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7일
창세기 49,1-2.8-10 마태오 1,1-17
2024.12.17
주제 : 하느님의 계획과 사람의 생각
오늘은 성탄절을 앞두고, 특별한 자세로 성탄을 준비하자는 권고로 지내기 시작한 9일기도의 첫째 날입니다. 기도를 말하는 시간의 길이에 아흐레를 말하는 것은 사람이 9일만 기도하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만큼 정도와 정성을 모으자는 권고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9일기도 기간에 우리가 듣는 독서의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후손에서 시작되는 하느님의 구원하시는 길에 관해 듣는 내용입니다. 세상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구원이 내 생각과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을 받아야 하는 차원에서라면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사람으로서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에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뜻을 잘 알아듣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2000년대를 지내고 있는 우리의 처지에서 아브라함의 역사는 4000년 전으로 말하니까, 세상을 창조하신 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을 2000년쯤이 지난 다음부터 인류의 역사에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개인의 힘으로 완성하기를 원할까요? 오늘의 독서를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할 표현이긴 하지만 사람이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모든 일은 과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사악의 후손이었던 야곱의 열두 아들에서, 오늘 독서에 조상의 복을 받는 사람으로 나오는 유다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첫째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정하시는 축복은 세상에서 항상 첫째 아들부터 실현되어야 할까요?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을 만나면 첫째 아들 르우벤과 레위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선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기에 하느님의 축복에서 축복을 받는 사람의 대열에서 밀려났습니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축복은 사람이 정한 순서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오늘 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예수님에게 이르는 족보에 관한 말씀입니다. 족보는 장자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내용을 대하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하느님께서 이루시려고 하는 일을 잘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으로 산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