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섬
그리고 숙종실록 1709년(속종35년)
2월21일을 보면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이 복어를 먹다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대의 학식과 권력을 가졌던 엘리트가 복어에 대해 중독되었다면 일반 백성들은 복어로 인한 사망사고가 많았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우암 송시열은 부여에서 복어 요리를 대접받고 자신이 본디 좋아하는 고기지만 산중에 있느라 먹어본지 유래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송시열이 먹었다는 복어는 아마도 중국의 소동파가 찬사했던 황복(죽음과도 맞바꿀만한 맛)이었으리라. 본래는 바다에 살지만 강으로 와서 산란을 하는 습성을 가진 황복이 금강을 거슬러 올라왔기 때문이다.
또한 송시열이 한때는 서인에 속하면서 사이가 좋았던 윤증의 집에 가서 복어국을 먹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나중에는 각기 노론과 소론으로 등을 돌리게 되었고 원수지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강에는 봄철이면 황복이 많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 맛이 유별나 마포까지 올라오던 황복을 먹고 중독이 되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덕무는 백성들에게 황복을 먹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하돈탄이란 시를 썼다.
그리고 어부들에게도
"고기 잡는 어부들 내 말 좀 듣게나
행여 하돈에게 낚시 던지질 마소
그 물건도 삶을 더 얻어 좋으려니와
사람 목숨도 더 길어지잖나"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위험한 복어이지만 인조와 정조는 복어를 먹었다고 한다.
물론 공식 기록이 아니라 야사에 나온다고 "18세기의 맛(안대회저)"에
나온다
복어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어 인용함
일본에서는 나병환자가 복어를 먹으면 죽을 만큼 아팠다가 결국 났는다고 믿었다 한다. 독으로 병을 치유할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리라. 다른 독에는 해독제가 있으나 복어독은 분자량이 작아 해독약이 아직 없다고 한다. 그냥 빨리 병원에 가서 처방받아 토하고 쉬는 수 밖에 없다고,,,
겨울이 오니 복지리에 따뜻한 정종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