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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부산 밖의 부산 시인들 『 시와 사상 』2025 가을호
김세영 시인 작품론
창해일속滄海一粟의 존재론
―Cosmic ontology
김겸(시인·문학평론가)
광활한 우주를 생각할 때 인간의 존재는 항시 양가적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인간이든 82억 인류든 그 존립의 위상은 우주적 시공간 앞에
왜소함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지구를 품은 태양계가 속해 있다는 우리 은하(The Milky Way)와 같은 은하도 관측가능한 것만 2조 개로
추정된다니 그 속에서 인간이란 티끌만한 존재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 존재는 그 무한한 시공간의 일부일 수밖에 없기에 존재의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우주적 고유성을 지닌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우연적이거나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무한한
우주를 감각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함으로써 우주적 존재로서 자신의 좌표를 파악하고 존재론적 무상함을 해소한다. 결국 인간(인류)은 그 왜소성에도 불구하고 우주적 의미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전달하는 주체가 된다. 그리하여 그런 시 쓰기라면…….
김세영 시인은 “기철학적 우주론의 개념과 시세계적 상상력으로, 우주적 소재와 현세계의 사물을 융합적으로 느끼고 사유”(「기철학의 우주론과 우주시」)하는 시를 우주서정시로 정의하며 이에 근거한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펼쳐가고 있다. 우주서정시라는 용어는 일견 개념적 합의를 충분히 얻지 못한 낯선 범주처럼 보이지만, 이를 단순한 소재주의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는 기철학과 우주론은 연관시켜 다음과 같은 자신의 우주관을 서술한 바 있다.
우주는 궁극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총체로 이해되며, 동아시아 기철학은 이를 구성하는 근본 원리를 ‘기氣’로 본다. 기는 물질의 최소 단위이자 에너지의 근원으로서, 모든 존재와 현상은 기의 응집과 분산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거듭한다. 이러한 기의 운동 원리와 내재적 법칙을
‘리理’라 하며, 기는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지니므로 ‘기파氣波’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기철학은 우주의 원초적 상태를 무한히 흩어진 기의 장場인 ‘태허太虛’로 설명하고, 이 기가 모여 ‘태극太極’을 이루며, 이는 다시 우주알cosmic egg과 빅뱅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로 본다. 이러한 기철학적 우주관은 시인의 사유에 투영되어, 물질과 에너지,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라는 원리를 시적 언어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의 사상적 바탕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러한 시관은 단순한 소재주의적인 관점에서 범주화된 것이 아니라 기철학적 우주관에 근거한 사유를 통해 세계의 질서를 통찰하고, 이를 통해 인간과 생명의 의미를 보다 근원적이고 총체적으로 성찰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여명의 돔 위에 앉아있는
저 이글거리는 잔
겹겹이 쌓인 암흑 물질을
홍염으로 태우고
거대한 빛을 뿜어올린다
창세를 열었던 입술,
오래된 약속의 지문이 묻어있는
눈부신 황금 성배聖杯!
저 잔 속에 무엇이 있을까?
백억 년의 암흑 에너지 속에서
숙성한 신의 술일까?
저 금단의 술을 훔쳐 마시고
우주알의 껍질을 깨트리고 부화시키는
우주새의 혼이 불꽃으로 솟아 오른다
시공간에 흩뿌려진 별들, 혼불의 파동
팽창하는 별자리들, 이합집산의 문양들
출렁이는 은하의 파도,
쓰나미파로 몰려오는
우주의 종소리와 박동이
정수리 백회百會의 수상돌기를 흔든다
은하의 원류를 찾아서
헬리오포즈를 벗어나는 보이저처럼
태양계를 벗어나는 혼령들의 환희
성간을 건너가는 혜성처럼
입자의 틀을 빠져나온 파동처럼
주파수 공명을 찾아서 합류하며
장대한 기파의 강이 되어 흐른다
궁수자리 A별의 중심부를 뚫고
물질 우주의 웜홀을 지나
화이트홀 너머로
오로라처럼 솟구쳐 나가서
영성 우주로 건너갈 거야
우주새의 전언傳言처럼
새로운 약속의 예언대로
거대한 기파의 공명, 끝없는 성간 울림
영성의 법열로 거듭날 수 있을 거야.
―「새로운 약속新約」전문
이 시는 앞서 논의한 기철학적 우주관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시 속에 등장하는 “이글거리는 잔”, “황금 성배”, “금단의 술”
등은 단순한 물리적 상징을 넘어서, 우주의 근원적 실체인 ‘기’와 그 내재적 운동 원리인 ‘리’를 드러내는 은유적 기호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겹겹이 쌓인 암흑 물질을/홍염으로 태우는” 장면은 기가 응결되고 역동적으로 순환하는 다층적 우주의 구조를 시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어지는 “백억 년의 암흑 에너지”라는 표현은 우주의 장구한 생성과 소멸, 곧 기의 대순환을 상기시키는 시적 장치로 기능한다.
이 우주적 운동은 시적 자아의 도약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우주알의 껍질을 깨트리고 부화시키는/우주새의 혼”은 ‘태극’이 응축에서
폭발로 전환되는 극점, 즉 빅뱅의 역동을 은유하는 이미지이다. 동시에 이는 ‘기’가 지닌 입자성과 파동성이라는 이중적 본성이 어떻게
공간 속에서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의 세계는 더욱 광활한 우주적 공명으로 확장된다. “은하의 파도”, “우주의 종소리”, “장대한 기파의 강”은 기철학에서
말하는 파동적 순환과 우주 리듬을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특히 “정수리 백회”에까지 이르는 흐름은 인간과 우주의 일체감을 신체 감각을 통해 구현하며, 우주가 개체 안에서 울리는 방식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화이트홀 너머로/영성 우주로 건너간다”는 시구는, 시인이 단지 물리적인 우주 너머로 의식을 확장시키려는 초월적 지향성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기’의 흐름이 정신적·영성적 차원까지 이어지며, 존재의 심층 구조에 대한 사유로 나아간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기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물질과 정신, 인간과 우주, 생명과 영성이라는 거대한 연결망 속에서 “새로운 약속”을 성찰하고 있다. 이러한 시적 구성은 우주적 질서에 대한 인식과 인간 존재의 재탄생 가능성을 제시하며, 시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존재의
근원 회복과 확장이라는 시적 기획으로 수렴된다.
별들은 왜 서로
태어나자마자 도망치듯
아득히 멀어져 가는가?
별들이 달려가며 만드는
수천억 광년, 빛 마디들
은하의 물결로 흐른다
별들을 떠나는 기파들
기약 없이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은
먼 어둠 너머에서
거부할 수 없는 눈빛
공명의 불빛 때문일 거야
사무침으로 보내는
흩어진 혼들의 재회를 위한
SOS 모스 신호이다
간절한 중력파를 따라
별들의 기파들, 화이트홀 너머로
양자도약으로, 물질의 틀을 벗어나
영성우주의 시공으로 건너갈 거야
지금, 이 별자리에 머무는
얼마 남지 않은 견습 기간
천문泉門의 가지돌기를 세우고
우주 창생의 신화를 들을 수 있는
영성 화법에 익숙해져야지.
―「별빛의 화법」전문
이 시는 기철학적 우주관의 원리를 응축하여, 우주적 존재와 소통의 문제를 탐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에서 별들은 우주의 기본 단위이자 기의 응집체로 그려지며, 태어나자마자 서로를 향해 달아나듯 멀어진다. 이는 우주의 팽창과 기의 파동적 운동, 즉 기파가 시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퍼져나가는 현상을 상징한다. 특히 별들이 만들어낸 “수천억 광년, 빛 마디들”과 “은하의 물결”은 ‘리’에 따른 우주적 질서와 율동을 시각적 이미지로 구현한 표현이다. 이와 같은 파동의 확산은 “기약 없이 아득히 멀어져 가는” 운동을 통해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하는 역동적 상태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우주의 에너지는 독립적인 개체들이 특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거부할 수 없는 눈빛/공명의 불빛”이라는 시구는 우주 안에 내재된 상호 소통과 공명의 원리가 담겨 있으며, “SOS 모스 신호”는 기의 상호작용이 단순한 물리적 운동을 넘어 생명과 영성 간의 깊은 신호체계임을 시사한다. 이에 별들이 발산하는 기파는 “재회를 위한” 신호이며 “화이트홀 너머로/양자도약으로”, “물질의 틀을 벗어나/영성우주의 시공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의 차원으로 변화하는 운동의 양상을 의미한다.
“우주 창생의 신화를 들을 수 있는 / 영성 화법”은 단지 시적 상상에 그치지 않고, 우주와 인간이 근원적으로 하나임을 깨닫기 위한 언어와 감응의 방식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이를 위해 “견습 기간/천문泉門의 가지돌기”를 세운다는 의미는 인간 삶 자체가 우주의 화법을 익히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요컨대, 이 시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우주적 운행의 원리 하에서 수수되는 소통과 영적 감응의 맥락 하에서 이해하고 있다. 굳이 영적인 맥락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물리학의 차원에서 생명이란 원자들의 독특한 배열로 이루어진 하나의 상태이며 죽음은 그 배열이 깨지고 다시 원자로 흩어지는 과정이다. 다시 원자는 우주의 일부로 순환하다가 또다른 원인에 의해 생멸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기의 파동적 운동과 존재 간의 공명은 우주 만물이 운행하는 에네르기이자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지 근력이 약해지고
직립 균형이 약해지고
심장 박동이 약해지고
신경 전달이 약해지고
불안한 날들이 쌓이고
불면의 밤들이 쌓이고
무념의 시간이 쌓이고
무상의 공간이 쌓이고
언제부터인가 야윈 가슴통을
탱자나무 울이 둘러싸고 있다
이 울이
최후의 전신갑주全身甲冑가 되고
세상으로부터 도피처가 될 수 있을까?
이 울이
위리안치圍籬安置의 거처가 되고
종신형의 독방이 되는 것인가?
덫 속의 짐승처럼 바동거리다
나갈 의지도 잃어가고
나갈 길도 잊어가고 있다
때로는
고용량 알프라졸람의 안락함 속에 빠져보기도,
망각의 압착기 속에 머리를 넣어보기도 한다
고달팠던 기억 저장, 가득
가슴 아픈 기억 저장, 가득
후회스러운 기억 저장, 가득
즐거웠던 기억 저장, 조금
마른 해마의 주머니 속에 담겨 있다
육신의 인연에 얽매이지 말자
불안과 두려움의 단어는 잊자
손바닥에 마지막 쓰고 싶은 글자,
소멸하지 않는 기억이 되겠지
들숨과 날숨을 멈춘 후
탱자나무 줄기로 염을 하면
마른 육포의 미라mirra
무덤이 되겠지.
자유혼아, 기화되어
중력의 울을 헤치고 나와
공명의 기파를 쫓아가자
화이트홀 너머로
새로운 거처로.
―「울, 너머로」전문
이 시는 신체적 노쇠와 이에 따른 심리적 고통, 고통과 후회로 점철된 삶의 노정을 제시하며 이 ‘울籬’을 넘어 우주적 자유혼이 되고자 하는 염원과 의미를 드러낸 작품이다. 이때 울은 온몸을 보호하는 갑옷(“전신갑주全身甲冑”)가 되기도, 죄인을 가두는 가시덤불 울타리(“위리안치圍籬安置”)가 되기도 한다. 어느 누구의 삶이든 자신을 둘러싼 탱자나무 울이 있는 법이다. 이는 앞서 제시한 시적 비유처럼 방어와 구속이라는 양가적 가치를 지닌다. 울은 삶 속에서 지탱해 왔던 정신적 이상이나 가치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삶 그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덫 속에 짐승처럼 바동거리”는 것이 생이라면 산다는 일은 얼마나 가여운 것인가. 일시적으로 불안을 잊기 위한 안락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일시적 망각 속에 스스로를 방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마른 해마” 속에 기억은 고통과 상처와 후회로 저장되고 이는 지금-여기 화자의 내러티브 아이덴티티narrative identity를 구성한다. 인간은 과거의 상흔을 서사적으로 재구성하며 현재의 자신을 정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기획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는 “마른 육포의 미라mirra/무덤”이 상징하는 노쇠와 소멸의 과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지막 연에 “자유혼”이 “중력의 울”을 벗어나 “공명의 기파”를 따라 “화이트홀 너머”로 향하는 여정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초월한 기파와 영성에로의 초월을 반영한다. 육체의 소멸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 존재는 끊임없이 우주적 순환의 일부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기파와 영성철학에 바탕을 둔 우주관의 맥락에서, 인간은 우주의 광대한 질서 안에서 극소의 존재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인 일부로 자리한다. 김세영 시인의 근작시 「새로운 약속新約」, 「별빛의 화법」, 「울, 너머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간 존재의 우주적 확장과 영적 초월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며, 육체적 노쇠와 정신적 고통을 넘어서는 우주적 존재론Cosmic ontology의 지평을 제시한다.
광대무변한 우주라는 바다의 좁쌀 한 톨과 같은 인간의 존재는 미소하나 우주의 모든 존재의 기파 속에서 공명하며 연결된다는 시인의 세계관은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을 하나의 우주적 운동 안에서 파악한다. 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생명을 새롭게 조명하는 그의 우주 시관은, 일상사의 고통 속에 매몰된 채 부침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코스모스』)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은 원초적으로 모두 우주적인 원소들이었다는 말이다.
김겸_2002년『현대문학』평론 등단. 2007년『매일신문』신춘문예 소설 당선. 2021년『강원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 평론집 『비평의 오쿨루스』, 시집 『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외 다수
『 시와 사상 』 2025 가을호 부산 밖의 부산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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