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토요일 강론>(2024. 10. 12. 토)(루카 11,27-28)
제1독서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3,22-29
형제 여러분,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갇혀,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율법의 감시를 받아 왔습니다.
24 그리하여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25 그러나 믿음이 온 뒤로 우리는 더 이상 감시자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27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28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다면,
여러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약속에 따른 상속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7-28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7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2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신앙생활과 회개에서 무임승차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7-28)”
1)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라는 말은, “선생님의 어머니는 복되신
분입니다.” 라고 찬양하는 말이고, 이 말은 사실상
예수님을 찬양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겉으로는 엘리사벳의 인사말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이 말은 ‘성령으로 가득 차’,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느님의 인간 구원 사업을 증언하고 찬양하고,
동시에 ‘예수님은 구세주’ 라는 것을 증언한 말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성모님
태중의 아기는 복되신 분이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응답해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성모님도 복되신 분입니다.
‘복되신 분’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축복을 가득히 받으신 분,
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어떤 여자’의 말도 엘리사벳의 말과 같은 성격의
증언과 찬양인지, 아니면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떻든 여자가 그런 말을 한 일에도
성령의 힘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그렇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참으로 복된 사람들이다.”입니다.
<여기서 ‘오히려’는 ‘그렇기도 하지만’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행복하다.’ 라는 말은 ‘복되다.’,
‘구원을 받는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도 복되신 분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가운데 첫 자리에
계시는 분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복되신 분이다. 그리고
성모님을 본받아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가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구원을 받는 것은 곧
‘복된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 나라에서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누리기 때문이고,
또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그 ‘복’을 향해서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신앙인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이미
그 ‘복’을 받았고, 누리고 있는 사람들인데,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그 복이 ‘완성’될 것입니다.
3)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다.”에 초점을 맞추면,
이 말씀은 다음 말씀들과 ‘같은 말씀’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말씀’을 듣지 않거나,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4) 예수님의 말씀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는 어떤
특혜도 없고, 예외적인 특권도 없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가족들도,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예수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또는 예수님의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이나 특혜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루카 17,34-35).”
신앙인 가족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못 얻습니다.
하늘나라 입장과 구원에는 ‘무임승차’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창세기 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할 때,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라서 살아남지 않았는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롯은 악한 사람인데도
아브라함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롯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습니다.
5) 우리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또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회개를 대신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고, 회개도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합니다.
모니카 성녀와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경우에,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회개와 개종은 모니카 성녀의 기도 덕분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회개는 아우구스티노 성인 자신이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공이
컸음은 틀림없지만...
<어쩌면 하느님 나라에서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이 냉정한 분이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상에서 사는 동안에 말씀을 실행하는 것을 소홀히 하고,
또 회개를 기피한 사람들 자신들 탓입니다.
‘그날’이 되면, 그들은 다른 누구를 탓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면서 후회만 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