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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회복시리즈⑮
제단에 담긴 예배 이야기
참고말씀: 출21:14; 25:13-15,26-28; 30:4,5; 38:1; 레1:9; 10:1,2; 16:12; 왕상1:50,51; 2:28-34; 대하1:5,6; 4:1; 시3:8; 18:1,2; 마20:28; 27;50,51; 요14:13,14; 16:24; 갈6:14; 엡5:2,20; 골3:17; 히10:10-12,19,20; 요일2:2; 계7:10
읽을말씀: 출27:1-8
주제말씀: 출27:8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
첫째, 모든 제물은 반드시 제단을 통해 드려졌습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출27;1,2)
구약의 제사는 번제(레1:1-17), 소제(2:1-16), 화목제(레3:1-17), 속죄제(레4:1-5:13), 속건제(레5:14-6:7) 5대 제사가 있었는데, 이는 반드시 어디에서 드려져야만 했습니까? 제단입니다.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9 하)
이 단은 제물을 태워 드리는 단이기에 무엇으로 불리기도 했습니까? 번제단입니다. “그가 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었으니...”(출38:1 상) 또한 놋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불리기도 했습니까? 놋 제단(또는 놋 단)입니다. “옛적에 훌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살렐이 지은 놋 제단은 여호와의 장막 앞에 있더라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아가서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1:5,6)
이 단의 규모는 어떠했습니까? 가로 2.25m, 세로 2.25m, 높이 1.35m입니다. “너는 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을 만들되 네모반듯하게 하며 높이는 삼 규빗으로 하고.”(출27:1) 참고로, 1규빗은 길이 측정 단위로서 대략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 중지(中指) 끝까지의 길이, 약 45.6m에 해당됩니다.
이는 회막 안에 있는 다른 기구들에 비해 그 크기가 어떠했습니까? 제일 컸습니다. 솔로몬 성전에서는 어느 정도 크기로 제작되기도 했습니까? 가로 9m, 세로 9m, 높이 4.5m의 크기입니다. “솔로몬이 또 놋으로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십 규빗이며.”(대하4:1)
제단 네 모퉁이에는 무엇을 만들도록 했습니까? 뿔입니다.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출27:2) 여기서 뿔은 ‘힘’ 또는 ‘능력’을 상징하므로, 번제단의 뿔은 무엇을 예표 한다고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제단은 어떤 구조로 만들었습니까? 널판으로 만들되 속이 비어 있는 구조입니다. 즉 조각목으로 만든 단의 틀이 위아래가 막힘이 없이 뚫려 있는 구조였습니다.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출27:8 상) 그러다보니 제물이 잘 타고 남은 재가 아래로 잘 빠지도록 무엇이 필요로 했습니까? 놋 그물 철망입니다. “제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출27:4 상) 이 놋 그물 철망은 무엇에 의해서 번제단 틀의 중간쯤에 걸쳐졌습니까? 네 개의 놋 고리입니다. 즉 놋 그물 철망을 이 놋 고리들에 걸쳐두었는데, 이 고리들은 그물과 번제단의 틀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 위 네 모퉁이에 놋 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은 제단 주위 가장자리 아래 곧 제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4,5절)
제단의 이동이 용이하기 위해 언약궤(출25:13-15)나 진설병상(출25:26-28), 분향단(출30:4,5) 등과 마찬가지로 양쪽에 고리를 만들고 채로 꿰어 두었던 것입니다. “또 그 제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제단 양쪽 고리에 그 채를 꿰어 제단을 메게 할지며.”(출27:6,7)
둘째, 우리의 구원도 예수님의 대속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제단은 널판으로 속이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출27:8)
하나님은 이 제단도 반드시 무엇대로 만들게 하셨습니까? 호렙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대로입니다.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게 하라.”(출27:8 하)
어째서입니까? 이 제단 역시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 곧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제단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곳으로서 여기에서 태워지는 예물은 예표론적으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던 것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 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히10:10-12) /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하)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27;50,51)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을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또한 예배의 자리로 나아갈 때마다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제단 네 모퉁이에 있는 뿔은 ‘힘’ 또는 ‘능력’을 상징하는데,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이어지게 하고 그 제단을 놋으로 싸고.”(출27:2)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합니까? 구원의 능력은 오직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그 어린 양(예수님)께 있다는 점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18:1,2) /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7:10) /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시3:8)
아울러 사람이 제단의 뿔을 잡는 것은 신적 관용과 용서를 요청하는 행위로써, 출애굽 시대부터 성소의 제단은 도피성과 함께 범죄자의 피신 장소로 인정되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제단 뿔을 잡는 행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여호수아 이후 보편화되지 않았을까 추측이 됩니다.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왕상1:50,51)
그러나 제단의 뿔을 잡았더라도 범죄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거기서 끌어내어 합당한 처벌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출21:14) /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그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으니 이는 그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음이더라 어떤 사람이 솔로몬 왕에게 아뢰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이르되 너는 가서 그를 치라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그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아뢰어 이르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왕이 이르되 그의 말과 같이 하여 그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은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 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그들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의 자손과 그의 집과 그의 왕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그를 쳐 죽이매 그가 광야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왕상2:28-34)
이를 통해 무엇을 더 깨닫게 됩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힘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제단 앞으로 나아가 그 구원의 뿔을 잡을 때,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를 붙잡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4)
한편, 제사장들로 하여금 조석(朝夕)으로 번제단의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게 했는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레16:12) /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10:1,2)
이를 통해 우리는 또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예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 역시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드려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모든 기도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14:13,14)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예배로 나아갈 때마다 다 주 예수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며, 또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그리 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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