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초등학교 친구로 부터 찾아들겠다는 연락이 왔다....마른 하늘이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오던 날이었다.
헌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이미 선약이 있었던 날이기도 하고 억수로 내리던 비 때문에라도 다음 기회로
말하자면 다음에도 비가 오는 날, 찾아들고 싶다면 꼭 맛있는 칼국수집에 가서 날궂이를 하자는 약속을 했었다.
본래 개인적으로 의미 없이 지켜지지 못할 약속, 인사차 하는 약속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누구라 할지라도
서로 여건이 맞지 않으면서도 괜히 립서비스로 "시간이 될때 만나서 밥 한끼 먹자"는 헛약속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다시 그 친구로 부터 "잘 지내느냐" 는 카톡 메세지가 뜨자마자 답신을 보내고 나니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무설재를 가보고 싶은데 찾아들어도 되겠느냐"는 조심스런 전언인 게다.
"물론 와도 되는거지...근데 아침 열시에 치과 치료가 있고 그렇게 되면 앞니를 뽑아야 되거든. 그러면 넌 앞니 없는 나랑 대화를 해야하는데 괜찮겠어?
난 어차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넌 간만에 보는데 웃기는 모습이면 좀 그럴거 아니니"
사실, 친구 만나는데 그까짓 모양새가 뭔 대수이며 여건이 열악한들 뭔 상관이겠는가.
그리하여 다음날 앞니를 뺀 채 입안 가득 벌걿게 물든 솜을 가득 물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참 그 꼬락서니 라니...싶어도 어쩌겠는가 약속은 약속이니 지켜야지.
어쨋거나 웃기는 모습이었어도 만나니 반갑고 즐거운지라 입안에서 새는 발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세상에나 사람의 피부 중 가장 보드라운 속살을 가진 것은 입술 안쪽의 살이렸다?
그전에도 입술로 존재했던 안쪽의 속살은 이빨과 맞물려 별로 그 부드러움을 느낄 새가 없었는데
와우, 앞이빨 빠진 사이로 메워지는 속살의 입술 감촉으로 전달되는 보드라움이 아기 맨살 저리가라 다 라는 말씀.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이로운 세상을 만난 듯 속살의 입술은 그야말로 황홀지경이라 비록 앞니는 빠졌을지라도
요즘은 입안에서 느껴지는 속살의 부드러움에 탄복을 하며 혀를 내두르는 지경이 되었다.
좌우간에 그렇게 점심을 먹고 들어와 차실에서 다담을 나누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자니 이 친구의 감성마인드가 장난이 아니다.
현재 오창이라는 곳에서 대단위 농사를 짓기도 하고 소소한 농산물 가공업도 하면서 정치 전선에 서있기도 하고
그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악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는 시인이기도 한 그런 친구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흥에 겨운 이야기는 깊게, 멀리 진도를 나가게 되고 스마트폰을 통해 보여지는 친구의 색소폰과 트럼펫연주,
기타와 하모니카와 기본 성악 발성의 노래와 일반 대중적인 노래 실력까지 겸비한 채 중저음의 멋진 매력 보이스를 지닌 근사한 친구를
다늦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는 그야말로 두배로 반갑기 까지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음악 좋아하는 쥔장에게 CD 한 장을 선물하였다.
자신의 詩가 가곡으로 재탄생되었다는 언질과 함께 슬쩍 내밀며 얼마 후에는 두편의 시가 가곡으로 또 탄생할 예정이고
지금 한창 작업중라고 하는데 새삼스럽게 그 친구가 다시 보이기도 하고 그런 멋진 시어를 발굴해내어
아름답고 멋진 선율로 시어에 걸맞는 가곡으로 탄생시키는 작곡가들과 그 음악들을 불러주는 성악가들
그리고 끊임없이 발굴해낸 좋은 가사로 멋진 우리 멜로디 가곡을 탄생시키는 한국가곡의 산실
"가곡동인歌曲同人" 단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사는 것에 급급하여 많은 사람들이 잊고 사는 것 중에 " 동요"와 "가곡" 들이 있다.
그저 오로지 대중매체에 의한 대중가요에만 집중하느라 언제적 즐겨듣던 음악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잊혀져가는
우리네 고유정서가 가득 밴 가곡과 소싯적에 즐겨듣던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동요와
혹은 클래식이라 이름지워진 다양한 분야의 음악세계를 우리는 알지 못하거나 잊고 살거나
잊혀져도 무방할 만큼 미친듯이 앞만 보고 다른 세상을 향해가며 분주하게 살아내고 있다.
쥔장 또한 그러했다.
간간이 기회가 주어질 때만이 가능한 다양한 음악 세계를 그동안 잊혀진 듯 잊고 살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득 들 정도로
친밀감이 전해지는 친구의 음반을 듣자니 자연스럽게 감탄사가 나오고 가슴이 뭉클하기 까지 하더라는 것.
새삼스럽게 이런 세상에 빠져 살았던 기억이 소환되어 다시금 그 옛날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자고 들었더니만 이것은 또 웬일?
그 친구와 잘 안다는 남친이 또 나의 여친 남편이 아니던가 말이다...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다 라는 말을 또 실감한다,
클래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등장하게 된 "객석"이라는 잡지는 현재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진 관계로 쥔장의 친구 부부가 인수하였다.
부실해진 음악 잡지 "객석"을 다시금 재정비하여 멋진 음악 잡지로 키워나가고 있지만 사실은 마이너스, 적자 상태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청, 타청으로 감당하며 손해보지만 유일무이하게 남겨진 클래식 잡지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며
대중들에게 클래식 음악관계상으로 전달되어지는 다양한 분야를 나름껏 아우르며 사장되어가는 클래식을 전파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이미 그 친구는 다양한 분야의 잡지사 기자를 거쳐 "트레블"이라는 여행 잡지를 만드는 친구이기도 하고
이미 출판이나 잡지 문화권에서는 이름 석자만 대면 아, 그 사람....이라며 감탄을 할만큼 다 아는 그런 친구이기도 하며
쥔장과는 여고 동창이기도 함은 물론 역시나 날고 기던 출판, 문화계 동료이기도 하다.
그런 친구의 남편과 절친이라니 또 이건 무슨 상황인지....
어쨋거나 각양각색의 능력과 다양한 분야에 탁월함을 지니고 있어도 본업은 농부라던 그 친구와
그야말로 간만에 오래 전의 기억을 꺼집어내어 길고 긴 이야기들을 나눴다.
뒤이어 찾아든 발길만 아니었으면 아주 오래도록 그동안 밀렸던 긴긴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지만
또 아쉬움을 2프로쯤 남겨둬야 다음에 만나도 할 이야기가 많을 듯 하여 그대로 작별을 하였다.
가는 길에 쏟아지는 비가 그 친구의 운전에 방해가 되질 않기를 바라면서 바이바이...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아래로는 가곡으로 재탄생되어진 신언관 시인의 시 두 편 전문을 소개하는 바이다.
* 그곳, 아우내강의 노을
저 강물 속에 남겨놓고 떠난 것은
핏빛 정열의 적막함이 아니라
아직도 감춰야 할 약속.
강물을 거슬러 조금히 떼 지어 가는
물오리들의 물살도 금새 사라지고
홀로 튀어오른 잉어의 울음도
아우내강의 노을이 삼켜버렸다.
저 강물 속에 남겨놓고 떠난 것은
붉디 붉은 그리움이 타버린 애석함이 아니라
숨막히는 간절한 소망.
감히 거둘 수 없었던 외침도
메아리 없이 강변 갈대숲으로 사라지고
어느 틈 잠시 눈 감은 사이
어둠이 노을의 강을 삼켜버렸다.
돌아볼 수 없는
찾을 수 도 없는
기억의 아픔을 어찌 품고 살아가랴
강은 흐르고 노을의 빛은 잃어가고
동쪽 잣고개 위로 보름달은 떠오는데
**가을 강변에서
숨막히게 그리워
강은 내게로 흘러내리고
저녁 해를 견디지 못해
산은 그림자로 강을 덮는다
뼈와 살이 녹아
형체조차 잃어버린 산의 꿈이
강물이 되어 나를 감싸안느라
나에게 올 수 없는 산이기에
내가 갈 수 없는 산이기에
숨막히게 그리워
강은 쉼 없이 스쳐 지나가고
창화 唱和의 노래가 되어
가을 밤을 맞는다.
# 창화 : 한 쪽에서 부르고 다른 쪽에서 화답함
어제부터 오락가락 내리던 비가 빗줄기를 거세게 하여 거친 풍파를 일으키며 다시금 내린다.
그래도 오늘 내리는 비가 땅에게도 우리에게도 소중한 비 임을 안다.
첫댓글 멎진 친구가 많은 그대는 행복한 사람~!
세상 참 넓고도 좁네~! ㅎ
ㅎㅎㅎㅎ 그러게나 말이에요.
암튼 세상살이는 잘해야 할 듯.
밤비 쏟아지는...소백산자락에서 친구분의 좋은시 잘 읽었습니다 ()
비가 참 많이도 쏟아졌을 것 같아요.
풍기에 갈 때 마다 들려봐야지 하면서도 못 찾아들었습니다.
올 여름, 자두 따러 갈 때를 또 기약해봅니다.
풍기에 오실때 연락한번 주시죠 010-3508-1248 자두따러 어디 가시나요 ?
아, 넵...그럴게요.
풍기에 지인이 자두농사를 해서 올 여름에도 따러 갈까 합니다.
주소는 잘 몰라요...그냥 찾아들었던 기억으로 갑니다요.
무슨 사우나 온천이 근처에 크게 있더라구요...그곳을 기본적으로 목표로 삼아 찾아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