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목소리
이소연
에밀리 디킨슨이 사랑이 죽은 이도 다시 죽일 수 있다고 말할 때*
나는 믿지 않았다
아무것도 믿지 않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울대뼈 하나만 골라 바오바브나무 아래 묻는다는 이야기를
믿고 싶다 그러므로
한 그루의 불신에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스며있다
작은 새가 와서
바오바브나무에게 목소리를 달라고
석달하고 열흘동안 빙빙 돌면
작은 새의 목에선 흙냄새 난다지
그 새, 너무 작아 겁이 없다지
한때 사람이었던 때를 기억하는지
옛집에 들러 씨앗 하나를 떨어트린다
바오바브나무가 자라고
눈코입 달린 새가 된 한 사람
눈에 잘 띄기 위해
목청이 큰 바람새가 되었다는데
왜 아무도 듣지 못하는지
오래도록 불타는 땅에서만 그 나무 자라는지
어쩌다 해는 새까만지
나무에서 나온 말이 우물인지
우기는 벽을 뚫고 오는지
색은 얼룩에서 잠드는지
깨어나보니 반사광에 눈이 시린 오후 다섯시 반이었다
내 얼굴인지 새의 얼굴인지
어떤 짐승의 입에 물려 있었다
*에밀리 디킨슨 <Love can do all but raise the dead>로 부터 온 김복희 시 <사랑하는 신>으로부터.
약력
이소연
2014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나는 천천히 죽어갈 소녀가 필요하다』,『거의 모든 기쁨』,『콜리플라워』가 산문집으로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