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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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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공치왓 평원. 40여명의 트레커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제주 옛길을 탐방하는 모임으로 산악인오희준기념사업회 소속 멤버들이다. “옛길을 찾아 걷는다”가 이들의 모토다. 이날은 애월의 ‘오름 삼대장’ 한대오름(921m)과 노로오름(1070m, 노루오름), 바리메(763m)을 한꺼번에 가는 날이었다.
제주 오름 트레킹을 이끄는 오문필 대장. 제주 애월읍 한대오름 오르기 전, 오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주 기자
매달 열리는 걷기 모임은 2005년부터 한라산등산학교 교장을 지낸 오문필(68)씨가 이끌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그를 ‘오 대장’이라 부른다. 동행한 이들은 한결같이 “오 대장만큼 제주의 산을 잘 아는 이는 드물다”고 했다. 한라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71년에 처음 백록담(1947m) 정상에 올랐다. 생업은 감귤 농사. 예전 탐라역사문화연구소에서 일본 전적지 탐사를 할 때 현장을 지휘했으며, 한라산둘레길을 개척하는 데도 앞장섰다. 또 청소년들과 함께 둘레길 걷기 등 ‘사회적 걷기’를 실천 중이다.
산악인 오희준은 2007년 고(故) 박영석(2011년 안나푸르나에서 작고) 대장과 함께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던 중 눈사태로 유명을 달리했다. 사고 전까지 히말라야 8000m 10개 봉우리 등정과 남극점·북극점을 탐험한 세계적인 산악인이었다. 내달 16일이 그가 떠난 지 17년 되는 날이다.
“이 일대 넓은 밭을 공치왓이라고 했어요. 공치는 제주 말로 곰취라는 뜻이고, 왓은 밭입니다. 그만큼 곰취가 많이 나던 곳인데, 물이 모이는 분지라서 습한 곳이죠. 여기가 약 7만평(약 23만㎥) 정도 되니까 마라도만큼 넓은 면적입니다. 예전 제주 서쪽 애월·한림 사람들이 이 평원을 지나 한라산 오르는 길목이었지요. 지금처럼 등산로가 없을 때 새별오름과 화전마을 지나, 그리고 여기서 한대오름·노루오름 중산간을 거쳐 백록담으로 올랐어요. 아쉽게도 지금은 골프장이 생겨 옛길은 없어졌지만. 저 어릴 적 벌초하러 다닐 때도 모슬포에서 이쪽으로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 한라산을 오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짙은 산안개를 뚫고 정상에 오른 순간 갑자기 구름이 걷히더니 백록담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라산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된 날이다. 그리고 산악부 활동을 하던 고등학교 시절엔 윗세오름에서 야영하며, 산악 활동에 빠졌다. 2005년부턴 제주산악연맹 산하 한라산등산학교 교장을 맡아 후배를 양성했다. 산악인 오희준과는 제주대 산악부 선후배 사이다.
하루 3개의 오름 트레킹에 나선 오희준기념사업회 회원들. 김영주 기자
길인 듯 아닌 듯, 옛길을 따라 걷는 오름 트레킹은 호젓하고 한적했다. 옛길은 식생도 다양했다. 숲이 우거진 가운데 길옆으로 햇고사리가 한창이고, 두릅 순도 제법 보였다. 한대오름 가는 길은 곶자왈 지대였다. 수풀이 우거져 또렷하진 않았지만, 바닥에 검은 현무암이 보였다. 오 대장은 “해발고도와 식생만 다를 뿐 지형은 산 아래 곶자왈과 같다. 밟고 있는 돌 아래로 물이 흐른다”고 했다. 제주 말로 곶은 숲, 자왈은 덤불이라는 뜻이다.
사월의 곶자왈 숲은 상산(常山) 나무가 뿜어내는 향으로 가득했다. 상산은 더덕 향기처럼 강렬한 향을 내뿜는 키 작은 식물이다. 이파리를 한두잎 따서 손바닥에 비벼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아찔할 정도다. 이날은 안개 자욱한 날씨 탓인지 향이 더 진했다.
더덕 향을 내뿜는 상산 나무. 날이 흐려서인지 더 강렬한 향기가 났다. 김영주 기자
옛날 제주 사람들은 상산을 긴요하게 썼다. 특히 뒷간 주변과 장례를 치를 때 애용했다. 뒷간에 심으면 재래식 화장실 냄새를 덜어줄 뿐만 아니라 구더기가 덜 생겼다. 강한 향 때문에 초파리를 쫓는 효과도 있다. 또 집에서 초상을 치르던 시절엔 방향제로 맞춤이었다. 늦은 봄이나 여름에 초상을 치를 때 시신이 부패하는 경우가 많은데, 관 밑이나 위에 상산을 깔면 냄새를 중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내 상산 향에 취해 걸었다. 걷다 보면 팔과 다리에 상산 나뭇가지가 쉼없이 스치며, 향을 내뿜었다.
한대오름 분화구 전 얕은 오르막에서 오 대장이 걸음을 멈췄다. 예전 표고버섯 밭이 있던 자리라고 했다. 해발 고도 600~800m 지점이다.
“제주는 땅이 척박한 탓에 농사로 먹고살기 힘드니까, 한라산 중산간에서 생업이 많이 이뤄졌어요. 소를 방목하고, 표고버섯 농사를 하고, 숯 굽는 일이었지요. 이게 다 한 데서 이뤄졌어요. 왜냐면 내내 표고만 할 수 없고, 숯만 구울 수도 없으니까요. 사람들이 중산간에 품 팔러 오는 동안에 이 일 저 일 번갈아가며 하는 거지요. 표고 농사를 하는 와중에 짬이 나면 숯을 굽고, 그걸 소나 사람이 짊어지고 산 아래로 팔러 나가는 거죠. 그래서 예전엔 한라산엔 나무가 많지 않았어요. 제주에서 산림 자원이 가장 많이 훼손된 게 해방 전 1944년부터 해방 전까지 1년 동안입니다. 일본 관동군의 여러 사단이 필리핀 쪽에서 오는 미군을 막는다고 대거 제주 중산간에 들어와 있었잖아요. 그해 겨울에, 일본군이 기름이 없으니까 제주 사람들한테 숯을 공출했어요. 그때 산 아래 곶자왈의 아름드리 나무들이 거의 다 베어져 나갔죠. 지금도 그루터기만 크지만, 둥치는 작은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 이후 숯가마는 없어졌지만, 표고 농사는 50년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지금도 중산간 곳곳에 ‘물 텀벙(물웅덩이)’ 흔적이 여러 곳 있다. 표고 종균을 참나무에 심기 전 물웅덩이에 담가 참나무를 반쯤 썩히는 것이다. 그래야 균이 잘 증식하기 때문이다. 지금 남아 있는 물텅벙은 멧돼지의 목욕탕이 됐다.
한대오름은 아주 큰 오름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큰 분화구가 분지를 이뤘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분화구는 거대한 연못으로 변한다. 오 대장은 “비 오는 날 무릎까지 빠지는 길을 건너간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가 오는 날의 오름 트레킹은 자제하는 게 좋다. 특히 길을 잘 알지 못하는 외지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또 비 오는 날은 토사 유출이 더 심해, 길이 더 망가진다.
오름으로 가는 길, 임도를 걷는 오희준기념사업회 회원들. 김영주 기자
한대오름 정상부엔 무덤 한기가 있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묫자리, 음택풍수((陰宅風水)에 각별히 신경 썼다고 한다. 절해고도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상의 은덕에 기대려는 의지가 육지 사람보다 더 강했던 것”이라고 오대장은 말했다.
“제주 전통사회에선 조상의 묘가 완전히 자리 잡기까진 10년이 걸렸어요. 묫자리를 구하는 데 3년 그리고, 완전히 장례를 마치는 데 7년. 그래서 ‘구산 삼년’, ‘택일 칠년’이라고 했지요. 그만큼 제주 전통 사회에서 장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이죠. 그 전까지 집 근처나 밭에 가매장하는 거고요. 제주의 장례가 절차가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게 그런 연유입니다.”
제주의 장례 문화를 얘기하면서, 그는 녹나무와 얽힌 스토리도 들려줬다.
“녹나무는 제주시의 상징인데, 귀신을 내쫓는다고 해서 집 안에선 안 심는 나무입니다. 하지만 감귤밭이나 가로수로선 아주 좋은 재목이지요.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나무이고, 정유 물질 덩어리라서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일본에선 전매청에서 전매하는 나무입니다. 제주에선 젊은 사람이 급사했을 때 녹나무를 이용해 사람을 살려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급사한 사람을 방안 구들에 눕혀 놓고, 녹나무를 가득 넣고 군불을 때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녹나무의 진한 향이 시신의 온갖 구명으로 들어가게 되죠. 그래서 갑자기 깨어난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고 해요. 녹나무는 새순이 날 땐 녹색이 아니에요. 아주 화려합니다. 그래서 제주 사람의 예술성을 상징하기도 하고,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제주 사람들의 실용성을 상징하기도 하는 나무입니다.”
한대오름에서 노루오름으로 갈 땐 아름다운 삼나무 숲길을 가로질러 갔다. 상산이 주는 향기와는 다른 삼나무 피톤치드가 가득했다. 중간에 ‘명상의 숲’으로 쓰인다는 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전날 비가 내려 바닥이 축축하긴 했지만, 삼나무 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즐겼다.
제주 애월읍 공치왓에서 오릌 트레킹을 시작하는 오희준기념사업회 회원들. 김영주 기자
오희준기념사업회 산행 모임은 50대 초반에서 8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산악인이 많을 것 같지만, 대부분 오름을 걷는 게 좋아 참석하는 사람들이다. 외지인도 부담 없이 참석할 수 있다. 단, 참석 전 네이버 밴드를 통해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오창섭 오희준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제주에 오름 동호회가 많지만, 우리 기념사업회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모임”이라며 “회원은 가리지 않는다. 제주 사람이 아닌 여행객도 날짜만 맞으면 얼마든지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매달 참석하는 인원은 40~60명 수준이다. 그는 오희준과 특별한 인연이 없지만, 그가 고향(제주 토평동)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이사장을 맡았다.
노루오름은 이 오름 주변에 노루가 유달리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오 대장은 “노루가 사려면 물이 많고, 숲이 우거지고, 계곡으로 나아가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이곳이 딱 맞춤”이라며 “다른 오름에도 노루가 많이 살았겠지만, 여기가 천혜의 조건이라서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노루오름 트레일은 정상부에 자리한 커다란 분화구를 빙 들러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해발 1000m 안팎의 분화구 주변을 돌 때는 마치 산 정상에서 탑돌이를 하는 기분이다.
노루오름에서 바리메로 가는 길은 삼나무 숲 사이로 난 정갈한 임도였다. 바리메는 작다는 뜻의 아끈바리메(족은바리메)와 붙어 있는데, 그래서 두 오름은 망아지가 어미 말을 쳐다보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는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천마등공(天馬騰空) 형의 명당” 오 대장은 말했다. 한때 바리메엔 일본군이 놓고 간 금괴가 묻혀 있다고 해서 실제로 금괴 발굴 작업이 이뤄지기도 했단다. 아끈바리메에서 바리메로 도는 길도 상산 향이 가득했다.
제주 애월 노루오름 아래 삼나무 숲길을 걷는 오희준기념사업회 회원들. 김영주 기자
하루에 오름 3개, 약 15㎞를 걸었는데도 따분하거나 지루할 새가 없었다. 오 대장의 해박한 제주 옛길 설명과 어딜 가나 따라다니는 더덕 향기 덕분이었다. 기념사업회 산행은 매월 셋째 주 일요일마다 한다. 5월엔 영실에서 윗세오름 근방, 오희준 씨의 기념탑이 세워진 곳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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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