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숙 이야기 / 이시영
만주국 영림창에서 갑자기 돌아온 우리 당숙은
봉두난발에 가죽장화 차고 검은 말을 끌었는데요. 달 뜨면
뒷산 똥묘에 올라 고운 목청 뽑다가 말 끌고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먼 타관장에 숯 내고 온 동네사람들이
혹 가다 당숙 소문을 갖고 왔지만 할머니는 웬일인지
소금을 뿌리며 사립 밖에 생솔을 치고 피 묻은 당숙 흰옷을
태웠습니다. 화약내를 풍기며 당숙이 돌아온 건 다음 다음날,
마늘밭에 포장을 치고 더벅머리를 모아 매일 밤 이상한
재주들을 가르치더니 동네를 돌며 처녀애들에게 호밀내 나는
귓바퀴로 수군거렸습니다. 정월 보름 꽹매기 소리에 달집이
타오르던 날 밤, 강변 들은 화개 아랫녘서 모인 구경꾼들로
들끓었습니다. 막이 오르고 막 뒤 냇물 속에서 말을 끈 당숙이
무대 위로 오르고 객석에서 일어난 처녀들이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하자 마차 속에 숨었던 청년들이 봉화를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온 들이 하얗게 숨죽이고 막이 내렸다 오르고
장타령과 줄타기가 시작됐지만 만세소리는 그치질 않았습니다.
당숙이 산으로 숨고 순사들이 푼 개가 피투성이 장화 한 짝을
물고 온 다음 그 다음날에도 그 소리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 이시영 시집 <바람 속으로> 1986
첫댓글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당숙이라는 인물이 가진 운명과 저항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격동의 시기 한 인간의 고통과 희생, 공동체의 응원이 절절히 느껴져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가옵니다. 끊임없는 만세 소리와 숨겨진 투쟁의 의미가 가슴을 울리며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