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일전쟁이 다시 재현될 위험이 상당히 높다.
그리고 1931년 만주사변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14년 1차 대전을 앞두고 영국과 독일은 물고 물리는 군비경쟁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을 조성했다.
죽은 아베는
“지금의 중-일 갈등이 1차 대전 직전 영국-독일 관계와 유사하다”
고 말했다.
1차 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 관계를 돌이킬 수 없도록 악화시킨 것은 1898년 제정된 독일의 해군법이었다.
20년 안에 38척의 전함을 포함한 대함대 건설을 명문화한 독일은 1904년까지 14척의 전함을 건조했다.
이에 영국은 1906년 증기터빈 방식의 추진기관과 다수의 단일구경 거포를 탑재한 혁신적 개념의 새 전함 드레드노트를 진수하면서 군비경쟁은 한층 격화했다.
1900년께부터 유럽 각국에는 전쟁을 미화하는 맹목적 애국주의가 횡행했다.
매체들은 앞다퉈 전쟁을 부추겼고 지도자들은 전쟁을 통해 국가가 더욱 강해진다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혔다.
중국에서는 관영 언론들이 일본의 도발에 전쟁 불사를 외치는 등 반일정서가 고조돼 있고, 일본은 신사 참배 등으로 연일 기름을 붓는다. 지금 형국은 1차 대전 때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아베의 발언은 중국을 1차 대전 당시 독일에 빗댄 것이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
제국주의 대열에 뒤늦게 뛰어들어 전쟁으로 치달았던 독일의 길을 중국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베는 남 탓만 할 뿐 일본이 주변 국가들을 자극함으로써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는 중·일 양국이 어떤 형태로든 무력충돌 하지 않겠느냐는 우려 속에서도 지금의 국제 정치·경제 상황에서 전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이런 낙관적 분석에 비판적이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
“전쟁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