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우리 동네 목욕탕
조선왕조실록에 괴물이라고 치면 대체로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등장하는데
유난히 중종실록에는 괴물을 봤다는 사례가 많아 신기해서 가져옴.
1. 중종실록 59권, 중종 22년 6월 25일 경오 4번째기사 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홍문관이 궐내의 요괴한 일로 이피하는 일의 부당함을 차자로 올리다
홍문관이 차자(箚子)를 올리기를,
"삼가 살피건대 근일 궐내에서 숙직하던 군사가 괴물이 있다는 헛소리를 전하자, 한 사람이 부르면 백 사람이 부동하듯이 휩쓸렸습니다. 그래서 심한 자는 놀래 나자빠지기도 하는 등 와언(訛言)이 마구 전파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미혹되는 것은 괴이할 것이 없지만, 유식한 자들 또한 덩달아 날조하여 요설(妖說)을 부연(敷衍), 혹은 형적이 있다고도 하고 혹은 소리와 냄새가 났다고도 하니, 근거 없는 괴설(怪說)이 어쩌면 이렇게 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가령 그런 요괴가 실제로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려(邪戾)한 기운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려한 기운이 형상을 이루어 사람을 경동시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슬기로운 이는 미혹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진실로 사실을 밝혀 진정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데 지금 위에서 먼저 경동하니 아랫사람의 경황(驚惶)이 이 때문에 더욱 심하여져서 아무리 엄한 법으로 금지해도 진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당초에 군정(軍政)을 통솔하는 자가 와언 지어 낸 자를 적발하여 다스려 허망(虛妄)함을 종식시켰어야 할 것인데, 이를 문자로 써서 허망한 것을 진실이라 하여 여러 사람의 의심을 불러 일으켰고 후설(喉舌)의 소임을 맡은 자도 의혹을 면치 못하여 즉시 국문하기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도 떠들썩하여 도성 안이 진동했습니다만 따지고 보면 바람 소리와 개짖음도 모두 물괴(物怪)가 되는 것입니다. 방책(方策)을 고증하여 보더라도 괴이한 일이 이렇게 극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시석(矢石)이 빗발쳐도 군용(軍容)은 스스로 정돈되는 것인데, 한 군사가 지른 헛소리에 숙위(宿衛)가 모두 경동하였으니, 군율이 엄숙치 못함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일 헛말 한 자를 철저히 다스리지 않으면 신들은 사특한 말이 날마다 불어나서 끝내는 구원할 수 없게 될까 저어스럽습니다. 이어하신 곳에서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어떻게 조처하시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허망한 말이 근거 없음을 살피고 인정은 경동하기 쉬움을 염려하시어, 처음 말을 낸 자를 통렬히 다스리소서. 그래야 인심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차자의 내용이 지당하다. 그러나 이피는 이미 결정하였으니 중지할 수 없다."
2. 중종실록 59권, 중종 22년 6월 26일 신미 4번째기사 1527년 명 가정(嘉靖) 6년
사헌부가 궐내의 요괴한 일로 경동하는 자를 율에 따라 죄하기를 아뢰다
헌부가 아뢰었다.
"요괴로 인하여 이피(移避)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자전의 뜻에서 나온 것이므로 신들이 감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당초 괴물을 보았다면서 떠들 때에 병조·도총부(都摠府) 및 위부장이 엄히 금지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스스로도 두려워하고 겁냈기 때문에 어리석은 군사들이 더욱 경동하였습니다. 또 병조의 입직 당상(入直堂上)과 낭관(郞官)은 의당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해야 할 것인데, 버려두라고 명하셨으므로 군령이 더욱 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뒤엔 감히 전같이 경동하여 떠드는 자가 있으면 모두 율에 의하여 죄를 정하게 하소서." 【대관(臺官)이 논박받고 물러갔으므로 전교가 없었다.】
3. 중종실록 68권, 중종 25년 7월 16일 계묘 1번째기사 1530년 명 가정(嘉靖) 9년
대비전·대전·중궁전·세자빈·세자가 경복궁으로 이어하다
대비전이 경복궁으로 이어하였다. 대전(大殿)·중궁전(中宮殿)·세자빈(世子嬪)이 이때 함께 이어하였고 세자가 제일 나중에 이어하였다. 【대비가 거처하는 침전에는 대낮에 괴물이 창벽(窓壁)을 마구 두드리는가 하면 요사한 물건으로 희롱하기도 했다. 상(上)이 곁에 모시고 있지 않을 때에는 못하는 짓이 없이 마구 난타했으므로 이어한 것이다.】
4. 중종실록 73권, 중종 27년 5월 21일 무진 3번째기사 1532년 명 가정(嘉靖) 11년
금군이 밤에 놀라다
금군(禁軍)이 밤에 놀랐다. 【어떤 자가 망령된 말로 ‘말[馬]같이 생긴 괴물이 나타나 이리저리 치닫는다.’고 하자, 금군들이 놀래어 소리치면서 소동을 피웠다.】
중종 22년부터 27년 사이 괴물을 봤다는 사례가 4건이고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말 중요한 사항만 적기도 하고
심지어 대비가 머무는 곳에 창문을 마구 두드려 결국에는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을 보면
당시 궐내에서 큰 소란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됨
이 5년동안 사람들이 본 존재는 다 같은 존재였을까 아니면 각기 다른 존재들이었을까?
첫댓글
뭐였을까
헐 대체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