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구 외에도 한달간 부평 104건-강서 102건 ‘전세사고’
[전세사기 피해]
2월에만 전국 1121건 접수
서울-인천 655건, 60% 육박
뉴스1
“올해 예정했던 결혼식을 무기한 연기했어요.”
전세사기 피해자 직장인 승모 씨(34)는 18일 “모아 놓은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막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승 씨는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등 수도권 일대에 주택 1139채를 소유하고 약 170억 원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40대 빌라왕 김모 씨 사건 피해자다.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에 거주하는 승 씨는 가해자 김 씨가 지난해 10월 숨진 채 발견되면서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요원해졌다. 김 씨의 유족들이 상속을 거부하면서 보증금을 돌려줄 주체가 사라진 것.
상속자가 없을 경우 법원에서 관리인을 선정해 경매에 넘기는데, 선순위 채권이 있다 보니 승 씨는 전세보증금 2억3000만 원 중 대부분을 날릴 가능성이 높다. 승 씨는 “전세보증금을 날리지 않을 유일한 방법이 경매에 참여해 살던 집을 낙찰받는 거라고 해서 입찰에 참여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최근 인천 미추홀구뿐 아니라 수도권 곳곳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날릴 위기에 처한 이들이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2월에만 전국에서 1121건, 2542억 원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접수됐다. 이 중 60%에 육박하는 655건이 서울과 인천에서 접수된 것이었다.
인천에선 부평구가 104건(사고액 195억7500만 원)으로 가장 많아 인천 전체(356건)의 29.2%에 달했다. 서울에선 강서구가 102건(256억4750만 원)으로 서울 전체(299건)의 34.1%를 차지했다.
이 같은 피해 현황은 HUG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한 뒤 보증금 반환 신청을 한 경우만을 대상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통상 전체 전세 세입자의 10%가량이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최근 6개월간 접수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보증 사고는 전국에서 5516건에 달한다.
이기욱 기자, 소설희 기자, 이새샘 기자
숨진 피해여성, 해머던지기 국가대표 출신
[전세사기 피해]
광저우 亞경기 출전해 5위 기록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 씨(61)에게 전세사기를 당해 극단적 선택을 한 세 번째 사망자 박모 씨(31)는 국가대표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사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박 씨는 강원 정선의 한 중학교에서 원반던지기 선수를 하다 부모와 살던 집을 떠나 중학교 2학년 때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이후 해머던지기로 종목을 바꾼 박 씨는 2010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5위를 기록했다.
학교 졸업 후에는 실업팀 선수로 뛰었다. 박 씨를 지도했던 실업팀 코치는 인천의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착하고 실력 있는 선수였다. 월급을 모아 인천에 전셋집을 마련했다고 좋아했는데…”라며 울먹였다.
박 씨의 빈소를 찾은 김모 씨는 “박 씨 집 아래층에 살았는데, 젊은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게 무엇보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박 씨의 부친은 “딸이 경제적으로 일찍 독립했다. 폐 끼치는 걸 싫어해서 전세사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박 씨는 최근에는 애견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왔다고 한다.
박 씨는 “전세사기를 당했다. 의지할 부모님도 없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전세사기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고립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주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