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목요일
제1독서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3,1-5
1 아,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은 기도의 자세를 일러 주십니다.
"줄곧 졸라 대면"(루카 11,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밤중에 두 벗 사이에 생긴 일을 비유로 드시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일깨워 주십니다. 아무리 벗이어도 모든 요청을 다 수락하지는 않겠지만, "줄곧 졸라 대면" 결국은 들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창밖에서 빵을 부탁하는 벗이 꼭 성가시고 귀찮아서 그 청을 들어 주었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그 입장에 머물러 보면 다른 개연성도 없지 않습니다. 누군가 한 차례 거절된 일에 대해서 계속 간절히 매달린다면, 당장은 인간적으로 성가시고 짜증스러울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저 사람 정말 절박하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니까요.
줄곧 졸라 대는 모습은 절박함의 표현입니다. 다른 길이 없으니까요. 차선책도 대안도 부재한 생황에서 기대할 곳은 오직 상대방의 결정 번복뿐입니다. 물러설 수 없는 이는 될 때까지, 들어 허락될 때까지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10)
예수님께서 기도의 원리를 아주 단순하고 명백하게 설명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미 체험으로 알고 계시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은 어쩌면, 아직 기도한 바를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때까지 기도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이 말씀은 선택적 가설처럼 들릴 테지요.
반대로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진 체험을 간직한 이들은 그 기도를 들어 주실 때까지 인내와 끈기로 충실히 매달렸던 이들이겠지요. 그들에게 이 말씀은 흔들릴 수 없는 진리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루카 11,13)
'악하고 이기적인 인간도 제 자녀에게는 필요한 좋은 것을 주려 하는데 아버지 하느님은 어떠시겠는가?' 하고 예수님께서 반문하십니다. 자녀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투영이고 닮음이니 그 원형이신 분이 어떠하실지는 유추가 가능하지요.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께서 미리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갈망이 제 길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이루시려는 것을 우리가 갈망하도록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청한 바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루어 주시리라 믿기에, 이루어 주실 때까지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니까요. 거기에 성령까지! 주님은 우리가 바라던 것에 더하여 성령까지 주심으로써 당신의 응답을 완성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기도한 이가 체험한 하느님의 응답을 감사하게 하시고 계속 기억하게 해주십니다. 기억은 우리 삶에 주님의 현존을 지속시키는 영적 장치입니다. 그리고 믿음도 더해 주시지요. 성령의 힘으로 이 믿음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릅니다.(로마 8,15 참조)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갈라티아인들에게 반어법적 질문을 연달아 던집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르는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갈라 3,2)
갈라티아인들에게서 자신들이 받은 그리스도의 은총을 어느새 잊어버리고 눈에 쉽게 보이는 율법 준수적 행위로 구원의 보증을 기대하는 퇴행이 보였나 봅니다. 이에 사도가 다급히 그들을 일깨웁니다.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에"(갈라 3,)
주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들 가운데서 기적을 이루신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을 보신 주님께서 기적도 성령도 주신 것이지요. 사도는 지금 그들이 신앙의 출발점을 기억하도록 질문으로 휘몰아치며 그들을 흔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기도를 통해 받은 것들은 겨자씨 한 알 만큼도 못 되는 보잘것 없고 유약한 믿음을 대견히, 어여삐 보신 주님의 자비 덕분입니다. 성령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받은 은총을 우리 영혼에 각인시키시어 기억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니, 기도의 응답들은 회상에 머물지 않고 우리 인생 여정에 함께 동행합니다.
진정 기도하는 이는 청하는 바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자신 안의 갈망이 곧 이루어 주시려는 주님의 의지임을 직관으로, 체험으로, 관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바는 그저 지치지 않고 주님께 그분의 의지를 일깨워 드리는 것뿐입니다. 진정 기도하는 이에게 다른 길은 없습니다. 퇴로는 이미 끊어버렸으니,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롯이 집중하고 전념하는 열렬한 사랑만이 오직 남은 외길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우리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깊이 바라보고, 이 마음을 주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오늘 되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주신 주님께서 성령과 함께 기도의 열매 또한 맺어주실 것입니다. 단, 그 "때"와 그 "방식"은 주님의 재량이고 몫이니 거기까지 넘보지 않도록 겸손히 삼가면서, 청하고 찾고 두드리며 열렬히 그분 창문 아래 머무릅시다. 벗님이 간절히, 절박히 청하는 바가 꼭 이루어지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