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과 제주4.3사건
빨치산이란 무었인가? 한마디로 게릴라나 유격대를 일컫는다. 한국사 최초의 빨치산 출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여명과 함께왔다.
유엔이 가능한 지역에서 만이라도 총선을 실시하여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결의 하자 남로당은1948년2월7일, 이를 저지하기위해 전국적으로 5.10총선반대투쟁을 시작했다. 학원맹휴 철도 통신 산업시설 파업,방화,파괴 와 같은 엄청난 폭력을 서슴치 않았다. 이다.이사건이 유명한2.7사건 이와중에 진압경찰을 피해 도망간 폭도들은 입산의 길을 택했다. 이때 빨치산이 태동 되었다.
이때 제주도의 남노당 사람들은 김달삼을 우두머리로 한 군사지휘부를 한라산에 설치하고 무장 투쟁을 결의 한다. 이들은 총 칼등의 무기로 무장하고 1948년 4월 3일 새벽2시를기해12개 파출소를 습격하고 유혈의 참화속으로 몰고 갔다.
그 첫번째 회생자는 경찰과 그가족이었다. 마을에서는인민재판을 통해 우익인사를 반동이라는이름으로 살해하고 가옥과 학교와 관공서를 불 태웠다.
5.10선거 당일에는 투표소를 불 태우고 투표함을 파괴하고 대부분 교장 출신인 선거관리위원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다, 양민들의 피해는 공비들에의해서 뿐만아니라 토벌대에의한 진압과정에서도 발생하였다, 빨치산과 토벌대간의 전투는 49년 제주최후의 빨치산 이덕구가 사살되면서 겨우끝났다. 이것이 “소위4.3사건”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것은 “제주 4.3사건 특별법”이다.
그러나 이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무고한희생자에 대한 위로 사업을 강조 하다보니까 사건의진상이 가려지고 말았다는점이 문제가 되엇다. 이법에 따라작성한 보고서는(박원순작성)에서 4.3사건은빨치산의 무장봉기가 아니라 불의에 맞선 제주도민의 민주항쟁으로 왜곡한것이다. 이것이 진압 군인이나 경찰을 가해자로 만들어 버렷다.
4.3사건은 분명히 제주 인민유격대(빨치산)가 남노당 중앙부의지령에따라 5.10선거를 무산시킴으로서 대한민국건국과 제헌국회의개헌을 방해하기위해 일으킨 반란 폭동인것이다.
많은제주도민이 회생되것은 진압군(토벌대)때문이아니고 인민유격대(발치산)때문이라는 점이 명확이 강조 되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왜곡되어있는 4.3사건의 진상은 정확하게 밝혀 져야한다.
(이글은장백일,한용원,김광식,한정석의저술과논문 및신문보도를인용참고하였음)
2015년5월11일월요일 경남일보...경일포럼(전고려대 초빙교수김중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