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탕
십이월 둘째 주 수요일은 국어과 동료들과 학교 바깥에서 점심을 같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정기고사 기간 중 그제는 삼귀해안 석교마을로, 어제는 북면 지인 농장을 찾았더랬다. 언제 틈을 내 둘러보고 싶은 데가 주남저수지였다. 가을 이후 그곳을 찾는 겨울 철새들이 궁금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 주남저수지 근처로 가는 버스를 살폈다.
언제부터인가 닭이나 오리 사육 농가에서 겨울이면 연례행사로 겪는 일이 AI다. AI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빠른 전염성으로 농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간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병해 방역 당국을 힘들게 하고 있다. 특히 행정관서 일반 공무원들이 격무에 고생 많다. 아침뉴스엔 낙동강 벨트도 무너져 우포늪을 찾아온 고니에서도 발병했단다.
겨울철이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어김없이 왜 발병하는가? 나는 조류학자도 아니고 양계업자도 아님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는 지역이 겨울철새가 내려오는 주남저수지와 우포늪과 인접했다. 멀지 않은 곳에 을숙도 철새도래지도 있다. AI는 새에게 붙는 감기다. 비좁은 양계장에서 방부제를 섞은 사료와 항생제를 먹여 키운 인간의 욕심이 빚은 재앙은 아닐까?
내가 주남저수지를 찾아가는 길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대개 주남 삼거리에서 가월마을 입구를 거쳐 주남저수지 둑으로 향한다. 나는 그곳이 아닌 무점마을 종점에서 동판저수지를 먼저 들리거나 본포로 가는 버스를 타서 석산마을 근처에서 내란다. 평일 오후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41번 버스를 타고 용강고개를 넘었다. 용잠 삼거리에서 신방초등학교를 거쳐 고양마을을 지났다.
석산마을에서 내려 앞 들녘을 지났다. 근래 금산마을까지 향하는 농로를 새로이 내고 있었다. 수로 곁 논에는 보리를 심어 싹이 나기도 했고 벼를 베고 텅 빈 채 겨울을 넘기기도 했다. 저만치 넓디넓은 주남저수지에선 철새들이 뭐라고 고시랑고시랑 재잘거렸다. 가까이 내려가니 저수지 가장자리는 시든 물억새가 헝클어졌고 나뭇잎이 떨어진 갯버들은 나목인 채 겨울을 나려고 했다.
내가 다가간 곳은 주남저수지 둑에서 바라보면 아스라한 건너편에 해당했다. 갯버들이 무성하고 인적이 뜸한 저수지 가장자리였다. 강변에서 취수한 대형 상수도관이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농로와 겸했다. 비포장 길을 걸어 용산마을로 향했다. 갯버들 가지가 드리워 철새들의 은신처로 적합한 수면이었다. 더구나 연잎과 줄기가 시든 채 오그라져 있어 수생 생물이 서식하지 알맞았다.
저수지 가장자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철새들이 오글거렸다. 단연 덩치 큰 고니가 눈에 띄었다. 녀석들은 쉬지 않고 뭐라 뜻을 알 수 없이 종알거렸다. 혹여 불청객이 내가 왔다고 경계심을 품고 동료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찔렸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죽여 고양이 발걸음으로 살금살금 걸었음에도 저수지 가장자리 놀던 큰고니 때들이 퍼드덕 날아올랐다.
나는 녀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는 아무도 지나치지 않는 구역에 정체 모를 짐승이 나타나 그들의 평화를 깨트렸으니 나를 원망하지는 않은가 싶었다.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오래도록 비행해 내려오느라 많이 지쳤을 텐데. 내가 녀석들을 놀라게 해 다시 비상했으니 별도 더 열량을 소비시킨 듯해 미안했다. 그렇다고 내가 가는 길은 우회도로가 없어 계속 앞으로 가야했다.
주남저수지로 찾아오는 겨울 철새들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쇠기러기가 가장 많은 것이다. 녀석들은 아침이면 들판 어디론가 날아가 벼이삭을 줍거나 보리 싹을 뜯을 것이다. 청둥오리나 가마우지들은 샛강이나 다른 저수지에다 베이스캠프를 설치해 놓고 그곳에서 먹이를 찾고 있을 것이다. 덩치가 크고 겁이 많은 고니들은 주남저수지를 떠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16.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