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요한 묵시록 7,2-4.9-14 1요한 1.3,1-3 마태오 5,1-12ㄴ
성인이 되는 길: 그분을 입고 그분을 보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광해는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과 똑같이 생긴 광대를 왕으로 앉힙니다.
광해는 양귀비에 중독되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천민 하선은 오랜 시간 왕 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하다 보니 자신이 정말 왕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전 왕과 구별되지 않는 모습이
되어갑니다.
마지막에 그가 가짜인 줄 알고 반역을 일으킨 무리는 그가 진짜 광해임을 알고는 망하게 됩니다.
이렇듯 점점 자신이 입은 옷에 충실해지다 보니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성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제1 독서에서는 하느님 나라의 성인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묵시 7,14)
어린양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피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겉옷을 빨았다는 말은 그분의 가죽을 입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야곱은 에사우의 털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자신이 에사우라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하선이 왕의 옷을 입으려면 왕은 죽어야 합니다.
왕이 살아있으면 왕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신이 되도록 자리를 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 흘림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 죽음으로 우리에게 살과 피를 내어주셨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마치 왕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리스도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깨끗해지기 위해 내가 그리스도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그리스도처럼 되어갑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오늘 제2 독서에서는 그분을 입는 것을 넘어서서 그분을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1요한 3,2)
만약 왕의 옷을 입고 못 된 왕의 모습을 본다면 어떨까요? 폭군이 될 것입니다.
왕의 옷을 입었다면 자신에게 옷을 벗어준 그 대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처럼 됩니다.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말과 행동과 눈빛까지도 그분을 닮아가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분을 향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더 웨이’는 안과 의사이고 일만 아는 톰이라는 미국인이 아들이 걸으려다 끝내 걷지 못한 산티아고 길을 걷는 내용입니다.
아들 다니엘은 달려오던 길을 잠시 내려놓고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나섭니다.
그를 공항에 태워주는 아버지 톰은 아들이 하는 일이 시간 낭비요 남는 것이 없는 삶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아들은 삶의 의미가 진정 무엇인가 찾고 싶었던 것입니다.
골프를 치고 있던 톰에게 전화가 한 통 옵니다.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다가 아들이 실족사했다는 소식입니다.
아내를 잃었던 아버지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바쁜 일정을 접어놓고 프랑스 생장으로 날아갑니다.
그곳에는 아들이 그 길을 걸으려고 준비한 배낭과 옷, 신발, 그리고 생장에서 한 개의 스탬프만 찍힌 종이와 지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왜 그 길을 걸으려고 했는지 궁금했고 아들 대신 그 길을 걸어주기로 결심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없으면 안 될 것만 같았던 모든 것들은 자신이 없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섞일 줄 알게 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은 밤에도 남 잠 못 자게 괴롭히며 부스럭거리며 무엇을 먹는 네덜란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목적은 살을 빼는 것입니다.
또 담배를 입에 물고 자신보다 까칠한 한 여자를 만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낙태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동료가 되는 사람은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하나도 유명하지 않은 작가입니다.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이 길을 떠난 것입니다. 처음엔 좀 이상하게 보이던 이 사람들과 조금씩 친해지게 됩니다.
그 길에선 도움을 받을 때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동무도 되어주고 싸움도 말려주고 잃어버린 가방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톰은 인생을 걷는 길이 무언가 성취를 이루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섞이는 능력을 배우는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들의 모습을 비로소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처럼 된 것입니다.
나중에 증명서를 받을 때는 아들의 이름으로 받습니다.
결국 아들이 걸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옷만 입어서는 안 됩니다. 아들을 보아야 합니다. 매 순간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들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진정 아들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선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하시며 아버지와 당신을 대등하게 여기셨습니다(요한 5,18).
이것이 은총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이 되는 과정은 이 두 개가 하나가 되는 과정입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입고,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입는 것은 은총을 받는 과정이고 그리스도를 보는 과정은 진리를 습득하는 과정입니다.
이 두 과정을 통해서만 오늘 복음에서 “행복하여라!”라는 축복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성인이 되는 길, 그것은 그리스도를 입고 그리스도라 믿으며 그리스도를 매 순간 보고 따라서 하려는 길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1월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요한 묵시록 7,2-4.9-14 1요한 1.3,1-3 마태오 5,1-12ㄴ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모든 성인의 대축일을 맞아,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땅 위에서나, 하느님 나라에서나 참 행복을 얻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성인(聖人)이 되기 위해서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역설적(逆說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지요. 재산의 유무야말로 행복의 척도다, 슬픔이 없는 삶, 피눈물 흘리지 않는 삶, 고통이 없는 삶, 굴곡이 없는 삶,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이 최고라고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변에 둘러서 있던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비웃었을 것입니다.
자기들끼리 눈짓을 하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피눈물 흘리고 애통해하던 사람들,
힘겹게 현실을 견뎌가던 사람들, 그래서 결국 겸손해진 사람들의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가난, 고통, 상처, 눈물이 무조건 좋은 것, 귀한 것,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성서는 모든 극단을 피합니다.
가난이, 고통이 소중하다고 가르치시는 이유는 가난이나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대체로 겸손해지고, 하느님 두려워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모두 나중에 불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이면서도 덕스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겸손하게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바를 아낌없이 나누고 섬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겸손하고, 다 하느님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질투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갖은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결국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박해를 받는 사람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은 사람,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고통이나 박해를 저주하지 않으며, 끝까지 인내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상급 중에 가장 큰 상급인 ‘하늘나라’가 선물로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아 저는 확신합니다.
성인이란 우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별세계에서 살다간 유별난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우리보다 한 3분 정도 더 인내한 사람, 우리보다 조금 더 친절했던 사람, 우리보다 조금 더 사랑했던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우리보다 조금 더 따뜻함을 지녔던 사람들, 우리보다 조금 더 인간미를 풍겼던 사람들,
우리보다 조금 더 영적 생활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성인들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머무는 빛인 사람들, 이제는 어둠의 세력과 결연히 단절하고 떳떳하고 당당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확실한 성인 후보자들입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길이 성화의 길이지만, 어떻게 보면 조금도 어렵지 않은 길이 성화의 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함을 통해서, 좀 더 기쁘게 살아감을 통해서, 조금만 더 기도함을 통해서, 조금만 더 양보하고 물러섬을 통해서 우리 역시 충분히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2022. 11. 01 모든 성인 대축일
마태오 5,1-12ㄴ(참행복)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마음이 가난하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슬퍼하시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온유하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마음이 깨끗하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평화를 이루시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으시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