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 심재휘
병실 창밖의 먼 노을을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저녁이 되니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네
그후로 노을이 몇 번 더 졌을 뿐인데
나는 그의 이른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하루가 거푸집으로 찍어내는 것 같아도
눈물로 기운 상복의 늘어진 주머니 속에는
불씨를 살리듯 후후 불어볼 노을이 있어서
나는 그와 함께 소주를 마시던 술집을 지나
닭갈비 타는 냄새를 지나
그의 사라진 말들을 지나 집으로 간다
집집마다 불이 들어오고
점자를 읽듯
아직 불빛을 만질 수 있는 사람들이
한집으로 모여든다
* 심재휘 : 1963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97년 <작가의세계> 로 등단, 2014년
제 8회 현대시 동인상 수상, 시집 <중국인 맹인 안마사>등 다수
첫댓글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성립되듯이 죽음은 삶의 배경이고 함께 가는 평행선 같은 것이겠는데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서툴고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삶에 미숙하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