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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다. 즐거운 계절...
"본격적인 피서철이 시작되었습니다!"
TV, 라디오에서는 뉴스던 드라마던 쇼프로그램이던 가리지 않고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즐거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해변가에서, 들에서, 산에서, 하다못해 은행의 에어콘 앞에서...많은 사람들은 여름을 즐기는가 하면 더위를 피해 도망다니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든 대부분의 여름을 맞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공통점은 활력이라는 단어였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지금 여름, 그리고 그 분위기는 먼 세계의 것으로만 느껴질 뿐이었다.
수연은 보충 수업을 받기 위해 학교에 갔고 재준은 학원에 갔는지 놀러갔는지 알 수 없었다. 넓은 집에 주희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남편이 죽은 지 1주일이 좀 넘었다. 곧 연락을 주겠다던 담당 검사는 아직까지 연락이 없었고 소송 대리를 해주어야 할 승현은 여러 일들로 바쁜 건지 3일 전의 전화 이후로는 한번도 연락을 해주지 않았다. 남편이 동기가 의심되는 끔찍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뒤 주희는 완전히 세상에 혼자 내버려진 기분이었다.
사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평소에 상당히 활달하면서도 침착한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졸업 후 화목하다고는 볼 수 없는 대부호 집안의 셋째 며느리로 들어온 후 그녀의 성격은 조금씩 변해갔다.
'형수님! 아 진짜... 내 컴퓨터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여보슈? 주희씨요? 성준이 뭐하고 있소? 좀 바꿔봐요...이런 씨발 그새끼는 개업의가 뭔놈의 일을 8시까지 하는겨? 한남동에 별장 말이요. 당분간 거기서 산다고 전해주쇼.'
'참...없는 집에서 살다온 것들은 다 이래? 언니...너무 짜요...'
'대체 손주는 언제 볼 수 있는거냐? 사람구실을 해야 할거 아니야!'
재준, 철준, 수연, 그리고 시아버지 김수산, 돈 많은 가족은 대체 어떻게 살아온 사람들인지 언제나 지나칠 정도로 시니컬했고 주위 사람들을 거의 배려하지 않았다
.
남편이 나가 있는 동안 하루종일, 가끔은 일주일내 그들과 부딪치며 살아야 했던 주희는 슬프게도 그다지 마음이 모진 편이 아니었다. 무 하나를 썰 때조차 가족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가족들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애써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초라한 집안 사정 때문이기도 했다.
주희는 마치 먹이사슬의 가장 윗단계의 동물들처럼 행동하는 그들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온 3년간, 주희는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는, 그리고 생쥐처럼 눈치만 빠른 심약하면서도 비굴한 여자로 변하고 말았다.
한때 사랑했으나 성준에게 반해 차버린 승현이 집안의 삼촌뻘 되는 사람으로, 그것도 상당한 능력과 돈을 가진 변호사로 그녀의 주변에 나타나면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 속의 어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마음대로 말을 했다가는 어떤 말이 튀어나올 지 몰랐다. 그러면 그녀는 끝장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욕실에서 본, 가족 중 그녀에게 유일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던 남편의 처참한 시체는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그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뭔가를 요구하거나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목숨까지도, 그리고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도...
불러 있는 배를 위로 젖힌 채 쇼파에 머리를 잔뜩 기대고 그녀는 멍한 눈으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TV에서는 펩시맨이 달리고 있었다. 손을 앞으로 내뻗으며 입도 없는 얼굴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지르는 그것의 모습이 주희의 눈에는 상당히 끔찍하게 들어왔다. 꽉 움켜쥔 그녀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 주희에게 지금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일종의 우울중에 시달리고 있었다.
심약하고 비굴한, 그렇기 때문에 보호가 많이 필요한 임신 6개월째의 임산부는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단순히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남편의 죽음과 주변의 좋지 않은 분위기들로 신경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진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펩시맨!!!!'
....끼릭......
요란한 광고 음향 사이로 넓고 공허한 집안 어디에선가 이상한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남편이 죽은 뒤 한번도 빼먹지 않고 오후 3시면 언제나 이 소리는 집안 어디선가 들려온다.
...끼리리릭...끼기기기기기.....
무겁고 커다란 뭔가의 방구석을 긁는 소리는 성준과 주희가 함께 자던 방안에서 시작되곤 했다. 처음엔 꿈을 잘못 꾸었으려니 했다. 그렇지만 며칠째 계속되는 이 끔찍한 경험은 주희가 거의 돌아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한 환상이었다. 그것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 방안으로 가보면 무엇에도 긁힌 자국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디선가 본 듯한 누군가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의 특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희를 더욱 두렵게 했다.
주희는 힘없는 눈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길게 끌리는 날카로운 그것의 날이 천천히 안방 문을 지나 드러나고 있었다. 완전히 드러난 양손 가위에 이어 기분나쁠 정도로 메마른 손이 드러났다. 집안을 가득히 메우는 그것의 웃음소리가 주희의 귓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주희는 그것이 나타나고 있는 안방 문쪽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환상만이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그것이 들고 있는 커다란 양손 가위의 흔적이 방바닥에 길게 끌리고 있었다. 긁힐 대로 긁힌 바닥에서 일어나는 보푸라기가 먼지처럼 날린다. 주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낄낄낄낄....크크크크크..........
"안돼....제발....제발.....흑..."
흐느끼는 주희의 애원도 아랑곳없이 그것은 천천히 자신의 형체를 드러낸다. 선이 얇고 메마른 얼굴 상단에 붙어 있는 차가운, 그러면서도 무서울 정도로 탐욕스러운 눈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의 이마에 붙어 있는 선명한 사마귀가 주희의 눈속 깊은 곳까지 침투했다.
........펩시맨!!!........
TV광고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는 주희를 마주본 채 아무 관심없다는 듯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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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라란 따따따~
최검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최기영입니다."
"최검사님? 저 박성철입니다."
기억력, 특히 사람 이름 외우는 재능은 최악인 최검사는 박성철이라는 이름에 대해 한참동안 생각했다. 내가 최검사인 걸 아는 걸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일텐데.... 누구였더라...?
"네...무슨 일입니까?"
"혹시 얼마전에 괌 비행기 추락사고 내부 동영상 입수됐다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네...네...."
(괌 비행기 추락사고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 )
최검사는 혼자 생각하며 그때까지도 생각해내지 못한 박성철이라는 인물의 정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대체 이인간이 누구였지...
"꽤나 흥미로운 영상이 잡혔습니다. 지금 어디 계십니까?"
"네...지금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있습니다."
아직도 최검사는 박성철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따라서 최대한 자신보다 윗사람일 것을 대비해 기분나쁘지 않을 정도의 예의를 갖추어 공손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기억력 안좋은 사람의 일종의 에티켓이었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영상이라는 말에 최검사는 밥먹고 있다는 말에 덧붙여 전화 속의 인물에 질문을 던졌다.
"어떤 흥미로운 영상 말씀이십니까?"
"최검사님 오늘따라 말투가 이상하시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아닙니다. "
(젠장...윗사람은 아니구나...)
속으로 욕을 하며 최검사는 다시 말했다.
"어떤...어떤 영상입니까? 밥먹는대로 가보겠습니다."
"예전에 최검사님 사무실에서 이야기하던 중 팩스로 날아온 것 있지 않습니까? 그거와 관련된 겁니다. 천천히 식사하시고 검사님 사무실로 오십쇼."
"팩스로 날아온 거요?"
(..팩스를 써야 말이지...)
"그 사진 말입니다. 김성준네 집 뒷담넘는 이상한 괴물 사진이요. 그거랑 좀 관련이 있습니다. 어쨌든 끊겠습니다."
...딸깍....
(김성준네 집 뒷담넘는 이상한 괴물 사진...)
그제서야 최검사는 전화 속의 인물이 김성준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박성철 형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한테 넘겨진 사건의 담당 형사 이름까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니...최검사는 혀를 찼다. 그러면서도 상식적인 예의인 관등성명조차 밝히지 않은 박성철의 무례함에 조금 화가 났다.
'아무리 내가 나이가 어려도 말이지...'
박성철의 전화는 끊겨 있었다. 최검사는 반 정도 남은 식판의 밥을 바라보았다. 웬지 밥을 더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팩스로 날아온 그것은 며칠 전에 본 사진이었다. 커다란 양손가위를 한손으로 가볍게 든 채 날아오르듯 뒷담을 빠져나가는 무언가의 뒷모습은 심히 기분나빴다. 그리고 뒷모습만이었음에도 어딘가 모를 차가움과 끔찍함이 느껴졌다. 상당히 혐오스러운 외양의 그것이 사람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다는 것을 조금만 상상해본다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김성준의 시체의 모습까지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자 최검사는 벌써 먹은 밥까지 토해낼 듯한 역겨움을 느꼈다. 최검사는 식판을 집어 퇴식구로 들고갔다. 자신의 식판을 받는 도우미의 얼굴을 무심코 바라본 최검사는 흠칫 놀랐다.
"허..헛..."
"?"
"...."
"제...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네...네...."
"네?"
흰 위생복을 입은 남자 도우미는 급히 거울을 보았다. 어이없게도 그의 이마에 커다란 짜장 조각이 붙어 있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는 정신없이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묻은 오물을 닦아냈다.
"죄...죄송합니다."
"아..아닙니다."
최검사는 대답하는둥 마는둥 하고 식판을 버린 뒤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짜장이 묻어도 어떻게 이마에 묻어 있을 수 있냐...'
괜히 구내식당 쪽을 바라보며 최검사는 속으로 짜증을 냈다. 그런 최검사의 머릿속으로 3년전의 끔찍했던 사건의 범인이 떠올랐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최검사에게도 자신이 검사복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맡게 된 그 끔찍한 사건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사건의 많은 부분이 상당히 꼬이고 꼬여 있었다. 이마에 커다란 사마귀를 가지고 있었던 늙은이...최검사는 그의 차갑고도 잔인한 눈동자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순간 뱃속이 답답해지며 뭔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우욱!"
그는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끝내 최검사는 어렵게 시간을 내서 먹은 점심을 모두 토해버리고 말았다.
박형사는 최 검사의 사무실 문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캠코더의 디지털 영상을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가 사무실 책상에 놓여 있었다. 최검사는 사무실로 들어가 비디오 테이프를 집어들었다. 흰색 라벨이 붙은 제목 없는 비디오 테이프가 묘한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겁니까?"
"네."
"그런데 어떻게 박형사님이 이걸..."
최검사는 내용이 궁금했지만 이게 자신의 사무실에 놓여 있게 된 경위가 우선 알고 싶었다.
"아시겠지만 저는 괌 비행기 추락 사고 관련 수사에서 추락원인을 규명하는 수사팀에 속해 있었습니다. 얼마전 추락원인이 알려지면서 수사팀은 해산되었구요. 그리고 김성준 사망 사건을 받아서 관련 수사에 나서고 있던 겁니다."
무슨 말일까...박형사의 이야기에서 최검사는 뭔가 느낄 수 있었다. 두 사건을 맡고 있던 형사의 이야기, 최검사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이 비디오 테이프를 이곳에 가져온 이유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영상은 대한항공 소속 보잉 777기 괌 행 801편 비지니스 클래스석 내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캠코더의 주인은 기내에 탑승하고 있던 문화방송 소속 다큐멘터리 기자로 추정됩니다. 물론 그는 사망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최검사는 이 비디오와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과의 연관성이 궁금했다.
"자세한 건 비디오를 보시죠..."
박형사가 함께 가져온 비디오 TV를 설치한 뒤 테이프를 재생시켰다. 최검사는 비디오를 보기 전에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일단 화면에 눈을 고정시켰다.
"화면은 비행기가 불시착을 시작할 무렵부터 추락할 때까지의 영상입니다. 그 전에도 촬영되어 있지만 저희가 맡고 있는 사건과 관련된 영상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일부러 편집했습니다."
박형사의 말이 귓가에 들려왔다. 최검사는 침을 삼켰다. 심하게 흔들리는, 화질과 음질 모두 최악인 영상이 화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왜이렇게 상태가 안좋죠?"
"캠코더가 발견될 당시에 불에 반정도 타 있었습니다. 좀 훼손되긴 했지만 녹화된 영상이 남아 있는 것만도 기적이었습니다. 워낙에 흔들리던 비행기 안에서 촬영된 거라 많이 흔들릴 겁니다.
박형사가 대답했다. 잠시 제자리를 못찾고 버벅대던 비디오는 곧 화면 조정에 성공하고 어떤 영상을 내보낸다. 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알 수 없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왔다.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눈살을 찌푸리던 최검사는 곧 그것이 기내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아아악.....
....끄아아아아.....
.....살려줘.......
상태 안좋은 영상이었지만 추락을 앞둔 비행기 내의 사람들의 처절한 절규와 비명 소리가 최검사의 귓가에 시끄럽게 울려왔다.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최검사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어쨌든 시끄러운 잡음과 추락하는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비디오 테이프의 음향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좋아하지 않는 최검사는 조금씩 기분이 날카로워져 갔다.
한편 비디오 테이프의 영상 역시 지직댈 뿐 아니라 조명이 모두 꺼졌는지 어두컴컴하고 희미한 환기구의 조명만이 기내를 비출 뿐이었다. 잘 식별되지 않는 화면 사이로 허우적대며 정신없이 굴러다니는, 그러면서도 목구멍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처참함이었다.
한참동안 흔들리고 지직대며 애처롭게 이어지던 영상은 5분정도 비슷한 장면을 내보내다 심하게 흔들리며 종료되었다. 아마 비행기가 추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셨습니까?"
박형사가 최검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편하게 보기는 힘든 영상이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말입니까?"
추락 직전의 비행기의 정신없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해야 한단 말인가...오히려 자신이 박형사에게 질문하고 싶었다. 그런 최검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박형사가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인지 그의 왼손에 뭔가를 인쇄한 A4용지가 들려 있었다.
"화면에 나타난 사람...아니 괴물이라고 보는게 낫겠지요. 그것과 이 사진의 연관성 말입니다. 아무래도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팩스로 확인했던 그 사진은 이제는 CCTV의 캡쳐 파일을 칼라 인쇄하여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양손 가위를 한 손에 가볍게 든 채 김성준의 뒷담을 넘고 있는 산발머리의 바싹 메마른 조그만 사람의 형체...최검사는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꽤나 집중해서 보았는데 자신은 비디오에서 아무 모습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화면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처절해서였을까? 그렇다면...저것이 이 비디오테이프 화면에 나타나 있단 말인가?
"그게...전 못봤습니다만..."
최검사가 얼버무리듯 말하자 박형사는 비디오 테이프를 되감았다. 당연하다는 듯 그는 최검사를 돌아보지도 않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다시 비디오를 틀었다.
"저도 처음엔 못봤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두번째 볼 때는 조금씩 드러나더군요. 사람들의 비명소리에서부터 뭔가 이상함이 느껴집니다. "
박형사는 어떤 부분을 몇 번이고 되돌렸다. 시끄러운 잡음 속에서도 재생이 반복되면서 최검사는 조금씩 사람들의 비명소리와 말소리들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점차 영상의 음향에 익숙해지면서 박형사의 말대로 최검사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아악.....
....끄아아아아.....
.....살려줘.......
.......왜...왜이래.....
...내가....내가.........
뭘...잘못했다고...이러는거야......
박형사는 잠시 비디오 테이프를 일시정지시켰다. 어느순간 상당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한 최검사가 그에게 말했다.
"추락을 앞둔 비행기 내의 사람들의 말 치고는...상당히...복잡한 대화들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여길 보시면...그 복잡함의 이유를 알 수 있죠..."
박형사는 영상의 어느 부분을 가리켰다. 미세한 빛이 들어오고 있는 환기구 쪽이었다. 최검사는 그곳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희미한 불빛...그리고 비록 알아볼 수 없게 변질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누군가의 바싹 마른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첫댓글 와우~~대단히 소름끼쳐요 ㅡㅡ^
진짜 잼씀니다. 흥미진진... 근데 사마귀 괴물(?)은 죽은사람인가여? ^^
넘넘 재밌어요.사마귀 괴물 상상이 되는군요.사마귀마냥 낫(?)을 구부리고 있다가 공격을 할때 펴는 그런거...그냥 사마귀도 끔찍한데 사람만한 사마귀라니...
검찰 실무에 대한 리얼리티가 좀 떨어집니다.. 1. 검찰에 팩스 그렇게 많이 안옵니다.. 하루에 한 서너개? 그나마 협조요청 했을 때 오기 때문에.. 검사가 내용을 모른다는건... 2. 형사가 검사한테 나 박성철입니다 라고 전화하는 경우도 리얼리티가... 자기 소속과 관명을 밝히는 게 상식임..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 여러 면에서 아직 제가 그쪽 리얼리티 형성에는 부족한 점이 많네요. 좀더 신경쓰겠습니다. 그리고...앞으로 계속 이쪽 내용이 나오게 될 지도 모르니 혹시라도 지적할 만한 건 꼭 지적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