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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yes24.com/Article/View/19672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링크 따라가서 인터뷰 영상 보세요.
과일장사, 코러스, 백댄서까지 하신줄은 몰랐네요. ^^
탁현민 “’시사콘서트’에서 ‘용민운동회’까지, 불세출의 연출가로 살아가는 법” -『탁현민의 멘션’s』
“우리는 모두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살아요”
검찰의 외압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 힘들다
열망과 혁명의 끝은 사랑이라는 이 남자는 자칭 애정주의자이자, ‘오빠’라고 불러줄 때 힘이 난다는 사랑의 아이콘이고, “올봄에는 파스텔톤이 유행할 것이며, 최근 ‘띠어리’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영입해 디자인이 독보적”이라고, 이색적인 브랜드를 제시해 줄 수 있는 패션 좌파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가장 멋진 순간을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연출가 탁현민을 만났다.
불세출의 연출가란 이런 것
행여 탁현민이 ‘나는 꼼수다’ 콘서트 기획자라고(만) 생각한다면 오해다. 이 불세출의 연출가는 두 차례에 걸친 ‘나꼼수 전국투어’를 성황리에 마치고, ‘The 위대한 검찰콘서트’, ‘나꼼수 여의도 콘서트’ ‘언론 3사 파업콘서트’ 등의 사회현안을 둘러싼 공연을 독점 연출하면서, 독보적인 연출가로 부각되었으나 사실, 그는 ‘이전부터’ 남다른 연출가였다.
윤도현 밴드, 들국화, 자우림, 강산에, 정태춘-박은옥, 이상은, 크라잉넛, 이은미, 김광진, 드렁큰 타이거 등 국내에서 노래 한다 하는 가수들의 콘서트는 한 번 이상 탁현민이 연출했다. 학창시절 때는 시인을 꿈꾸는 문학청년이었고, 학생운동을 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참여연대였다.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참여연대 사상) 첫 공연을 연출하게 되었는데, 그 무대 위에 자우림과 이은미를 올렸고, 공연 수익을 8000만 원이나 거두게 된다. 그렇게 우발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맺은 무대와의 인연이 여기까지 왔다.
그게 그가 삶을 전환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면, 두 번째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콘서트’였다. 그때부터 정치시사 토크쇼를 이어가게 되는데, 탁현민의 시사콘서트, 정치콘서트가 최근 나꼼수 콘서트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진행했던 김제동 토크쇼도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성공했고, 그가 시작했던 ‘토크콘서트’는 이제 하나의 형식이 되어버렸다.
그게 무엇이든 사회적 요구가 있을 때, 그는 제작비라던가 사회적 위신 때문에 몸을 사린 적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래서 탁현민만 할 수 있는 공연이라는 말이 생겼다. 무대 위에 올릴 연예인이 없을 때는 직접 올라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지난 4월 초에는 시청광장에서 언론사 파업기금을 위한 플리마켓을 열었고, 광장에 우발적으로 모인 수만 명의 시민들을 운집해 ‘조 퍼포먼스’를 해내고, 심지어 지난 29일에는 운동회까지 열었다. 어느 새부터인가 국내에서 다른 이름으로 대체될 수 없는, 독특한 연출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불세출의 연출가’란 이런 사람이다.
연출가란, 불고 있는 바람을 알아채게 하는 사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들을 과감히 결정하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을 결단하는 자세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갖출 수 있는 현실적으로 가장 완벽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바로 이 결정과 결단의 순간에 중요한 것은 확신이다. (…) 이것은 아직은 보이지 않는 ‘무엇’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불안하지만, 그 영감은 어떤 보이는 것보다 분명하게 나를 결정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법이다.(p.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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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재주가 있다면, 나는 사람들을 결핍을 잘 찾아내는 거예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조금 빨리 알아채는 거지, 내가 뭔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에요. 내가 했던 공연들이 대부분 어렵고, 사회적 의미가 있고, 내압도 외압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어요. 원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준비된 관객들이 있기 때문에 하는 거죠. 나는 준비된 관객이 없는데 해서 성공한 적이 없어요. 관객이 준비가 안 되면 무조건 실패야.”
그가 말하는 연출가란 이런 사람이다. “바람이 부는 걸 우리는 다 알아요. 그게 실체로 느껴지게 하려면, 그 앞에서 팔랑개비라도 들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거 들고 있는 게 내 역할이에요. 바람이 불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느끼게 해주는 거죠. 내가 부채질을 해주는 건 아니에요.” 그 바람이 부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건 불세출의 연출가만 느낄 수 있는 거죠. 그건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냥 느껴지는 거에요. 어느 날 문득. 길가다가 괜히 한쪽에서 강렬한 시선을 느꼈는데, 딱 돌아보면 귀신같이 예쁜 여자가 서 있는 것과 비슷한 거죠. 음, 비유가 적절할까요?(웃음)”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하는 사랑 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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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 열리는 라이브 콘서트 만들기』(2004) 『탁현민의 재미있는 무대 밖 무대 이야기』(2006), 『상상력에 권력을』(2010)에서 『탁현민의 멘션’s』(2012)까지. 그가 이제까지 펴낸 무대 실무 이야기에서 그는 언제나 61만 명이 모여 시대적 열망을 공연으로 빚어낸 우드스톡을 언급한다. 그는 여전히 공연으로 세상이 바뀌기를 꿈꾸는 낭만주의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리얼리스트다.
열망과 혁명의 끝은 사랑이라는 이 남자는 자칭 애정주의자이자, ‘오빠’라고 불러줄 때 힘이 난다는 사랑의 아이콘이고,“올봄에는 파스텔톤이 유행할 것이며, 최근 ‘띠어리’가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영입해 디자인이 독보적”이라고, 이색적인 브랜드를 제시해 줄 수 있는 패션 좌파다. 나에게도 너에게도 가장 멋진 순간을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연출가 탁현민을 만났다.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감당해야 할 일들
지난 4년간, 왜 이렇게 쉼 없이 달려왔어요?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을 맡은 건 내 의지였지만, 그 이후에는 강요된 측면이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이후, 내 연출의 방향과 내용이 이른바 저항적으로 바뀌었고, 그 외의 일반적인 다른 공연이 나에게 들어오지 않게 된 거죠. 그때 한국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아요. 내 공연을 협찬하거나 제작해 줄 수 있는 곳이 없게 된 경우, 나는 계속 뭔가 해야 하는 거죠. 하지 않으면 놀거나 쉬어야 하니까. 내가 뭔가 하면서 다시 기업에 손 벌리고 싶지 않았으니 더 계속 뭔가 스스로 만들어내야 했고, 그것은 저항적이어야 했고, 그렇게 가속이 붙어 4년 동안 달릴 수밖에 없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사회적 성격의 공연을 만들려는 사람들만 찾아오게 된 건가요?
“찾아오기도 하고 나 역시도 원래 하던 기업행사나 어느 가수의 단독 공연은 안 하게 되더라고요. 재미가 없어지고,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없으니까.”
그런 사회적 성격의 공연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라는 것은 어떤 거에요?
“뭉뚱그려 얘기하자면,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술이라는 건, 우리가 사는 당대가 아니라 그다음 시대를 꿈꾸게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난 그게 모든 지식인이나 예술인의 책무라고 생각하거든. 내가 그런 공연을 연출하면서 그런 예술인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약간의 정의감도 있었고요.”
다음 공연을 할 수 있을 만큼 돈벌이는 됐나요?
“나는 되게 재주가 많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이 잘 못 믿어.(웃음) 내가 일반적인 공연 연출하면, 최소한 2000만 원 이상 받아요. 그러니까 산술적으로 따지면, 일 년에 다섯 번만 해도 억대 연봉이 되는 거야. 학교 수업도 하잖아요. ‘나는꼼수다’ 공연도 나는 손해보지 않았어요. 물론 그 비용이 전부 내 수익으로 들어온 건 아니지만. 나는 돈 때문에 못하는 건 없었어요.”
그런 공연은 제작지원도 없을 텐데, 그럼에도 돈을 벌었나 해서요.
“물론 실패한 것도 많죠. 탁현민의 시사콘서트나 정치콘서트는 대부분 실패했어요. 오히려 돈을 써야 하는 공연도 있어요. 문정현 신부 헌정공연, 4대강 반대 공연…… 이런 건 누가 돈을 대겠어요. 내가 투자를 해서 만드는 공연도 있어요.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예술을 하는 누구라도, 자기 작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돈을 버는 거고, 돈이 안 되니까 안 하는 건 아니에요. 팔릴 수 있는 것만 만들면 그건 공장이죠. 어느 순간 내가 그런 공장 일을 접고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연히 감당하거나 감내해야 하는 일인 거죠.”
굵직한 이슈를 담고 있는 공연을 하셨잖아요. 그런 이슈가 생길 때,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을 하세요? ‘어떻게 새롭게 하지? 어떻게 재미있게 하지?’ 이런 걸까요?
“사회적 의미가 있는 공연을 만들 때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요. 첫 번째는 바람이 불고 있느냐, 준비된 관객이 있느냐를 가장 먼저 판단해요. 일부러 박하게 평가해요. 10만이 올 거로 생각하면, 만 명 정도밖에 안 봐요. 그래야 마음의 상처를 덜 받아요. 그 판단이 서면, 두 번째는 그 무대에 세울 사람을 생각해봐요. 그런 주제의 무대를 만들었을 때 서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 아무나 세우지 않아요. 내가 세우고 싶은 사람을 찾아요. 이건 내 자존심이고, 내 무대에 대한 내 신뢰이기도 해요. 그다음 걱정은 제작비 마련.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거죠. 어떻게 만들까는 다른 차원이에요.
내가 하도 자주 만드니까 사람들은 공연 한번 만드는 걸 되게 쉽게 생각해요. 지난번 여의도에서 했던 공연을 제 돈을 주고 다 하려면 최소한 2억에서 2억 5천 정도 들거든요. 그건 만 명이 만원씩 내야 하는 거야. 1억이잖아요. 그렇게는 절대 안모여요. 제작비가 안 된다? 그건 내가 안아야 되는 부담이죠. 가끔은 그럴 때 좀 갑갑함을 느끼죠. 제작비 마련 걱정을 하고 나면, 연출의 디테일을 결정하는 거고. 그 공연이 벌어지는 날을 걱정하고 공연이 끝나면 그다음에 오는 파장을 또 안아야 하죠. 성공하면 할수록 외압은 심해지고, 실패하면 할수록 내압은 심해지고. 뭘 봐도 썩 좋은, 즐겁기만 한 작업은 아니에요.
‘나꼼수’ 콘서트는 일정 포맷이 있었고, 네 명의 확실한 캐릭터가 있었잖아요. 공연의 목표도 뚜렷했고. 불세출의 연출가가 더하려고 했던 건 뭐에요?
“‘나꼼수’ 공연 같은 경우 솔직히 부담도 있었어요. 내가 했던 작업이 얼마나 많은데, 어느 순간 내가 나꼼수 기획자가 되어 있어.(웃음) 더 웃긴 건 내가 그들을 기획한 것도 아니고 네 명을 선택한 것도 아니잖아요. 다만, 골방에 있던 네 명을 오프라인으로 끌어내는 건 내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사람들을 직접 만나게 하고 또 하나의 알파의 힘을 만들었던 건 내가 했던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사랑하는 데 방해되니까, 바꾸고 싶은 거죠.”
“지난 1년 사이에 나란 존재가 많이 알려졌고, 그 이전에 나와 많이 달라졌다는 건 나도 느끼거든요.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도 정말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나를 좀 객관화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나를 드러내는 일을 좋아하되, 남과 같은 것은 질색하도록 싫어했던 문학청년. 여전히 “수업 때는 토론식 세미나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하는 강의가 좋다”고 말하는 솔직한 교수님.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패션’같은 테마로 패션잡지의 화보를 찍는 일”이라는 명랑좌파.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일찌감치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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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현민의 멘션’s』을 보면, 탁쌤에게 중요한 키워드는 ‘저항’과 ‘사랑’이구나 싶어요. 저항은 공연이나 업무적인 부분에서 표현되고, 트위터나 글을 보면, 탁쌤은 늘 남자로서 어필하고 있어요.(웃음)
“그건 부정하고 싶지 않아. 분명히 인정해요. 나의 저항과 나의 투쟁의 끝은 혁명이 아니라 애정이거든요. 만약에 정말 뭔가 하나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사랑이에요. 그게 나를 끄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에요. 내가 누구처럼 민간인 사찰을 받고, 검찰에 외압을 받고, 이런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전화를 안 받으면 너무 힘들어요.(웃음)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가 세상 바꾸려고 하고,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려고 하는 건, 사랑하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사랑하는 데에 방해되니까 바꾸고 싶은 거죠. 캐릭터로서 내가 오빠라고 하는 것은, 수없이 많은 괴로운 혹은 외로운 여성들에게 나라도 오빠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일종의 살신성인인 거고, 약간 마초처럼 보이거나 남자 냄새를 풍기는 이유는 내 성 정체성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이에요. 엄마 빼놓고는 난 누구에게나 남자이고 싶어요.”
‘저항하고 싶다. 부정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이것도 선생님의 중요한 동력이잖아요. 이전 책에 반복되고 있는 얘기기도 하고요. 이 저항의 근원은 뭘까요? 몇 살 때부터 저항하기 시작했어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꿈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했고. 이런 꿈을 기성의 부모는 받아들여 주지 않았어요. ‘엄마 말 듣든지 말든지’ 하는 선택지에서 후자를 선택했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자랐어요. 그런 데서 연유한 일이겠죠. 수학여행 단체사진 찍는 거 정말 싫어했고, 졸업식, 입학식에도 한번 안 갔어요.
난 똑같은 표정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게 정말 싫어.(웃음) 일종의 강박이겠죠. 그게 일상이 되니까 당연히 ‘다른’ 것들을 좋아하게 되고, 다른 디자인, 다른 사고…… 언제나 스스로 요구하는 지점이었어요. 공연연출도 마찬가지죠. 돈 잘 벌고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공연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의미를 찾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공연의 내용이 바뀌기 시작했고요. 대중문화가 가진 속성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하나가 저항성이라고 생각했고, 문화의 저항성을 표현하겠다는 게, 내 공연연출의 이론적, 논리적 배경이 되어주는 거죠.”
나만 다른 거, 나만 안 하는 거. 외롭지 않았어요?
“멋지잖아. 그게 왜 외로워. 외로움도 멋지잖아요. 이런 부류의 작업이나 이런 예술성이라는 건, 남들이 인정해주면 대세가 되는 거지만,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행복한 거예요. 늘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만 하려고 하면 못하죠. 대중성, 상업성, 저항성을 같이 펼쳐놓는 게 가장 훌륭한 공연이라고 생각해. 대중성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죠. 많이 모였는데 돈도 되고 의미도 되는 거지. ‘나는 꼼수다’가 성공한 콘텐츠인 건 그 세 가지를 갖췄기 때문이에요.”
맹목적인 멘토 열풍 지적하셨잖아요. 제일 좋은 건 ‘독고다이’라고 하셨죠. ‘독고다이’는 힘들거나 벽에 부딪힐 때 어떻게 일어나나요?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멘토 자체에 너무 교조적인 느낌이 있어요. 그들도 20대일 때, 혹은 내 나이일 때, 어떻게 살았는지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알겠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그것도 같이 봐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멘토는 이미 그들 나름대로 견고한 프레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20~30대는 프레임을 갖기보다는 프레임을 만들어야 하는 나이니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스스로 밀어 넣기보다는 자기가 만들어내는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요. 신영복, 이외수 선생님 등 나에게도 좋은 선생님이 많았거든. 선생 복은 기가 막혔어요. 내가 찾아다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분들을 멘토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내 길이 있고 그분들을 무척 좋아하는 거지. 빠순이지.(웃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신영복 선생님께 감화되어 성공회대까지 가게됐다고요. 스승 복이 남다른 만큼, 강단에 설 때 아무래도 스승들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탁쌤은 수업할 때 학생들에게 무슨 얘기를 제일 많이 해주나요?
“전 제 얘기만 해요. 나는 내가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긴 수업이 좋아.(웃음) 아이들에게 늘 이런 얘기 하죠. 너희의 책임이 없는 시기에 살고 있다. 책임감을 느끼려고 하지 마라. 더 ‘싸가지’가 없어도 되고, 더 불평해도 된다. 아이들이 주눅이 든 이유는, 지금 이 상황이 자기들 책임이라고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의 20대가 지금의 시대를 만드는 데 뭘 한 거 있어. 그냥 산 거지. 지금의 시대는 40대 이상이 만든 거죠.
다만 네가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다면, 지금 뭔가 해야 하는 건 맞다. 만약 너희들이 내 나이가 됐을 때 그 시대는 너희들 책임이지 지금의 10대 아이들 책임은 아니니까.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뭔가 하고, 지금 시대를 탓하는 건 얼마든지 해라. 그런 얘기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살아요”
곧 노무현 대통령 3주기다. 노무현 추모 공연을 5개 지역에서 할 예정이고, 6월에는 공지영과 ‘사랑’ 콘서트, 7, 8월에는 페스티벌, 8월부터는 대선을 위한 투표참여 독려공연까지. 올해 말까지 그는 또 쉬지 않고 달리게 될 것 같다. 몸도 마음도 지친 지금, 그나마 낙이 뭐냐고 물으니 “책이 찔끔찔끔 나가는 것”이란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그들이 반응하는 것에 민감한 스토리텔러다. 그는 앞으로도 공연으로, 책으로, 트위터로 계속 당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그의 이야기가 즐겁다면, 그의 제안이 믿을 만하다면, 공연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그의 꿈을 지지해주고 싶다면, 당신도 여기에서 듣고 대꾸해주면 된다. 그가 계속 말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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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세 번째 공연 준비 중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와 또 다른 상황일 것 같습니다.
“만약 선거에서 이겼다면, 이번 추모공연은 축제로 만들고 싶었어요. 지금 상황에서 그러긴 어려울 것 같고, 잠정적인 공연타이틀은 ‘오버 더 레인보우’가 될 것 같아요. 절망의 끝과 희망의 끝 두 지점을 만나게 하고 싶다는 스케치 단계의 구상이에요. 어차피 그 공연에서는 현실에서의 절망을 이야기해야 하고 동시에 다음 선거를 향한 희망도 또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지금 노무현 3주기 준비하는 마음이죠.”
요즘 탁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뭔가요?
“마흔이잖아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갈등하고 있어요. 좋은 공연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게 익숙한 일이에요. 잘한다는 게 아니라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지만, 특별히 어떤 새로운 느낌이 들게 되진 않아요. 공연 내용에 따라서 격정적인 내용의 공연이 생길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런 거 말고 좀 더 본질에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예쁜 귀요미들에게 위로를 받긴 하지만, 집에 홀로 돌아오면 밀려드는 헛헛함을 무엇으로 풀어야 하나. 요즘은 그런 게 고민이에요.
세상을 바꾼다거나 거대한 담론이나 좋은 공연을 만드는 거 이런 거 말고 내 삶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지엽적으로는 있어요. 아주 작은 소원들. 이를테면, 나도 주기자처럼 사람들이 쇼핑백에 책을 잔뜩 담아 온 팬들에게 사인을 해줬으면 좋겠다거나 문화부 장관에 지명돼서 나갔는데 딱 멋지게 ‘나는 한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말해보는 것…(좌중 웃음) 나는 사람들에게 맨날 자유롭게 살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런가? 그게 제일 고민이죠.
예전하고 지금 많이 달라졌다고 하셨잖아요.
“자기검열. 그게 가장 큰 변화죠. 안 그러려고 되게 노력해요. 트위터에 글 하나를 올리더라도 아, 이걸 올리면 어떤 반응이 있겠구나 내가 먼저 재단하죠. 그걸 스스로 뛰어넘어서 해버릴 때가 있고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했던 말이 기사화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내 실수가 우리의 실수가 되는 경우도 생겨요. 그러면 쫄 수밖에 없죠. 김어준은 쫄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지 사정이고, 나는 쫄리는 걸 어떡해.
최근에 일본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데 입국 심사하시는 분이 알아보더라고요. 어쩐지 표정이 ‘새끼, 선거 졌는데 어디 갔다 온 거야.’ 하는 느낌인 거죠. 물론 그분은 절대 아니었을 거야. 그러니 김제동이 왜 그렇게 소심하게 반응하나, 공지영이 왜 자꾸 ‘멘붕’에 빠지나 이런 것들이 예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댓글 안 보고 반응하지 않으면 되지, 라고 했는데 일부를 경험하게 되니까 이해가 돼요.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나는 모르는데, 나를 아는 사람들과 만나면 굉장히 어색할 것 같아요.
“평소에 안 하던 행동도 하게 돼요. 나는 늘 구부정하게 있거든요. 누가 보는 것 같아서 괜히 허리를 펴게 되고 허투루 다니면 안 될 것 같고. 상대는 분명 호의로 보는 건데, 그 호의에 부응해줘야 할 것 같고. 내가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100명 중에 한 명이 알아보는 건데, 그 한 명이 신경 쓰이는 거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엄혹한 시대에 독자들에게 『탁현민의 멘션’s』를 권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얘기에요. 우리는 다 자기 이유를 가지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거든요. 트위터만 봐도,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나 사회 이야기만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완벽하게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데서 오는 반동이라고 보면 돼요. 이 한 권의 책에 내가 최근 몇 년 동안 하고 싶은 얘기를 거의 담았어요. 독자들도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가 자기 이유로 살수 있는 방법을 하나쯤 같이 고민해본다면 좋을 것 같아요. 책이 워낙 주옥같고. 화보들도 훌륭하니까 이건 뭐. 소장용이죠.(웃음)”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버라이어티 가카 헌정공연 ‘나는 꼼수다’, MBC 파업지지콘서트 ‘으랏차차 MBC’와 같은 사회성 짙은 공연들을 기획하며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고,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탁현민. 이 책은 공연이란 형식을 통해 줄곧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해오던 그가 ‘인간 탁현민’이란 상품을 무대에 올리듯이 글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자 풀어낸 ‘탁현민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또는 ‘탁현민 심리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첫댓글 정말 재주도 많으시고 언변만큼이나 글도 재미있고 참 멋진분이세요 탁쌤!!!
이런 연출가가 있어서 든든하지요.
정말 윗트넘치고 순발력 최고이십니다
탁샘 탁샘 탁샘 탁샘........................최고.최고 최고......