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목) 이사야 54:11-17 찬송 592장
11.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12.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더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14.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15. 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너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
16. 보라 숯불을 불어서 자기가 쓸 만한 연장을 제조하는 장인도 내가 창조하였고 파괴하며
진멸하는 자도 내가 창조하였은즉
17.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개역 개정)
- 새 예루살렘의 영광과 선민 보호 약속 -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과 하나님과의 영원한 화평에 대한
약속을 언급한 어제 말씀(1-10절)에 이어
오늘 말씀은 구원받은 선민의 새 삶의 중심이 될 영광스런 예루살렘 성의 재건과
선민의 보호에 대한 약속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편 11, 12절에 언급된 각종 보석으로 꾸며진 예루살렘 성의 건축은
계21:9-27의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서
B.C.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하여 파괴된
역사상의 예루살렘 성 재건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역사를 넘어 세상 종말 이후에 도래하게 될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3-17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택한 백성들을 대적에게서 보호하시고
승리를 얻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포로 생활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새 예루살렘 곧 천국에 대한 소망을(히11:16; 요일5:14),
나아가 비록 현세상에서는 자신의 연약함과
대적 사단의 유혹과 핍박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을 겪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끝날까지 주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궁극적인 승리를 얻게 된다는 확신을 심어준다.(벧전1:5,7; 5:7-11)
14절)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새 예루살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가장 큰 축복을 소개한다.
그것은 곧 두려움과 공포가 그들을 가까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보면 ‘너는 공의로 설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두려움과 공포가 새 예루살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53:11에서 하나님은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에서 ‘너는 공의로 설 것’이라는 말씀은
바로 여호와의 종의 이러한 사역을 염두에 두신 말씀이다.
그리고 공의로 선다는 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감안할 때 14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그들을 엄습하지 못할 것임을 말씀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두려움과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두려움과 공포의 밑바탕에는 사망이 있다.
즉 사망에 대한 공포가 모든 두려움과 공포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망의 공포는 어떻게 해서 인간에게 존재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인간이 처음 지음을 받을 때에는 그 안에 두려움이나 공포가 없었다.
인간은 처음에는 낙원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고 평강을 누리며 살았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순간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고
결국 자신들을 사망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후 아담의 자손으로 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항상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야 하였다.
특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임하게 될 사망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인생들로 하여금 한 순간도 참된 평안을 누리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사망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종 그리스도께서
새 예루살렘에 속한 자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함으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복원되면 더 이상 사망의 공포에 떨 이유가 없다.
하나님과 관계가 복원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망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또 세상 가운데서 왕노릇하는 죄의 권세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이상 정죄하지 못한다.
그러니 두려워 떨 이유가 없다.
결국 새 예루살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평강을 누리게 된다.
인류 최대의 대적인 사탄이 사용하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죄와 사망이다.
사탄은 누구나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죄라는 덫을
사람들이 가는 곳곳마다 매설하고 거기 걸려 넘어진 자를 사망의 구덩이에 내던진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권세로 자유함을 얻은 이들은
더 이상 죄의 굴레에 매여 있지 않으므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어찌하지 못한다.
이와 관련해 바울 사도는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5-56)라고 선언하셨다.
즉 이제 죄와 사망의 권세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역사로 인해 무력화되었고
결코 성도들을 어거할 수 없게 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적 사탄은 이제 무장 해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믿고
이제 더 이상 죄와 사망 권세에 허무하게 짓눌려 있지 말고
그 모든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의의 싸움을 싸우며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당당한 삶, 생명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최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