 서울대 교수(이집트학)는 최고의 이집트 고고학 전문가입니다. 그는 부산대 영어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한 후 5년간 전문 통번역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 재학 중 우연히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의 매력에 빠져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홀로 공부하는 것에 한계를 느껴 이집트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미국 브라운대 이집트학과 석박사통합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2012년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013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에서 고대 서아시아 전반의 문명과 역사, 언어와 예술, 종교와 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사문학 작품과 장례문서, 역사적 비문, 의학 파피루스 등과 같은 고대 이집트의 주요 원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문헌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틈틈이 원전 번역과 주해 작업을 수행해 왔습니다.
유 교수는 2020년부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고대 이집트의학에 대한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 <고대 중근동의 팬데믹 : 문명의 어두운 동반자>(씨아이알출판사)를 출간했습니다. 2022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 전문 패널로, 2023년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 강연자로 각각 출연했습니다.
▲나일강가 룩소르 신전의 야경Ⓒ유성환
유성환 교수가 인솔하는 이집트 유적답사가 2025년 1월에 이어 다시! 2026년 1월 두 차례 진행됩니다. 회원님들의 많은 성원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답사를 진행하는 유 교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고대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와 함께 세계 최초의 문명이 생겨난 곳입니다. 영겁의 시간, 그리고 인간의 무관심과 무지에 의한 약탈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이집트는 나라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아직도 방문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환상적인 여행지입니다. 수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카이로 - 기자 고원의 쿠푸·카프레·멘카우레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국가가 성립된 이래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분묘 즉, 왕묘를 건설하는 데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자했습니다. 파라오들이 크고 장엄한 분묘를 만들었던 이유는 영원히 보존되고 유지될 왕묘를 지상에 건립함으로써 내세에서 자신의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왕묘의 건축양식과 내부장식에는 당시의 내세관이 언제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왕묘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 그룹Ⓒ유성환
카이로 근교의 기자 고원에는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가 건설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시간의 풍상을 견디고 지금까지 장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세계7대 불가사의 중 현존하는 유일한 유적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뛰어난 천문학•수학•기하학•의학을 바탕으로 거대 건축물을 정교하게 건설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하게 맞춘 것이나 평균 무게 2.5톤의 석재 블록을 147미터 높이로 230만 개나 쌓아 올린 것이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기자 고원의 피라미드의 모습은 방사하는 태양광선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들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제4왕조부터 태양신 신앙이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것과 갚은 관련이 있습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앞에는 전체 길이 74미터, 높이 20미터 규모의 스핑크스가 기자 고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스핑크스는 피라미드의 경우와 같이 석재를 쌓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석회암 기반을 깎아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누구를 묘사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카프레의 얼굴로 보는 견해가 현재의 학계의 정설입니다. 스핑크스의 몸체에는 심하게 침식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수천 년 간 여러 번에 걸쳐 머리만 제외하고 모래에 완전히 파묻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고원 입구의 스핑크스Ⓒ유성환
[다슈르 - 스네페루의 굴절 피라미드와 적색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페루는 다슈르와 메이둠에 이집트 역사상 최초로 삼각형 모양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슈르의 ‘적색 피라미드’입니다. 이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스네페루는 메이둠에 하나의 피라미드를 지었으며 다슈르에도 ‘굴절 피라미드’로 불리는 피라미드를 또 하나 건설했습니다.
메이둠의 피라미드에서는 ‘타워’라고 불리는 각추형의 코어에 석재를 둘러 피라미드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편 높이 105미터의 ‘굴절 피라미드’는 49미터를 기준으로 피라미드 아래쪽은 58-60도의 각도로, 기준점 위쪽은 54도로 지어졌습니다. 아마도 피라미드의 각도가 너무 가팔라서 석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현상이 발생했거나 전체 무게 때문에 붕괴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각도가 조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 피라미드는 기자 고원의 삼각뿔 형태의 완전한 피라미드가 지어지는 데 과도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슈르의 ‘굴절 피라미드’Ⓒ유성환
[룩소르 – 왕가의 계곡 왕묘와 장제전]
고왕국 시대, 중왕국 시대와는 달리 신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더 이상 피라미드를 짓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룩소르 서안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에 거대한 암굴묘를 만들었고 동시에 서안의 경작지 주변에 장제전을 건립했습니다.
신왕국 시대의 왕들이 피라미드 대신 암굴묘를 택한 것은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결합을 부활의 조건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저녁이 되어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떨어지면 지하세계(내세)로 들어간 뒤 지하세계에 있는 강을 따라 여행을 하며 밤이 가장 깊어진 시각에 지하세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오시리스와 결합하여 서로의 에너지를 교환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왕이 내세에서 부활하기 위해서는 태양신과 오시리스의 이 신비로운 결합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왕이 매장된 암굴묘의 벽면에는 태양선을 타고 지하세계를 여행하는 태양신의 모습과 오시리스 신과의 결합, 그리고 일출 전 부활에 성공한 태양신의 모습 등이 다양한 주문과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암굴묘는 제18왕조의 아멘호텝 1세에서 제20왕조의 람세스 11세에 이르기까지 신왕국 시대의 거의 모든 파라오들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왕묘로는 1922년 하워드 카터에 의해 발견된 투탕카멘의 왕묘, 전실과 묘실을 비롯한 왕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채색 부조로 장식된 세티 1세의 왕묘, 천문도를 비롯한 왕실 전용의 장례문서로 화려하게 장식된 람세스 9세 왕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계곡’Ⓒ유성환
‘왕가의 계곡’ 근처에는 왕들이 사후 아문 신과 자신을 위한 신전 의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설한 장제전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들 장제전 중 가장 유명하고 화려한 것이 바로 이집트를 다스렸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아랍어로 ‘북쪽 수도원’을 뜻하는 데이르 엘-바흐리에 위치해 있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전건축의 기본적인 문법을 비교적 충실히 따랐던 다른 파라오들의 장제전과는 달리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석회암 절벽을 배경으로 3층 테라스의 형태로 건립되었기 때문입니다. 건축물의 독창적인 아름다움 이외에도 장제전에는 신왕국 시대 당시의 국제무역 관계와 종교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부조와 신전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습니다.
‘제세르-제세루’, 다시 말해 ‘성소 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성소’이라는 뜻의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은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단계적인 상승을 상징하는 세 개의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테라스 앞에는 열주랑과 거대한 뜰이 펼쳐져 있으며 신전 중앙에는 폭 13미터, 길이 400미터의 중앙 통로가 지금은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계곡신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세 번째 테라스에는 높이가 3미터, 무게 7.5톤에 달하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시리스 상이 각 열주 앞에 세워졌으며 두 번째 테라스의 남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북쪽에는 아누비스와 태양신 레-호라크티의 신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천상을 상징하는 맨 위의 세 번째 테라스 중앙에는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문 신의 지성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유성환
[룩소르 – 카르낙 대신전과 룩소르 박물관]
카르낙 대신전은 테베의 주신 아문 신을 모신 신전으로서 신왕국 시대를 거쳐 이집트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성장했습니다. ‘숨겨진 자’를 뜻하는 아문 신은 중왕국 시대 초기부터 그 중요성이 점점 증대했으며 나중에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레와 합쳐져 아문-레가 되면서 명실공히 최고의 국가신으로 부상했습니다.
파라오들은 앞다투어 자신을 아문-레의 아들로 부각시켰으며 스스로를 ‘아문이 사랑하는 자’로 칭하면서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카르낙에는 아문-레를 모신 지성소뿐만 아니라 아문-레의 아내인 무트, 아들인 달의 신 콘수의 신전과 사당이 있으며 이외에도 멤피스의 주신인 프타와 테베의 전쟁신이었던 몬투의 신전도 함께 조성되어 있습니다.
중세의 성당과 마찬가지로 카르낙 대신전도 수 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증축되고 개축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성소를 기준으로 외곽의 탑문 쪽으로 갈수록 후대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현재 남아 있는 구조물을 기준으로 보면 투트모세 1세가 신전 핵심부인 지성소의 입구가 되는 제4탑문과 제5탑문을 세웠습니다.
그 뒤를 이어 하트셉수트 여왕이 두 탑문 사이에 한 쌍의 오벨리스크를 건립했는데 아스완으로부터 오벨리스크를 운반하는 장면을 데이르 엘-바흐리에 있는 장제전에 부조로 새겨 넣게 했습니다. 하트셉수트 사후 왕위를 되찾은 투트모세 3세가 이들 오벨리스크를 가리기 위해 벽을 세웠으나 이것이 오히려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중 북쪽 면에 있는 오벨리스크(높이 29.5미터, 무게 300톤)는 아직까지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투트모세 3세는 한편 지성소 뒤 편 동쪽 면에 ‘아크메누’라고 불리는 ‘축제의 방’을 건립했습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곳의 기둥은 임시 천막의 버팀목과 같은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학자들은 이 신전이 투트모세 3세의 희년제 의식에 사용되었던 가설 천막 모양을 바탕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신전에서 특히 흥미로운 곳은 소위 ‘식물원’으로 불리는 작은 방입니다. 투트모세 3세가 이 방에 시리아-팔레스타인 원정 중 발견한 각종 동식물을 새겨 넣게 했기 때문에 학자들은 이 방을 ‘식물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기 새겨진 식물 중 대부분은 지중해 동부에서 발견되는 종이지만 일부는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 사하라 남부에서 발견되는 종이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건축물, 카르낙 대신전Ⓒ유성환
[에드푸 – 에드푸 신전]
그리스-로마 지배기라고 불리는 60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이집트 전역에 걸쳐 수많은 신전이 건립, 개축, 증축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건립된 주요 신전으로는 덴데라의 하토르 여신 신전, 에스나의 크눔 신전,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 콤옴보의 호루스와 소벡 신전, 필레의 이시스 신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건립된 신전들은 모두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신왕국 시대부터 확립되기 시작한 신전 건축양식이 후대에 이르러 확실하게 정착되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일부 학자는 이 시기의 신전을 독창성이 없는 전대 양식에 대한 맹목적인 모방의 산물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당시 건립되었던 신전의 내부구조는 조금씩 다 다르며 그 중에는 신왕국 시대와는 구별되는 독창적인 면모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다양성은 건축가들이 과거의 전통을 단순히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신전건립의 목적에 따라 전통을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켜 나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아울러 신전의 건립 주체였던 신관들은 신전을 외세의 지배 하에 놓인 이집트에서 이집트 고유의 문화를 보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습니다. 신전 벽에 새겨진 내용은 당시 신전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여러 문서에서 발췌한 것이 분명한 각종 제례의 절차, 의식에 사용되는 주문, 신들에게 바쳐진 공물과 제물의 내용, 축제행렬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 신화를 모티브로 한 전승 등이었습니다.
신관들은 언제 소실될지 모르는 기록을 벽에 새겨 넣음으로써 수 천년 간 전승되어 온 지식이 영원히 기록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의 신전은 단순히 신을 모시는 공간으로서 기능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로서, 도서관으로서, 병원으로서 이집트의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전승시키는 문화의 저장고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지배기의 대표적인 신전, 에드푸 신전Ⓒ유성환
기원전 2900년경인 초기 왕조시대부터 에드푸에서 숭배되었던 호루스에게 봉헌된 에드푸 신전은 현재 이집트에 남아 있는 모든 신전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신전이며 신전에 새겨진 다양한 텍스트와 이미지는 신전에서 치러진 각종 의식과 신관들의 생활을 복원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신전지붕이 남아있어 지성소로 갈수록 내부가 어두워지는 이집트 신전의 독특한 내부 구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신전벽면에 빼곡히 새겨진 상세한 기록을 통해 신전이 기원전 237년 착공되었으나 그로부터 180년 후인 기원전 57년에야 완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에드푸에서 호루스 신과 세트 신 사이의 성스러운 전투가 벌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의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가 그의 삼촌이자 왕위 찬탈자인 세트와 이집트의 왕위를 두고 건곤일척의 투쟁을 벌이게 되는데 에드푸에서는 이 전투가 ‘종교극’의 형태로 구성되어 매년 ‘승리의 축제’ 기간에 재현되었습니다. 에드푸 신전건물 외곽과 벽 사이에 조성된 통로 벽면에 새겨진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이 종교극에서 세트 신이 하마의 형태를 하고 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스완 –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그리고 필레 신전]
수도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900킬로미터, 룩소르에서 남쪽으로 215킬로미터 떨어진 이집트 최남단 도시 아스완은 국경도시인 동시에 중부 아프리카의 특산물이 집하되어 이집트로 공급되던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280킬로미터 떨어진 아부심벨은 피라미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적 명소입니다.
기원전 1274-1244년 동안 건설된 아부심벨 신전은 람세스 2세를 위한 대신전과 대왕비 네페르타리를 위한 소신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813년 스위스의 탐험가 장-루이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기 전까지 11세기 동안 모래에 파묻혀 있었으며 1817년 이탈리아의 탐험가 지오반니 벨초니가 입구의 모래를 제거하면서 그 경이로운 면모가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 아스완에 대규모 댐이 건설되면서 아부심벨을 비롯한 아스완 지역 신전들이 수몰 위기에 처했는데 이때 유네스코의 주도로 신전은 원래 위치보다 63미터 높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높이 30미터, 너비 35미터 규모의 대신전 정면에는 20미터에 달하는 람세스 2세의 좌상 4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 오른쪽에서 두 번째 좌상은 기원전 27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파손되었습니다. 대신전의 열주실에는 좌우로 각각 4개의 기둥 앞에 8미터 크기의 람세스 2세 입상이 세워져 있으며 벽면에는 기원전 1275년 발발한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의 전쟁 장면이 저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 람세스 2세는 두 필의 말이 끄는 2륜 전차를 타고 이집트 군의 선두에서 활을 쏘는 늠름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신전의 가장 안쪽에 만들어진 지성소에는 이집트의 국가신인 아문·태양신·프타가 신격화된 람세스 2세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아부심벨 소신전은 파라오의 대왕비로서 지상의 하토르 여신으로 여겨졌던 네페르타리를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소신전 정면의 좌우에는 람세스 2세의 입상 사이에 네페르타리의 입상이 세워져 있고 소신전의 열주실에는 네페르타리가 하토르와 이시스 여신에게 봉헌물을 바치는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지성소에는 하토르 여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서 대왕비는 여신관들이 신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연주했던 시스트럼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집트 남부 국경의 대표적인 신전, 아부심벨Ⓒ유성환
한편, 필레 섬에 건립된 신전은 이시스 여신에게 봉헌되었습니다. 배를 타고 필레 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축물은 후기 왕조시대 제30왕조의 파라오 넥타네보 1세가 세운 정자입니다. 이어 두 개의 V자 모양 정자를 지나게 됩니다. 섬 동쪽에 있는 로마 시대 트라야누스 황제의 정자가 있는데 이 시설은 신전 축제 때 이시스 여신의 신성한 배의 안치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누비아에서 귀환환 이시스 여신은 나일 강의 범람을 상징했습니다. 신화에 따르면, 이때 홍수로 풍요로워진 이집트로 귀환한 암사자 여신 이시스는 하토르 여신으로 변했습니다. 신전의 넓은 정전을 지나면 높이 18미터의 제1탑문이 나타납니다. 탑문 정면에는 여러 신들과 당시 지배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이 새겨져 있으며 여기서 왕은 혼돈의 힘을 제압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1탑문을 지나면 두 번째 정전 뒤에 제2탑문이 서 있는데 이와 같은 배치는 정전을 두 개의 거대한 탑문 사이에 있는 정원처럼 보이게 합니다.
한편 정전 서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모양을 한 주두로 장식된 기둥들이 떠받치는 마미시, 즉 탄생의 방이 서 있는데 이곳은 이시스가 미래의 파라오가 될 호루스를 낳은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지성소는 12개의 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영접을 받은 파라오가 마아트를 비롯한 여러 봉헌물을 바치는 장면과 대관식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필레 섬에서 이시스 여신과 함께 숭배되었던 신은 나일 강의 범람을 상징하는 하피였습니다. 하드리아누스 대문에 새겨진 한 부조에서 하피는 물을 붓는 행위를 통해 나일강의 범람을 일으키는데 이 장면에서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거대한 뱀 한 마리가 자신의 몸을 감아서 범람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하피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아스완의 보석, 필레 신전Ⓒ유성환
[사카라 –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고왕국 시대 제3왕조의 첫 번째 파라오 조세르가 즉위하면서 고왕국 시대의 행정 수도였던 멤피스 서쪽에 위치한 사카라에 그의 왕묘가 건설되기 시작했습니다. 왕묘의 건축을 담당한 인물은 총리대신이었던 임호텝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현인의 한 사람으로 존경받았으며 후기왕조 시대와 그리스-로마 지배기에 이르러서는 신격화되어 의술과 치유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임호텝이 왕묘를 짓기로 계획한 사카라는 이들 귀족의 집단 묘역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간 고원지대였습니다. 건설의 초기 단계에서 그는 거대한 마스타바를 세울 계획이었습니다만 혁신적 아이디어로 계획을 변경합니다. 그는 내구성이 떨어지는 진흙벽돌 대신 구조물 전체를 석재로 조성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석재는 초기왕조 시대의 왕묘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왕묘 전체가 진흙벽돌보다 조금 큰 석재 블록으로 만들어진 경우는 조세르의 왕묘가 처음이었습니다.
석재 마스타바가 완성된 이후 임호텝은 두 차례에 걸쳐 마스타바의 규모를 더 넓혔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두 번째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마스타바 위에 마스타바와 유사한 구조물을 차례로 쌓아 올리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4층 규모의 계단식 피라미드가 조성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 피라미드라는 건축물이 최초로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4층이 완성된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증축됨으로써 왕묘는 마침내 지금과 같은 6층 피라미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모두 여섯 차례의 증축과 개축을 거치면서 계단식 피라미드는 가로121미터×세로109미터×높이6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로 탈바꿈했습니다. 계단식 피라미드 단지 전반에 걸쳐 석재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장례용 건물의 특성상 단지를 구성하는 건물의 외관을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 이외에도 또 다른 사실을 시사합니다.
초기왕조 시대부터 왕묘 건설에 사용되던 석재의 양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그런데 건설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가공된 석재를 확보하는 데는 채석·운반·연마 등 다양하고 복잡한 가공 과정뿐만 아니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노동력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왕묘 전체가 석재로 만들어지거나 마감되었다는 사실은 왕이 그만큼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고 투입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다시 말해, 전국의 채석장에 관리를 파견하고, 채석과 운반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고 동원할 수 있는 체계적인 행정 체제가 수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규모 토목 사업을 통해 실증된 왕의 절대 권력은 더욱 강화되어 대규모 피라미드가 차례로 건설된 제4왕조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유성환
2025년 1월, 나일강의 풍광을 만끽하면서 가는 곳마다 유성환 교수의 종횡무진, 생생하고 재미있는 현장 강의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참고로 이집트의 11월-2월은 12-27℃의 온화한 기온으로 이집트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으로 이집트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