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영국 조선업의 위엄
1892-1923년까지 세계 조선업에서 영국이 차지하던 비중
빨강색: 1차 대전 이전에서 발발 년도 → 1911-14년 세계 선박 시장에서 영국의 비중은 61%에 달했다.
초록색: 1차 대전 기간 → 1차 대전 기간에 이르러 영국의 비중은 떨어지지만, 여전히 42%를 차지했다.
파란색: 1차 대전 이후 → 1919-23년에도 세계 시장의 32%를 차지했다. 여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영국의 총 선박 건조량은 19세기 후반부터 급격히 치솟았는데, 영국 조선업의 성장에 더하여 해외 수주 역시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영국산 신규 건조 및 중고 선박들은 여러 나라에 판매되었고, 특히나 오스트리아-헝가리,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러시아, 네덜란드, 일본, 스웨덴, 그리스에서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아예 특정 시기로 한정하면, 벨기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네덜란드 함대의 절반 이상이 영국 조선소들에서 건조되었을 정도였다. 해외 선박 판매량 중 영국이 차지하던 비중은, 1869/83년에서 1904/8년 기간 사이 12%에서 30%로 폭증했다(Pollard and Robertson, 37; Slaven, 1982, 41). 중고 선박 시장도 활황 국면에 있었고, 특히나 노르웨이가 그러했다. 이는 영국 조선사들은 토착 조선사들과 협조하여 각국 함대에 지속적인 최신 선박 공급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1890년대에 이르면, 영국은 연간 100만 톤에 달하는 선박 건조 능력을 뽐냈고, 세계 선박 총톤수의 약 80%가 영국에서 건조되었다.
19세기 후반부는 영국 조선사들의 황금기였다. 막강한 영국 중공업의 뒷받침에 힘입어 영국 조선사들은 경쟁자들에 한발 앞서 신기술을 선보였고, 조선소는 물론 항만까지도 이에 맞추어 전문화됨으로써 효용성의 증대를 가져왔다.
전문 선박들이 더 많이 건조되던 시점에 이 같은 특화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영국 북동부는 부정기선 건조의 메카로 떠올랐고, 스코틀랜드 클라이드사이드는 여객선으로 명망을 떨쳤다. 배로와 비컨헤드는 전함 건조로 유명했으며, 던디와 리스 그리고 애버딘은 어선으로 이름을 날렸다. 독스포드와 선덜랜드는 회전탑을 갖춘 화물선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19세기 후반에 이르자, 영국 조선업의 성장세는 둔화되었고, 세계 시장에서 영국이 차지하던 비중은 조금씩 줄어들어, 1920년대에 이르면 32%까지 떨어졌다. 산업화를 이룬 독일과의 경쟁, 석탄에서 석유로의 선박 연료 교체, 1차 대전의 여파까지 더해지면서, 영국 조선업의 지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1892년-1914년 유럽 국가들의 선박 건조량(톤수 기준)
1881년에서 1901년 사이에 걸쳐 독일 조선소의 숫자는 8개에서 35개로 증가했고, 1892-5년에서 1911-14년 사이에 생산톤수 또한 83,000톤에서 371,000톤으로 증가했다(Pollard and Robertson, 39,249). 19세기 말 기준으로 이것은 영국보다 훨씬 빠른 성장세였지만, 그럼에도 독일의 총생산량은 한참 영국을 밑돌았고 그나마도 여객선 생산에 치중했을 뿐이다. 이는 독일 상선주들이 주요 여객선 사업체들의 수요에 응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비교해 독일의 선박 수출량은 아주 작은 비중만을 차지했을 뿐인데, 지나치게 높은 가격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에서 뒤쳐졌기 때문이다.
-사이먼 P. 빌레(1990), 『유럽 경제의 발전과 수송 수단, 1750-1918』, Palgrave Macmillan-
(OECD에서 발간한 2017년 세계 조선업 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 수주 현황)
그런 영국 조선업의 위용도 지금은 보잘것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 조선업의 역량은 상당 부분 아시아 국가들이 물려받았다. 우리나라도 현대중공업이 영국의 기술과 자본의 영향을 받아 크게 성장했고, 오늘날 국내 조선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리고, 현재는 아시아가 세계 선박 수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비중은 미미하다.
현재 세계 시장을 양분하는 한국과 중국이 둘 다 30%대이다. 한때 세계 시장의 80%를 장악했던 영국 조선업의 위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