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흘러 나도 70세가 넘으니 옛생각이 종종 떠오른다.
지나가면 세월만큼 빠른것이 없는것같다.
요새 자주 나의 첫 교직생활이 시작되었던 군산의 중앙고등학교와 중앙여상의 첫제자들이 생각이 난다.
하숙생활이 싫고,퇴근후 술집을 자주가서 타락을 할것이 두려워 불과 1년동안만 근무하고, 도망친듯이 서울로 전근을가는 바람에 학생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왔다.
77년 봄에 교수님의 추천으로 간학교가 군산의 중앙고,재단이 학교가 여러개이라 낮에는 중앙고에서 독어를 가르치고,
중앙여상은 야간학교이라 저녁에 영어를 가르쳤다.
24살의 열정으로 가득찬 청년교사인 나는 살인적인 수업시간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교사이었다.
아마,지금같았으면 과로사로 순직했을것이다.
그당시 첫제자들중에 고3여학생들은 나이가 불과 나하고 5살차이이라 나를 오빠정도로 여긴것같았다.
영어시간에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시인 ,그대 만약 나를 사랑한다면,이라는 시를 읽어주면 120개의 눈동자들이 나를 빤히 쳐다봐서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속으로 어쩔줄을 몰랐었다.
지금은 여자 수십명이있어도 눈하나 깜짝하지않으니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남자친구보다 여자친구가 지금도 더 많으니?
맑은 눈동자로 소녀특유의 감성으로 시를 음미하던 그여학생들은 이제 66세전후가 되어 이미 할머니들이 되었을것이다.
갑자기 교수님의 전화로 서울의 방배동의 고등학교에 오지않을래라는 전화한통에 여학생들에게는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났다.
낮에 근무했던 중앙고학생들에게는 전근을한다는 말을 전하게되어 전교생이 교문앞에 나와 배웅을했었다.
그때 학생에게 받은 세수비누 몇개는 지금도 잊지못하는 귀하고 귀한 선물이었다.
서울의 유명한 방배동의 상문고로 전근을온것이 내운명을 바꾸었다.
아시는분들은 알겠지만,모든 방송국의 고발성프로와 신문기사에 내가 다 나왔으니 이웃들과 지인들이 많이
놀랐었다.
심지어 캐나다에 이민을 간 처남댁도 현지방송을 보고 놀라서 전화가 왔다.
다행히 긴세월을 싸운끝에 하늘의 도움과 학생들,학부모들의 도움으로 재판도 승소하여 현재 연금생활을 하고있다.
어째튼 각설하고, 첫제자들이 재학했던 중앙고는 지금도 있지만,
중앙여상은 학교가 폐교된지가 오래되어 소식을 알수가 없어 매우 아쉽다.
지금은 서로 모습이 너무 변하여 길거리에서 스쳐가도 모를것이다
야위었던 청년교사는 이제
뚱보할배가 되었고,꿈많던
나의 첫제자들도 많이 변했을것이다.
혹시라도 소식을알게되면 한번 만나고싶다.
그녀들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느하늘아래에서 잘살고있을까?
고군산군도의 장자도에서 제자들과.
선유도에 부모님을 모시고갔다가 우연히 만나서 여학생의 오빠가 어부이라 장자도를 구경시켜주었다.
은실이라는 여학생이름만 기억이 난다.
47년전 사진을 핸드폰으로 다시찍어 화질이 좋지않다.
교정에서,나의 몸무게가 53kg이라 말랐다. 지금은 79kg이다.
맨왼쪽의 여학생이름이 영숙이로 기억한다.
학비를 면제받고,교무실에서 심부름을
했었다.
그때 학생들과 찍은 사진은 단 2장뿐이라 이사진들은 귀중한 사진이다.
이사진을 본다면,서로 알아볼수나있을까?
누가 이사람들을 모르시나요?
얌전하고,온순했고, 꿈이 많았던 여학생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