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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시도로 주교 학자
배문한 도미니꼬(수원 가톨릭 대학장 · 신부)
대주교요 대학자요 저술가이며 스페인 문화의 보호 육성자, 그리고 교회 학자인 성 이시도로는 스페인 칼타지나에서 560년경 태어났다. 아버지 세베리아누스는 칼타지나의 총독이었고 어머니 테오도라는 왕의 후예였다.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3형제가 다 주교요 네 명의 형제 자매가 모두 다 성인 성녀가 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보기 드물게 빛나는 가정이었다.맏형 레안도로는 그의 선임 자로서 세빌랴의 주교였고 둘째 형 풀첸시오는 칼타지나의 주교였으며 동생 플로렌티나는 수녀가 되어 40개의 수도원과 1천여 명의 수도자를 다스렸다.
형이 세운 학교에서 형 레안도로 주교에 의해 엄격한 교육을 받은 이시도로는 공부를 잘 못해 심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야단을 맞고 학교에서 도망하던 어느 날, 얼마 못 가 피곤을 느낀 그는 우물가에서 쉬게 되었는데 구멍이 패인 바위를 보게 되었다. 바위에 구멍난 원인을 찾다가 물을 길으러 온 여인에게 물어보니, “오랜 세월 물방울이 떨어져 그와 같이 패였지요”라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이 말 속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재주 없는 자기로서도 꾸준히 노력한다면 반드시 학문으로 성공할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뒤로 용기를 내어 열심히 공부한 결과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는 물론 모든 학문을 익혀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란 말을 들을 만큼 박학다식한 사람이 되었다. 둔재로 보이던 소년이 준재가 되어 당대의 가장 뛰어난 학자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599년 3월 13일 형 레안도로를 계승하여 세빌랴의 주교가 되었고 37년간을 다스렸다. 당시 스페인 은 고트 족이 침입하여 전국을 정복하고 학문과 문화를 퇴폐케 하였으며, 그들 사이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주의의 이단이 번성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아리우스 주의의 이단을 뿌리 뽑고 단성론자들을 쳐부수는 한편 학문과 문화 육성에 힘썼다.
바쁜 교구 사목 가운데서도 그의 저술은 끊이지 않았다. 천문, 지리, 역사, 성서, 교리, 전례 등 여러 방면에 걸쳐 글을 쓰는 한편, 유명한 인물들의 전기도 썼다.가장 유명한 저서는 백과사전격인 20권의 “에티모로지애”이다. 이는 134명의 저자들의 글을 인용, 당대의 모든 분야의 학문과 지식을 집대성한 것으로 16세기까지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이 때문에 그를 중세의 스승이라고 불렀다.
그는 스페언 교회의 규율을 확립하고 수차에 걸쳐 전국 차원의 공의회를 주재하였으며, 특히 633년 제4차 톨레도 공의회에서의 그의 공로는 매우 크다. 여기서 그는 성가와 성무일도, 미사에 있어서 전례의 통일성을 기했으며 모든 교구에서 신학교를 세워 사제 양성에 전력할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 한편 공부하지 않는 자는 서품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많은 학교를 세워 의학, 법률, 예술 및
601년 로마에 갔다가 귀로 중 나르본느에 들렀던 적이 있었다. 거기서 가뭄으로 곤궁에 처한 주민들이 비를 내리도록 기도해 줄 것을 그에게 간청하였다. 그는 그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 즉시 비를 내리게 하여 말라죽던 곡식들이 생기를 찾았다고 한다.
임종의 날을 알고 있던 그는 그날이 되자 자기의 재산을 전부 빈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성당에 가 참회의 옷을 업고 머리에 재를 바르고 열심히 기도한 후 병자성사를 받고 고요히 눈을 감으니 그때가 636년 4월 4일이었다.
그가 죽은 뒤 14년 후에 열린 제8차 톨레도 공의회는 그를 “뛰어난 박사, 가톨릭 교회의 영광, 최근의 가장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성교회의 학자라는 이름에 합당한 인물이었지만 그러나 보다 더 성인이라 부르기에 합당하였다. 그는 박학하였지만 겸손하고 애덕에 출중하여 가난한 자에게 애긍시사하길 좋아하고 죄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인자하고 너그러웠다. 그는 그의 명제집에서, 신앙 생활에 있어 기도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알고 싶은 것을 알지 1598년 시성되고 1722년 교회박사로 선포되었으며 축일은 4월 4일. 둔재가 준재가 되어 세기를 풍미한 것은 기도와 끝없는 노력 때문이었다. 우리도 주어진 능력을 한탄만 하질 말고 성인을 본받아 기구하고 분투 노력한다면, 둔재가 준재가 될 수 있고 죄인이 의인 이 될 수 있으리라.
[경향잡지, 198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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